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서 ‘타짜’ 20주년 메가토크
유해진 “고광렬 이후 앞이 보이기 시작”
최동훈 “고광렬 휴머니티, 유해진 제안으로 살아나”
“차기작은 추리·첩보·하드보일드 드라마”
![]() |
| 배우 유해진.[연합] |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안녕하세요, 고광렬입니다.”
배우 유해진의 첫인사만으로도 객석이 술렁였다. 영화 ‘타짜’ 속 고광렬은 개봉 20년이 지난 지금도 관객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유해진의 얼굴 중 하나다. 유해진 역시 자신의 대표 캐릭터로 고광렬을 꼽으며 “그 작품 이후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돌아봤다.
11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는 영화 ‘타짜’ 개봉 20주년을 기념한 메가토크가 열렸다. 최동훈 감독과 유해진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는 부천시청 어울마당 500여석이 관객들로 가득 찼다. 2006년 극장에서 ‘타짜’를 봤던 관객부터 TV 특선영화와 온라인 다시보기로 대사를 외우다시피 한 관객까지, 20년 묵은 영화의 장면과 대사를 함께 떠올렸다.
유해진은 이날 “대표작에 대한 질문을 자주 듣는데요, 어느 하나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타짜’의) 고광렬입니다”라고 말했다.
고광렬은 주인공 고니(조승우 분)와 함께 전국 도박판을 떠도는 인물이다. 판 위에서는 쉬지 않고 말을 쏟아내 상대를 흔들지만, 판 밖에서는 끝까지 고니와의 의리를 놓지 않는 캐릭터다. ‘타짜’의 긴장감 사이사이에 인간미와 웃음을 불어넣은 인물이기도 하다.
유해진에게도 고광렬은 특별했다. 그는 “‘타짜’를 촬영했을 때가 서른 후반쯤이었는데, 배우로서의 위치 등 모든 면에서 불안정했고 생활적인 면도 넉넉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러다 ‘타짜’ 이후부터 ‘아 그래도 좀 앞이 슬슬 보이기 시작하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며 “그래서 고광렬에 대한 생각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동훈 감독도 고광렬의 존재감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원래 영화에선 주인공 옆에 있는 인물이 중요하다”며 “유해진의 고광렬은 말맛을 살리고, 온갖 임기응변으로 사람(관객)을 삭 감는 캐릭터”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제작 비화도 공개됐다. 고광렬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일부 장면은 원래 시나리오에 없었다. 고니와 연락이 끊긴 뒤 고광렬이 정 마담(김혜수 분)에게 고니의 안부를 묻는 장면 역시 유해진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최 감독은 “유해진 씨가 그런 장면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시나리오를 써서 그다음 날 바로 찍은 것”이라며 “그런 장면이 없었다면 고광렬의 휴머니티가 온전히 살아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돌아봤다.
유해진도 해당 장면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메가토크 행사에) 오면서 저도 그 장면이 생각나더라”면서 “정 마담이 계셔서 그런지, 저한테 그 장면이 선명하게 남아있다”고 웃었다.
조승우와의 호흡도 오래 남은 기억이었다. 영화 속 고니와 고광렬은 도박판을 함께 누비며 형제 같은 동지애를 나눈다. 유해진은 “현장에서 조승우와 거의 계속 붙어 다녔던 기억이 참 좋았다”면서 “저는 이렇게 두 사람이 정을 나누고, 그러면서 사람 사는 얘기가 담겨 있는 영화를 재밌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해진은 앞서 지난 1월 영화 ‘왕과 사는 남자’ 개봉을 앞두고 진행한 인터뷰에서도 박지훈과 촬영 현장에서 자주 함께 걸으며 극 중 인물들처럼 가까워졌다고 말한 바 있다. 결국 그가 오래 기억하는 작품에는 사람 사이의 정과 현장의 온기가 함께 남아 있는 셈이다.
이날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타짜’의 마지막 장면에 대한 뒷이야기였다. 영화 말미에서 고니는 공중전화 수화기를 든다. 그가 누구에게 전화를 거는지는 오랫동안 관객 사이에서 해석이 갈린 장면이었다.
최 감독은 “다들 고니가 마지막에 누구한테 전화하는 거냐고 물어본다”며 “원래는 이분한테 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옆에 앉은 유해진을 가리켰다. 고니가 전화를 걸려던 상대가 고광렬이었다는 설명이다.
다만 최 감독은 그 장면을 끝내 직접 보여주지 않은 이유도 덧붙였다. 그는 “그 부분(고니가 고광렬에게 전화하는 부분)을 빼니까 불완전한 엔딩 같아서 더 느낌이 좋았다”고 했다.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오래 남은 엔딩이 된 셈이다.
20년 전 영화가 다시 관객을 모은 것은 최근 극장가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신작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서도 과거 흥행작을 다시 꺼내 보고, 감독과 배우의 제작 비화를 함께 소비하는 방식이 영화 팬들 사이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타짜’처럼 대사와 캐릭터가 오래 살아남은 작품일수록 이런 재소환의 힘은 더 커진다.
최동훈 감독은 ‘타짜’ 이후에도 ‘전우치’, ‘도둑들’, ‘암살’, ‘외계+인’ 시리즈 등을 선보이며 활발히 활동했다. 현재는 차기작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그는 “차기작 시나리오를 1년 4개월째 쓰고 있다”며 “장르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추리, 첩보, 하드보일드 드라마’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드라마 속에서 속고 속이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며 “(차기작은) 그런 유의 스토리가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년이 흐른 소감도 담담하게 전했다. 최 감독은 “어쩌다 20년이 흘렀는지 저도 잘 모르겠다”며 “타짜를 뛰어넘는 영화를 꼭 찍도록,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