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입국 거부당한 인도청년…삼전닉스 넘보는 ‘메모리 승부사’로 [더 비저너리-산제이 메흐 로트라 마이크론 CEO]

유학비자 세번 퇴짜후 UC버클리 편입
샌디스크 창업…플래시메모리 새 지평
나스닥상장·매각후 마이크론CEO 맡아

특허 70건이상 ‘기술 경쟁력’ 최고 사령탑
히로시마 14조 투자…D램·HBM 총공세
SK하닉 美증시 상장, 자금유치 경쟁 주목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CEO. [마이크론 홈페이지]



미국 메모리 반도체 산업을 대표하는 두 기업, 마이크론과 샌디스크. 이들 기업의 성장 뒤엔 한 명의 기업인이 있다. 바로 인도 출신 산제이 메흐로트라다. 메흐로트라는 1988년 샌디스크를 공동 창업해 플래시 메모리 시대를 연 주역이다. 이후 2017년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해 회사를 인공지능(AI) 반도체 호황의 대표 수혜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현재 마이크론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은 세계 3위 메모리 반도체 업체다. 시가총액은 약 7686억달러(약 1170조원). 최근에는 일본 히로시마에 약 14조원을 투자해 생산시설을 확충하는 등 차세대 메모리 경쟁력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마이크론은 SK하이닉스의 지난 10일 미국 나스닥 주식예탁증서(ADR) 상장을 계기로 뉴욕증시에서 자금 유치 경쟁이 본격화될 가능성에 긴장하는 분위기다. SK하이닉스의 등장으로 경쟁이 촉진되는 ‘메기효과’가 기대되면서, 투자자들의 관심도 마이크론의 대응 전략에 쏠리고 있다.


인도 명문 사립학교, 비를라 공대 거쳐 美편입


인도 출신 이민자에서 미국 메모리 반도체 업계를 최강자로 우뚝 선 메흐로트라의 성공신화는 AI 반도체 시대를 맞아 다시 주목받고 있다.

메흐로트라는 1958년 인도 북부 칸푸르에서 태어났다. 네 남매 가운데 막내였던 그는 중산층의 평범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아들의 남다른 재능을 알아봤다. 면직물 산업에서 대외협력 업무를 담당했던 아버지는 자녀 교육에 각별한 관심을 쏟았고, 메흐로트라가 열 살이 되던 해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위해 뉴델리로 이주했다.

메흐로트라는 인도 전역에서도 최상위권 명문 사립학교로 꼽히는 사르다르 파텔 비디얄라야(SPV)를 거쳐 인도 명문 공과대학인 비를라 공과대학(BITS Pilani)에 진학했다. 우수한 성적을 바탕으로 1976년 미국 UC버클리 편입했고, 이후 전기공학 및 컴퓨터과학 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에는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SEP)을 수료했다.

하지만 미국 유학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우수한 성적을 바탕으로 UC버클리에 합격했음에도 미국 유학 비자를 세 차례나 거절당하면서 꿈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이때도 포기하지 않은 것은 그의 아버지였다. 세 번째 비자 신청마저 거절되자 아버지는 뉴델리의 미국 대사관을 직접 찾아갔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오던 직원들을 붙잡아 아들의 사정을 설명했다. 결국 영사를 직접 만나 왜 아들에게 미국에서 공부할 기회를 주지 않는지 묻고 끈질기게 설득했다. 약 20분 동안 이어진 간절한 호소 끝에 메흐로트라는 마침내 미국 유학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메흐로트라는 훗날 당시를 떠올리며 “아버지가 ‘그냥 여기서 기다려 보자’고 말씀하셨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며 “20분 동안 미국 영사를 상대로 온 힘을 다해 이야기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봤는데, 평생 본 것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를 “나의 탐정이자 변호사, 그리고 매니저였다”고 비유하며 “‘안된다’는 말을 절대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아버지의 끈질긴 집념이 내 인생을 바꾼 결정적인 계기였다”며 “그 경험을 통해 성공을 원한다면 무엇보다 끈기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샌디스크 창업해 상장…플래시메모리 시대 열다


메흐로트라는 대학 졸업 후 인텔, 시크 테크놀로지, 인티그레이티드 디바이스 테크놀로지 등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며 반도체와 메모리 분야에서 기술력을 쌓았다.

1988년 메흐로트라는 엘리 하라리, 잭 위안과 함께 벤처기업 샌디스크(SanDisk)를 공동 창업하며 본격적으로 기업가의 길에 들어섰다. 훗날 이동식 플래시 메모리 저장장치 분야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샌디스크의 출발이었다.

메흐로트라는 기술력과 경영 리더십을 바탕으로 회사를 디지털 저장장치 혁신의 중심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휴대전화용 플래시 메모리 카드와 USB 플래시 드라이브, 모바일 기기 내장 메모리 등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 사람들이 데이터를 저장하고 활용하는 방식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

엔지니어로 출발한 그는 2011년엔 샌디스크 CEO에 올랐다. 같은 해 샌디스크는 나스닥에 상장됐고 포춘 500대 기업으로 성장하며 세계적인 플래시 메모리 기업 반열에 섰다.

2011년 뉴욕 나스닥에서 샌디스크 공동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산제이 메흐로트라(가운데)와 경영진들이 나스닥 상장을 기념해 개장 종을 울리는 모습. [게티이미지]


샌디스크 매각 뒤 마이크론 CEO로 영입


샌디스크는 이후 2015년에 웨스턴디지털에 160억달러(약 24조4800억원)에 인수됐다. 샌디스크가 웨스턴디지털에 인수되자 메흐로트라는 약 30년간 몸담은 회사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당시 메흐로트라는 성명을 통해 “양사의 결합은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데이터 저장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최고의 회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메흐로트라는 30여년 샌디스크에서 고군분투한 데 안주하지 않고, 2017년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로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그해 초 마이크론 이사회는 마크 더칸 CEO가 은퇴를 발표한 이후 후임을 찾기 위해 50명 이상의 후보를 검토했다. 이후 최소 15명 이상을 직접 면접하면서 회사를 이끌 수장으로 메흐로트라를 최종 낙점했다.

마이크론 이사회가 메흐로트라를 높게 평가한 부분은 크게 세 가지였다. 샌디스크를 세계적인 메모리 기업으로 성장시킨 경영 능력, 반도체 업계에서 30년 넘게 쌓아온 경험, 플래시 메모리 분야 최고 수준의 기술 전문성 등이다. 메모리거산업 전반을 이해하는 기술 경영인이자, 반도체 관련 특허만 70건 이상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이크론은 메흐로트라가 낸드플래시와 스토리지 경쟁력을 더해 줄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당시 마이크론은 D램에선 강점을 보였지만, 낸드플래시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특히 2017년은 메모리 시장이 점차 AI·클라우드 중심으로 바뀌고 있었기 때문에 시대적 흐름에 맞춰 낸드플래시 사업에서도 뒤처져선 안 될 시점이었다.

D램이 데이터를 일시적으로 저장하는 ‘휘발성 메모리’인 반면,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를 유지하는 ‘비휘발성 메모리’다. AI 추론에 필요한 방대한 데이터를 저장하고 필요할 때 빠르게 불러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때문에 AI붐을 타고 낸드플래시 가격은 올해에만 3배 가까이 상승했다.

메흐로트라는 마이크론 CEO 취임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이크론은 훌륭한 기술과 뛰어난 인재를 갖고 있지만 아직 잠재력을 모두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며 “AI와 데이터 폭증 시대에는 메모리와 스토리지가 핵심 기술이 될 것”이 밝혔다.

메흐로트라 취임 이후 마이크론은 AI 메모리(HBM) 시장에 본격 진출했고 엔비디아, AMD 등 주요 AI 반도체 기업에 HBM을 공급했다. 미국 정부의 칩스법을 활용해 대규모 투자도 단행했다.

그 결과 AI 메모리 수요 확대의 수혜를 입으며 실적호조를 보이고 있다. 마이크론은 지난달 24일 2026회계연도 3분기(3~5월) 실적 발표를 통해 매출 414억6000만달러, 조정 주당순이익(EPS) 25.11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1년 전에 비해 매출은 4배, EPS는 13배 넘게 올랐다. 매출총이익률은 84.9%로 지난해 대비(39.0%) 2배 넘게 증가했다.

마이크론, 삼전닉스 맹추격 ‘메모리 3강체제’


수십 년 동안 반도체 산업의 혁신을 이끌어온 메흐로트라의 다음 목표는 분명하다. AI 시대 메모리 반도체 경쟁의 중심에서 마이크론을 세계 최고 기업으로 도약시키는 것이다.

마이크론은 지난 4일 일본 히로시마현의 공장에 약 1조5000억엔(약 14조2000억원) 규모의 통 큰 투자를 단행했다. 오는 2028년 하반기부터 신규 건물에 제조 장비를 반입해 D램과 HBM의 7세대 제품인 HBM4E도 생산하겠다는 포부다. 일본 정부도 이번 투자에 최대 5360억엔(약 5조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주도해온 HBM 시장에 추격의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메흐로트라 CEO는 이날 신규 팹 기공식에서 “AI의 심장인 메모리 기술, 마이크론의 첫 HBM 생산 웨이퍼가 바로 이곳 히로시마에서 만들어졌다”며 “미국의 대담함과 일본의 장인정신이 만나면 타협이 아니라 세계 최고가 탄생한다”고 말했다.

마이크론은 미국 내 대규모 투자도 예고했다.

마이크론은 인공지능(AI) 시대 메모리 수요 급증에 맞춰 2035년까지 미국 내 팹(반도체 생산공장)과 기술 투자 규모를 2500억달러(약 375조원) 이상으로 확대한다고 지난 9일 밝혔다.

이번 투자는 뉴욕주 클레이 타운에 건설 중인 팹 투자 비용과 아이다호·버지니아주 등의 팹 확장 비용을 포함한 규모다. 마이크론은 이와 같은 투자가 자사 D램의 40%를 미국 내에서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뒷받침하며 일자리도 미 전역에 9만개 이상 창출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 투자는 미국 반도체 산업 부활을 목표로 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에 맞추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임기 말까지 전 세계 반도체의 40%를 미국 내에서 생산하도록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와중에 마이크론도 이에 부응해 D램의 40%를 미국 내에서 만든다는 목표를 밝힌 데 따른 것이다.

마이크론은 이외에도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 생태계 강화를 위해서도 최대 30억달러(4조5000억원)를 추가 투자할 방침이다. 이 가운데 5억달러는 대만 기업 글로벌웨이퍼스의 텍사스주 웨이퍼 제조시설 확장에 지원하고 10년 장기공급 계약을 맺기로 했다.

산자이 메로트라 최고경영자(CEO)는 “미국이 건국 250주년을 맞이하는 가운데 데이터와 메모리는 현대 경제의 초석이 됐다”며 “이러한 시대에 발맞추기 위해 미국 내 투자 규모를 2035년까지 2500억 달러 이상으로 확대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SK하이닉스가 오는 10일 나스닥 ADR 상장을 앞둔 가운데 마이크론이 이 같은 대규모 투자를 발표한 것은 같은 메모리 분야 업체로서 경쟁자를 견제하려는 의도로도 풀이된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상장을 통해 약 265억 달러(약 40조원)를 조달할 계획이다.

시장 성장세도 가파르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메모리 시장 규모는 전 분기(1분기) 대비 60% 이상, 지난해보다 380% 성장한 35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시장 구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앞서 있다. 올해 1분기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38%, SK하이닉스가 29%로 1·2위를 차지했고, 마이크론은 22%로 3위를 기록했다. 낸드플래시 시장에서도 삼성전자가 29%, SK하이닉스가 18%로 선두권을 형성한 가운데 마이크론은 13%로 4위에 올라와 있다.

메모리 3사가 모두 증설 경쟁에 돌입한 가운데 2028년 이후 차세대 HBM 시장을 둘러싼 주도권 다툼에서 메흐로트라가 이끄는 마이크론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아성을 위협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영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