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내 잘못 같아” 악몽의 성폭력 피해, 23만명이 이곳서 도움을 구했다 [세상&]

서울해바라기센터 언론공개 행사 진행
24시간·연중무휴 센터 운영
지난해 1905명 성폭력 피해자 센터 찾아
응급키트를 활용한 증거채취 과정 공개

지난 10일 찾은 서울 해바라기센터 별관 외벽에 서울특별시, 서울경찰청, 서울대학교병원 그리고 성평등가족부 마크가 함께 붙어있다. 해바라기센터는 4개 기관이 협력해 운영하는 통합지원기관이다. 전국적으론 41개의 센터가 있다. 김도윤 기자.


[헤럴드경제=김도윤 기자] 성폭력 피해 직후 가해자의 DNA 등 법의학적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통상 72시간이다.

성별과 나이, 내·외국인 여부와 관계없이 피해를 입은 누구나 의료와 수사, 상담, 심리치료를 한곳에서 받을 수 있도록 24시간 문을 열어놓은 곳이 있다.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스토킹·교제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해바라기센터다.

서울해바라기센터는 지난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위치한 센터 본관과 별관에서 언론공개행사를 열고 2011년 2월부터 올해 5월 말까지 총 23만4866명이 센터를 이용했다고 밝혔다. 지난해에 서울해바라기센터에서 도움을 받은 피해자는 1905명이다.

센터는 피해자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감정으로 “모두 내 잘못 같다”, “보복당하면 어떡하지” 같은 두려움과 고립감을 꼽았다.

성폭력 피해 이후 혼자 싸워야 한다는 막막함이 들 때, 전국 어디서든 여성긴급전화 1366을 통해 해바라기센터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센터 측 설명이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서울해바라기센터 본관 2층에선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수사 지원이 이뤄진다. 피해자 진술 녹화와 수사 상담, 각종 피해자 지원제도 연계 등이 가능하다. 김도윤 기자.


해바라기센터가 만들어진 계기는 2003년 발생한 아동 성폭력 사건이었다. 당시 성폭력 피해를 입은 4세 여아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병원과 경찰서, 상담소 등을 35시간 동안 전전한 사실이 알려지며 사회적 공분이 일었다.

아이를 씻기던 중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아차린 보호자는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 성폭력상담소 등을 찾았을 때 “경찰과 함께 와야 진료할 수 있다” , “산부인과와 정신과 진료를 먼저 받으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사건 이후 의료와 수사, 상담, 심리 지원을 한 곳에서 제공할 수 있는 통합체계 필요성이 대두됐고 이듬해인 2004년 해바라기센터가 처음 출범했다. 현재 해바라기센터는 전국 41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날 서울해바라기 센터는 성폭력 응급키트를 활용한 증거채취 과정도 공개했다.

응급키트는 피해자의 동의를 받은 뒤 진료기록을 작성하고, 겉옷과 속옷, 생리대 등에 남은 이물질을 보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후 손톱 밑이나 피부에 남은 가해자의 DNA와 타액을 채취하고, 피해 상황에 따라 체모와 생식기, 항문, 구강 등에 남은 증거를 확보한다

약물이나 마약, 알코올 피해가 의심되면 혈액과 소변 검사도 함께 진행한다.

과정은 ▷피해자 및 관계인 동의서 작성 ▷피해자 진료기록 작성 ▷겉옷, 속옷, 생리대 등 이물질 수집 ▷피해자 신체의 부스러기 채취(손톱 샘플) ▷가해자의 얼룩 및 타액 채취 ▷가해자가 흘린 음모 채취 ▷생식기 증거 채취 ▷항문 직장 내 증거 채취 ▷구강 내 증거 채취 ▷혈액 채취 ▷소변 채취 ▷성폭력 증거채취 응급키트 체크리스트 작성 및 응급키트 봉인지 부착 순으로 진행된다.

응급키트 내용물. 응급키트 안에는 단계별로 법의학적 증거채취에 필요한 도구들이 들어있다. 김도윤 기자.


응급키트를 활용한 증거채취는 총 12단계로 통상 3~4시간가량 걸린다. 서울해바라기센터의 경우 월평균 25개의 응급키트를 사용한다.

서울해바라기센터에는 상담사와 의료진, 경찰 등 30명이 근무한다. 피해 직후가 아니더라도 과거 피해와 관련한 상담도 가능하고 피해자 가족 역시 상담과 심리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외국인 피해자에게는 경찰청 등록 통역사와 이주여성 상담 기관 등을 연계해 상담과 초기 진술을 돕는다.

지난해 서울해바라기센터를 찾은 피해자 1905명의 피해 유형을 보면 성폭력 피해가 1484명으로 전체의 77.9%를 차지했다. 이어 가정폭력 187명(9.8%), 기타 139명(7.3%), 데이트폭력 35명(2%), 스토킹 33명(2%), 성매매 10명 순이었다.

성별로는 여성이 1665명으로 약 87 %, 남성이 230명으로 약 12%였다.

나이별로는 19세 이상이 1235명으로 가장 많았고, 10세 이상 19세 이하 300명, 0~9세 151명, 60세 이상 29명이었다.

가해자 유형이 확인된 1508명 가운데 가족·친인척은 125명, 연애 상대는 138명 ,사회적 관계는 408명이었다.

센터는 성폭력 가해자가 낯선 사람보다 가족이나 연인, 지인 등 피해자와 관계가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정명신 서울해바라기센터 행정소장은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피해자가 점차 늘고 있어 이 부분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해바라기센터는 피해자에게 필요한 지원을 놓치지 않도록 끝까지 돕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