서구 오컬트 문법 위 한국적 정서와 설정
감독 “작품의 기본 요소는 인물의 감정·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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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시리즈 ‘동궁’ [넷플릭스 제공] |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왕의 핏줄을 다 없애겠다.”
저주가 깃든 궁에 ‘귀신 사냥꾼’이 나타난다. 원귀와 귀매로 들끓는 궁은 은밀한 비밀과 암투까지 뒤섞인 어둡고도 위험한 공간이다. 사냥꾼은 현실과 ‘귀의 세계’를 넘나들며 저주의 원흉을 뒤쫓는다. 어둡고도 잔혹한 궁궐의 비밀 속 그에 얽힌 저주, 그리고 그것을 해결해야만 하는 이들과 궁궐을 집어삼킨 귀들의 대결. 넷플릭스 시리즈 ‘동궁’이다.
하반기 넷플릭스 최고 기대작 중 하나인 ‘동궁’이 오는 17일 공개된다. 남주혁의 군 제대 후 복귀작이자, 조승우·노윤서로 이어지는 탄탄한 캐스팅으로 일찍이 주목받았던 작품이다. ‘악마판사’, ‘붉은 달 푸른 해’ 등에서 섬세한 연출을 보여준 최정규 감독과 ‘손 the guest(더 게스트)’, ‘불가살’의 권소라·서재원 작가가 의기투합했다.
현실과 귀의 세계 사이 경계를 넘나들며 귀신을 쫓는 이야기를 담은 ‘동궁’은 샤머니즘 요소를 마음껏 머금고서도 사극 특유의 톤과 세련미를 잃지 않은 ‘오컬트 사극’의 맛을 제대로 낸다. 현실과 귀의 세계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내기 위한 노력의 흔적들이 곳곳에서 드러나는 ‘동궁’은 공포보다는 새로움과 신선함이란 단어와 더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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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시리즈 ‘동궁’ [넷플릭스 제공] |
저주가 드리운 궐에서 세자들이 연이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궁 안에는 30년 전 피바람을 불러왔던 연못 귀신의 저주가 다시 시작됐다는 소문이 일파만파 퍼진다. ‘귀신 덕에 왕이 됐다’는 말을 들으며 살아온 왕(조승우 분)은 다시 들불처럼 번지는 소문에 화를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저주는 끝내 마지막 남은 왕의 핏줄, 어린 영안군에게까지 향한다.
왕은 수십 년 전 귀신을 쫓는 데 도움을 줬던 스님을 찾는다. 연로한 스님은 자기 대신 귀신을 보고 쫓을 줄 아는 구천(남주혁 분)을 추천한다. 눈앞의 사내가 왕인 줄 꿈에도 몰랐던 구천은 ‘아들을 살려달라’는 부탁을 마다하지만, 이내 왕의 부하들에게 납치당해 궁에서 눈을 뜬다. 귀신을 쫓아야만 궁을 나갈 수 있는 구천은 울며 겨자 먹기로 연못 귀신의 정체를 쫓기 시작한다. 왕의 명으로 그의 감시역이 된 감찰 궁녀 생강(노윤서 분)과 함께다.
이미 영안군에겐 죽음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운 상태다. 놀고먹는 한량마냥 능력도, 정체도 미덥지 않은 구천은 길게 줄처럼 엮은 천 조각을 몸에 두르고 연못으로 뛰어든다. 복숭아 나뭇가지 하나 달랑 들고 제 알아서 죽음의 길로 향하는 구천을 보며 생강은 기겁을 하지만, 구천은 그것이 귀의 세계로 향하는 길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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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시리즈 ‘동궁’ [넷플릭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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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시리즈 ‘동궁’ [넷플릭스 제공] |
구천은 연못 속으로 깊게 가라앉음과 동시에 다시 그곳에서 헤엄쳐 나온다. 황량하기 짝이 없는 공기와 메마른 나뭇가지들이 뒤엉켜 있는 곳. 같은 궁궐이지만, 불타는 화염 한가운데 있는 듯한 귀의 세계에서 구천은 영안군의 목숨을 노리는 귀신을 저지하기 위해 달려든다. 구천은 영안군의 목숨을 구하고 무사히 궁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연못 귀신은 대체 무슨 원한으로 궐에 잔인한 저주를 내리게 된 것인가.
‘동궁’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두 작품이 떠오른다. 넷플릭스 최고 흥행 시리즈 중 하나인 ‘기묘한 이야기’, 그리고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영화 ‘콘스탄틴’이다. 성수·십자가·총·구마 의식 등으로 악마들과 싸우는 콘스탄틴은 나뭇가지 하나 달랑 들고 퇴귀에 나서는 구천과 똑 닮았고, 현실과 귀의 세계를 넘나드는 설정은 마찬가지로 현실과 뒤집힌 세계가 교차하는 ‘기묘한 이야기’와 그대로 겹친다.
하지만 ‘동궁’은 어디선가 본 듯한 이 익숙한 설정들을 조선 왕실이라는 지극히 한국적이고 위계적인 공간에 이식하며 저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다. ‘동궁’의 세계관에서 악마(콘스탄틴)는 죽은 사람의 혼인 ‘원귀’와, 나쁜 기운이 한 장소에 쌓여 생겨나는 ‘귀매’로 치환되고, 낡고 부패한 뒤집힌 세계(기묘한 이야기)는 붉은 기운이 넘쳐나는 메마른 귀의 세계로 펼쳐진다.
작품이 서구 오컬트의 문법 위에 한국적 샤머니즘과 사극 미장센, 그리고 ‘한(恨)’이라는 정서를 충분히 녹여낸 점도 눈길을 끈다. 구천이 양기를 품어 귀신을 쫓는 벽사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벼락 맞은 나무의 가지를 들고 귀신과 맞서는 장면 등은 ‘K-오컬트’만의 질감을 십분 살린다. 또한 궁중 암투와 엮인, 억울하게 죽은 귀들의 사연은 죽은 사람보다 더 위험하고 악랄한 산 사람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옮기며 선악에 대한 묵직한 화두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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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시리즈 ‘동궁’ [넷플릭스 제공] |
귀신이 궁궐에 들끓게 된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권력을 향한 인간의 탐욕과 왕실의 은폐된 죄가 있다. 귀들은 그 죄의 결과이자 증거로 존재한다. 조승우가 연기하는 왕이 안고 있는 즉위의 정당성에 대한 불안, 구천이라는 인물의 얼렁뚱땅한 태도 이면에 자리한 생존의 절박함, 그리고 감찰 궁녀 생강이 감춘 정체와 그가 좇는 비밀까지, ‘동궁’은 초자연적 소재를 빌려 결국 사람과 권력의 이야기를 깊숙하게 파헤친다.
익숙한 궁궐 세트를 그대로 두되 공기와 색감, 질감만을 완전히 뒤바꿔 이물감을 자아내는 ‘귀의 세계’ 연출 방식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현실의 궁궐에서 벌어지는 암투와 귀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투가 하나의 공간에서 겹쳐 보일 때, ‘동궁’이 그리고자 하는 것이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인간의 탐욕과 한에 대한 이야기임이 더욱 선명해진다. 색감부터 질감까지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세계가 실은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는 극 중 여러 서사적 설정도 꽤나 신선하다.
최정규 감독은 “두 세계의 대비를 위해 컬러감과 배경에 차별화를 줬다”면서 “대비와 충돌 속에서도 서사의 기본 요소는 인물들의 감정과 갈등이라는 생각을 잊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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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시리즈 ‘동궁’ [넷플릭스 제공] |
낯선 시도를 거부감 없이 녹여내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귀신 쫓는 사냥꾼으로 복귀한 남주혁은 공백기가 무색하리만큼 구천이란 캐릭터 안에서 답 없는 한량과 서슬 퍼런 ‘귀신 사냥꾼’을 능숙하게 오간다. 노윤서의 담백하면서도 섬세한 연기는 극 전반을 짓누르는 무거운 공기를 융화시키고, 권력의 가장 위에서 그것을 지키기 위해 살기를 감추지 않는 조승우의 연기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을 정도다.
세련된 사극의 결과 진한 오컬트의 향, 그리고 현실과 이세계(異世界)를 넘나드는 과감한 설정까지 갖춘 ‘동궁’은 올해 공개된 작품 중 가장 도전적인 시도라 이야기할 만하다. 물론 도약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착지다. 서로 다른 두 세계, 서로 다른 장르 문법을 하나로 엮어낸 야심은 마지막까지 흔들림 없이 유지될 수 있을까. 시도 못지않은 단단한 엔딩을 기대해 본다. 17일 넷플릭스 공개. 15세 이상 관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