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된 신분증, 저랑 다른 사람이래요’ 안면인증 폰 개통 ‘모바일’ 우회로로 몰린다 [세상&]

휴대전화 개통 때 다중 본인확인 의무화
통신사 대리점 둘러보니…‘진땀’ 개통
“설명은 길어져, 개인정보 우려는 여전”


8일 서울 종로구 한 통신사 대리점에서 직원이 안면인증 시범을 보인다. 김서현 수습기자


[헤럴드경제=정주원 기자·김서현 수습기자] “고개를 위로 드세요. 이번엔 오른쪽으로 돌려주세요.”

지난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 한 통신사 대리점. 휴대전화를 개통하러 온 박창훈(53) 씨가 직원이 건넨 QR코드를 휴대전화로 찍고 화면 속 안내에 카메라를 보고 얼굴을 상하좌우로 돌렸다. 주민등록증 속 사진과 실물이 달라 인식되지 않았다. 다섯 번의 시도 만에 겨우 인증됐다.

박씨는 “주민등록증을 만든 지 15년이 넘었다. 살도 많이 쪄서 그런지 계속 동일인이 아니라고 떴다”며 “불편하긴 했지만 하라니까 할 수밖에 없었다”고 겸연쩍게 말했다.

이달 6일부터 휴대전화 신규 가입이나 번호이동을 할 때는 신분증 확인 외에도 안면인증을 해야 한다. 안면인증이 싫다면 모바일 신분증 또는 당일 발급한 주민등록초본을 제시해 추가 본인확인을 거쳐야 한다. 명의도용을 통한 대포폰 개통과 보이스피싱 범죄를 막으려는 조치다.

헤럴드경제 취재진이 시행 첫 주 종로구 일대 이동통신 3사 직영점과 대리점을 둘러본 결과 현장에서는 “안면인증보다 설명이 더 오래 걸린다”는 반응이 공통으로 나왔다. 동시에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한 이용자들은 안면인증 대신 다른 방법을 찾는 모습이었다.

인증보다 설명이 더 길어…대리점 ‘진땀’


서울 종로구의 한 SK텔레콤(SKT) 대리점 직원은 “안면인증 자체는 어렵지 않은데 왜 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고 말했다. 이 매장은 한 달 전부터 안면인증을 시범운영 해 왔지만 고객들의 질문은 끊이지 않았다.

대리점 관계자는 “대부분은 그러려니 하는데 일부는 ‘왜 얼굴 정보까지 확인하느냐’, ‘정보 유출되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며 “아이폰은 인증 과정에서 연결이 잘 안되는 경우가 있어 직원 휴대전화로 인증을 도와드리면 ‘왜 직원 휴대전화로 하느냐’며 오해를 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왜 인증이 필요한지 정부나 통신사 차원의 안내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7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지하 휴대전화 판매장에서 한 고객이 휴대전화 개통을 위해 직원과 상담하고 있다. 김서현 수습기자


서울 종로구 KT플라자 광화문중앙점도 비슷했다. 직원들은 혹시라도 실수할까 업무 매뉴얼을 출력해 놓고 응대하는 모습이었다. 이곳 직원은 “우리도 아직 익숙하지 않아 종이를 보면서 업무를 한다”며 “오프라인 신규 개통 고객 자체가 많지 않아 실제 효과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용자들의 반응도 엇갈렸다. 40대 김모 씨는 모자를 벗고 세 차례 안면인증을 시도한 끝에 인증을 마쳤다. 김씨는 “얼굴 정보를 어디에 쓰는지 저장되는 건 아닌지 계속 물어봤다”며 “요금제 상담도 있었지만 걱정돼 이것저것 확인하다 보니 3시간 가까이 걸렸다”고 했다.

인근의 또 다른 대리점에서는 70대 남성이 오래된 주민등록증 때문에 개통을 포기하는 장면도 목격됐다. 신분증 사진이 너무 오래돼 얼굴 대조가 어렵다며 새 신분증을 발급받아 오라는 안내를 받은 그는 “한 시간이나 기다렸는데 다시 오라니 답답하다”며 발길을 돌렸다.

안면인증 대신 주민등록초본을 준비했다가 허탕을 친 사례도 있었다. 광화문역 인근의 한 대리점 직원은 “안면인증을 하기 싫어 초본을 가져왔는데 당일 발급본이 아니라 규정상 사용할 수 없어서 그냥 돌아간 고객도 있었다”고 전했다.

모바일 신분증부터 ‘우회법’까지…이용자들 벌써 적응


현장에서는 안면인증을 대신 다른 대안을 찾는 이용자들이 적지 않았다. 8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의 한 통신사 직영점으로 휴대전화를 개통하러 온 홍모(24) 씨는 안면인증 대신 모바일 신분증으로 본인확인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친구들이 미리 안면인증을 해야 한다고 알려줘서 알고 있었다“며 “모바일 신분증이 되는데 굳이 얼굴 정보를 넘기고 싶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변 친구들도 대부분 안면인증은 꺼린다. 다들 모바일 신분증으로 하면 된다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퇴근 후 번호이동을 위해 직영점을 찾은 직장인 이승민(27) 씨도 “안면인증을 해야 하는 줄 몰랐는데 모바일 신분증도 된다고 해서 그걸 선택했다”며 “딥페이크 범죄도 잦고 얼굴 정보는 민감하니까 굳이 안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대리점 관계자들도 비슷한 분위기를 전했다. 한 대리점 점장은 “요즘은 안면인증을 피하려고 모바일 신분증을 준비해 오는 젊은 고객이 많다”며 “신분증만 들고 오는 분들은 고령층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대리점 직원도 “최근 개통 고객 절반 정도는 제도를 모르고 왔고 알고 온 사람들은 대부분 모바일 신분증을 선택했다”고 전했다.

지난 7일 서울 종로구의 한 통신사 대리점의 휴대전화 개통 안내 사항. 김서현 수습기자


온라인에서는 벌써 안면인증을 피하는 방법도 공유되고 있다. 커뮤니티에는 “모바일 신분증으로 하면 안면인증을 안 한다”, “모빙(알뜰폰 요금제 셀프개통)으로 개통하니 안면인증이 없었다”, “일부러 인증 오류를 여러 번 냈다”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이번 제도는 유심 정보 유출 사고 이후 커진 명의도용 우려를 계기로 마련됐다. 앞서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는 안면인증 의무화 과정에서 생체정보 처리와 개인정보 보호 측면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황진주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휴대전화가 금융 본인인증의 출발점인 만큼 개통 단계에서 명의도용을 차단하려는 취지는 의미가 있다”면서도 “안면인증·모바일 신분증·주민등록초본 모두 사전 준비를 요구해 소비자 부담이 커졌고 특히 디지털 취약계층에는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안면인증을 꺼리는 현상은 유심 해킹 이후 통신사에 민감한 생체정보를 또 제공해야 한다는 소비자의 심리적 저항으로 볼 수 있다”며 “비밀번호와 달리 얼굴은 바꿀 수 없어 통제권을 잃는다는 불안감도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제도 취지는 타당하지만 모든 이용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보다 명의도용 위험이 큰 경우에 인증을 강화하는 방식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보안 강화와 함께 소비자가 납득할 수 있는 설명과 신뢰를 쌓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