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체계 평가·방산 수출용 공통 잣대 제시
전투기·전투복 등 국방 표준화 나선 KRISS
“측정 신뢰 없으면 전장선 사람 목숨 문제”
![]() |
| 권재용(왼쪽) 책임연구원과 이상수 선임기술원이 로봇 기반 전자파 측정시스템으로 전투차량 축소모형의 위치·정렬을 조정하며 전자파 산란 특성을 평가하고 있다.[KRISS 제공] |
[헤럴드경제=전현건 기자]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파를 얼마나 정확히 관리하는지가 스텔스·레이더·국방기술의 판을 좌우한다”
권재용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전자파측정그룹 책임연구원은 지난 9일 대전광역시 KRISS 연구소에서 헤럴드경제 프로파일럿 팀과 만나 “스텔스 전쟁의 향방은 더 이상 레이더 출력이나 장비 크기가 아니라 얼마나 정확하고 공통된 기준으로 전자파를 재느냐에 달려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권 연구원이 몸담은 KRISS 전자파측정그룹의 역할은 국방·통신·반도체 분야에서 쓰이는 전자파에 대한 ‘국가 측정표준’을 세우는 일이다. 레이더 전력, 안테나 이득과 패턴, 전자파 흡수재의 물성, 반도체 공정용 고주파 특성 등 방산·산업 전반을 가로지르는 물리량을 국제 수준으로 맞추고 유지·관리하는 것이 가장 주된 목적이다.
권 연구원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전자파 측정표준을 바탕으로, 실제 전투기를 공중에 매달지 않고도 축소모형과 초고주파, 로봇을 결합해 레이더 단면적(RCS)을 정밀하게 읽어내는 시스템을 독자개발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파를 계량화하는 이 기술은 차세대 전투기·전투차량·드론·전투복까지 ‘보이지 않는 국방기술’을 표준화하는 새로운 인프라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시스템은 상하·좌우·앞뒤 이동과 회전이 모두 가능한 6자유도(6-DOF) 로봇에 다양한 스캔 형상을 결합해, 최고 750GHz까지 폭넓은 대역의 전자파를 측정할 수 있다. 수십 GHz 이상 고주파 대역에서는 파장이 짧아 측정 대상의 위치가 미세하게 어긋나도 결과값이 크게 달라지는데, KRISS는 위치 계측·보정 기술을 적용해 안테나 정렬 오차를 세계 최고 수준인 10마이크로미터(㎛) 이내로 제어했다. 머리카락 굵기의 약 7분의 1에 불과한 이 오차 수준은 고주파 스텔스·레이더 평가에서 ‘측정 신뢰도’를 좌우하는 핵심 지표다.
또 로봇의 유연한 기동성을 활용한 덕분에 기존 대형 전자파 시험시설의 공간·비용 제약도 크게 줄였다. 과거에는 거대한 무향실과 고정형 안테나·스테이지 설비를 구축해야 했지만, KRISS 시스템은 로봇이 기체·탄두·안테나 주변을 정밀하게 이동하며 스캔하는 방식으로 좁은 공간에서도 저비용 고정밀 시험을 반복 수행할 수 있다.
복잡한 형상의 항공기 레이다, 초정밀 제어가 필요한 위상배열 안테나 모듈, 반도체 패키지 안테나 등 다양한 측정 대상에 맞춰 제어·모니터링 소프트웨어와 측정 구성을 유연하게 바꿀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국방 분야에서 이 시스템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스텔스 성능을 나타내는 RCS 평가 방식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실사 비행기를 공중에 매달아 레이더를 쏘는 방식으로 RCS를 계측했다. 길이 20m, 폭 50m에 달하는 비행기를 지탱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측정할 수 있는 시험장을 구축하는 데만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간다.
권 연구원의 접근은 다르다. 실물 대신 1/20~1/30 수준으로 줄인 축소 모형을 사용하고, 그에 맞춰 파장이 짧은 300~500GHz대 초고주파를 쏜다. 비행기 크기와 파장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크기와 파장을 같은 비율로 줄이면 작은 모형에서도 실물과 유사한 산란 특성을 얻을 수 있다는 ‘스케일 모델’ 개념을 활용한 것이다.
권 연구원의 연구는 스텔스의 양 면, 즉 ‘창’과 ‘방패’를 동시에 겨냥한다. 고감도 측정기술과 RCS 분석은 스텔스 표적을 찾아내는 ‘창’을 강화하는 기술이다. 동시에 전자파 흡수재를 개발하고 적용하는 연구는 레이더에 덜 보이게 만드는 ‘방패’를 두껍게 하는 작업이다.
전투복도 실험 대상이다 권 연구원은 “비행기·탱크뿐 아니라 전투복에도 이런 특수 재료를 적용해, 사람이 전자파 관점에서 얼마나 보이는지를 평가할 수 있다”며 “드론·위성·지상레이더가 사람을 식별하는 시대에 전투복의 RCS·열 특성 설계는 전장 생존성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국방 현장에서 ‘표준’의 가치는 곧 생명과 직결된다. 그는 “믿을 수 없는 스펙을 기반으로 무기를 도입했다가 전장에 나가서 ‘아니더라’ 하면, 그냥 숫자 문제가 아니라 사람 목숨 문제”라고 강조했다.
방산 수출·도입 과정에서 스펙을 임의로 부풀리거나 축소하는 논란을 줄이고, 실제 작전에서 ‘동맹이 같은 그림을 보는지’를 확인하려면, 국제적으로 합의된 측정·비교 체계가 필요하다. KRISS가 구축하는 전자파 측정 표준은 바로 이 점에서 ‘보이지 않는 국방 인프라’다.
권 연구원은 “과학적으로, 어디서나 똑같이 재고 쓸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측정표준이다. 국방도 마찬가지”라며 “레이더가 보는 전투기 크기, 미사일 피탐지 거리, 스텔스 코팅 효과를 같은 잣대로 정의해야, 동맹국 간 상호운용성과 방산 수출입 협상에서 같은 그림을 보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인공지능(AI)을 접목해 국방, 반도체, 차세대 통신 등 국가 전략기술 분야의 전자파 측정기술을 더욱 고도화하겠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