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폐교 아파트’ 실험…100년 학교, 62가구 아파트 됐다[나우,어스]

교실은 거실·체육관은 주민 커뮤니티로 변신
지난해 공급 4배 급증…주택난·폐교 문제 동시에 해결
“다니던 학교에서 산다” 주민들 추억까지 보존


옛 학교 교실을 개조한 웰스 스쿨 레지던스. 높은 천장과 대형 창문 등 학교 건물의 특징을 그대로 살렸다.[프레디맥(Freddie Mac)]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저출산과 학령인구 감소로 문을 닫은 미국의 공립학교가 새로운 주택 공급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교실은 아파트로, 체육관은 주민 커뮤니티 시설로 바뀌며 노후 학교 건물이 임대주택으로 잇따라 재탄생하고 있다. 주택난 해소와 역사적 건축물 보존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 지방정부와 개발업계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에서 폐교를 아파트로 리모델링하는 사업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부동산 플랫폼 렌트카페(RentCafe)는 지난해 학교 건물을 개조해 공급된 아파트가 약 2000가구로 전년보다 4배 늘었다고 집계했다. 올해 초 기준 개발 예정 물량도 9320가구로 2024년 초 7710가구보다 크게 증가했다.

폐교가 주거시설로 각광받는 이유는 일반 사무실보다 주택으로 개조하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학교 교실은 원래부터 아파트와 비슷한 규모로 설계돼 있고, 높은 천장과 넓은 창문 덕분에 채광과 개방감이 뛰어나다. 대부분 지역 중심부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고, 주차 공간도 이미 확보돼 있어 신규 개발보다 사업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맨해튼의 폐교 PS186 리모델링을 맡은 건축사무소 다트너의 다니엘 휴버거는 “새 아파트에서는 얻기 어려운 공간감과 채광을 학교 건물은 그대로 제공한다”고 말했다.

대표 사례는 매사추세츠주 사우스브리지의 ‘웰스 스쿨 레지던스’다. 1970년대 중학교였던 이 건물은 2022년 62가구 규모의 노인 임대주택으로 탈바꿈했다.

이곳 주민인 미셸 클루티에는 과거 이 학교 학생이었다. 당시 미술실은 현재 그의 집이 됐고, 학생들이 피구를 하던 체육관은 주민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행사를 여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바뀌었다.

클루티에는 WSJ에 “복도를 걷고 계단을 오르내리던 기억이 그대로 떠오른다”며 “예전에는 피구를 하던 체육관에서 이제는 이웃들과 음식을 나눠 먹는 모임을 연다”고 말했다.

미국 지방정부도 이런 개발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학생 수 감소로 학교 운영이 어려워진 데다 빈 건물을 유지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폐교를 활용하면 저렴한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동시에 지역의 역사적 건축물을 보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개발업체들은 연방 및 주정부의 저소득층 주택 세액공제와 역사문화 건축물 보존 세제 혜택 등을 활용해 사업성을 확보하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한 폐교 리모델링 사업은 수천만달러 규모의 세제 혜택과 지방정부 지원을 받아 추진됐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폐교 PS186 리모델링 전(왼쪽)과 후 모습. [프레디맥(Freddie Mac)]


반면 리모델링 과정은 쉽지 않다. 상당수 학교는 100년 안팎의 노후 건물로 전기·기계 설비를 전면 교체해야 하고, 석면과 납 제거 작업도 필요하다. 강당과 체육관, 식당처럼 넓은 공간은 주거시설로 활용하기 어려워 수익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다.

그럼에도 개발업체들은 일반 임대주택보다 주민들의 호응이 훨씬 크다고 입을 모은다. 학교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추억이 담긴 공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단지는 복도의 사물함과 칠판, 화강암 계단 등을 그대로 보존했다. 매사추세츠주의 또 다른 폐교 아파트 주민인 팀 코즐로스키는 “100년 동안 사람들이 오르내린 계단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며 “건물에 들어오면 학교 특유의 분위기가 여전히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들끼리 모임이 생기고 작은 갈등도 생기는데, 정말 학교 생활과 비슷하다”며 “학교가 새로운 공동체로 다시 살아난 느낌”이라고 말했다.

WSJ는 미국에서 폐교 리모델링이 늘어나는 배경에는 출산율 하락과 공립학교 학생 수 감소가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 역시 학령인구 감소로 폐교가 매년 늘고 있는 만큼, 역사적 학교 건물을 주택이나 복합시설로 재활용하는 미국식 모델이 새로운 활용 방안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