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동의 없이 간편…청구 시점 자격 판단
이혼·재혼·이민에 관계 변해도 변경 필요 없어
人담보 전 상품 확대되고 청약 화면도 ‘무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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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째 치매보험료를 내온 최성진(가명·58) 씨에게 갑자기 치매가 찾아왔다. 가족들이 보험을 청구하려 했지만 계약자도, 받을 사람도 모두 본인이라 최씨가 서명하지 못하면 방법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름 대신 ‘관계’만 정해뒀다면 달랐을까. [제미나이를 이용해 제작함] |
[헤럴드경제=박성준 기자] 대한민국이 65세 이상 인구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들어서며 치매·간병보험 가입은 크게 늘었다. 그런데 정작 큰 병이 닥치면 보험금을 청구할 당사자가 인지능력을 잃어 돈이 그대로 묶이는 일이 반복됐다. 이를 막을 대리청구인 지정제가 있었지만 절차가 번거로워 활용도는 낮았다.
실제 치매보험 대리청구인 지정률은 2021년 26%에서 올해 상반기 23.1%로 되레 뒷걸음질 쳤다. 이에 지난 1일부터 이름 없이 ‘관계’만으로 지정하는 무기명 방식이 새로 도입됐다. 미리 ‘배우자·자녀’ 같은 관계만 적어두면 위기의 순간 가족이 보험금을 대신 청구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최씨처럼 뒤늦게 후회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제도의 달라진 점을 문답으로 풀어봤다.
내가 아파서 보험금을 직접 청구하지 못할 때를 대비해, 나 대신 청구할 사람을 미리 정해두는 제도입니다. 사망보험금은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보험에는 세 가지 역할이 있습니다. 보험료를 내는 ‘계약자’, 보험의 대상이 되는 ‘피보험자’, 그리고 보험금을 받는 ‘수익자’입니다. 치매보험이나 간병보험은 최 씨처럼 이 셋이 모두 본인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문제는 정작 치매나 중증 질환이 오면 환자 본인이 보험에 가입한 사실 자체를 잊거나, 기억하더라도 서명 같은 청구 절차를 밟을 수 없게 된다는 점입니다. 나를 위해 부은 돈인데 나만 꺼낼 수 있고, 그 ‘나’가 꺼낼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겁니다.
이때 대리청구인을 등록해 뒀다면 가족이 곧바로 보험금을 청구해 간병비·치료비로 쓸 수 있습니다. 등록해 두지 않았다면 법원에서 성년후견인(판단 능력을 잃은 사람을 대신할 법정 대리인)을 지정받아야 하는데, 이 절차에 적잖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사이 가족끼리 병원비를 떠안다 갈등이 생기거나, 정작 돈이 필요한 순간에 보험금을 못 꺼내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런 공백을 줄이기 위해 금융당국과 보험업계가 지난 1일부터 제도를 크게 손질했습니다.
대리인을 정할 때 ‘기명(이름)’과 ‘무기명(관계)’ 중 원하는 방식을 고를 수 있게 됐습니다.
기존에는 반드시 “홍길동”처럼 특정인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적어야 했고, 지정되는 당사자의 개인정보 제공 동의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입할 때 마땅한 사람을 정하지 못해 미루거나, 절차가 번거로워 아예 건너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가족 상황이 바뀌었는데 변경 절차를 놓쳐, 정작 위기 순간에 제도를 못 쓰는 일도 잦았습니다. 이름 석 자가 족쇄가 됐던 셈입니다.
지난 1일부터는 이름 대신 ‘배우자’, ‘자녀’ 같은 관계로도 지정할 수 있습니다. 특정인의 정보를 적지 않으니 개인정보 동의도 필요 없습니다. 가입할 때는 관계만 정해두고, 나중에 실제 청구하는 시점에 가족관계증명서 등으로 “내가 그 배우자·자녀가 맞다”는 자격을 증명하면 됩니다.
지정 범위는 피보험자의 가족관계등록부(또는 혼인관계증명서)나 주민등록상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입니다. 직계존비속이란 부모·조부모처럼 나보다 윗세대(존속)와 자녀·손주처럼 아랫세대(비속)를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대리청구인 자격은 가입 당시가 아니라 보험금을 청구하는 ‘그 순간’의 가족관계등록부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무기명으로 ‘배우자’를 지정해 뒀다가 이혼했다면, 전 배우자는 청구 시점에 배우자가 아니므로 자격을 잃습니다. 가입 후 재혼했다면 현재의 배우자가 대신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혼·재혼·사망으로 가족이 바뀌어도 보험사에 따로 변경 신청을 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오히려 이름이 발목을 잡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홀로 지내는 박정자(가명·73) 할머니는 5년 전 치매보험에 들며 곁에 살던 큰딸을 기명으로 지정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큰딸이 남편의 해외 발령으로 미국에 이민을 갔고, 최근 할머니의 인지능력이 떨어지자 국내의 아들이 청구에 나섰지만 대리청구인이 ‘큰딸’로 못 박혀 있어 막혔습니다. 시차가 어긋나는 해외에서 서류를 받고 공증을 거치느라 지급이 한참 미뤄졌습니다.
혼수상태에 빠진 강호철(가명·61) 씨 가족의 사정은 더 딱했습니다. 치료비를 마련하려 보험을 살피던 가족들이 발견한 대리청구인은 10년 전 가입 당시의 ‘배우자’, 즉 오래전 이혼해 연락처도 모르는 전처였습니다. 전처의 동의나 서류 없이는 대리 청구가 불가능하다는 안내에, 가족들은 “간병에 보험금 청구까지 이중고를 겪었다”고 토로했습니다.
두 사례 모두 지정 자체는 해뒀지만 ‘특정인의 이름’이라는 형식이 문제였습니다. 가족 상황은 언제든 변할 수 있는 만큼, 관계로 지정해 두는 편이 실용적이고 안전한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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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명은 2명까지 지정할 수 있고, 두 명을 정할 때는 그중 대표 대리인을 둬야 합니다. 대표가 보험금을 청구·수령하고, 대표가 사망 등으로 청구할 수 없을 때에 한해 나머지 한 명이 나설 수 있습니다.
무기명은 인원 제한이 없는 대신 범위를 골라야 합니다. 선택할 수 있는 관계유형은 ▷배우자 및 직계존비속 ▷배우자 ▷부모 ▷자녀 ▷조부모 ▷직계비속 ▷직계존속 등 모두 7가지입니다. 범위를 넓게 잡을수록 청구할 수 있는 가족이 많아지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배우자 및 직계존비속’처럼 폭넓게 정해두는 편이 든든합니다.
기명과 무기명이 조금 다릅니다. 기명은 대리청구인이 보험금을 받아 보험수익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이고, 무기명은 대리청구인이 청구하면 보험금이 보험수익자의 은행 계좌로 바로 지급됩니다. 어느 쪽이든 돈의 최종 주인은 수익자이고, 대리청구인은 어디까지나 ‘청구를 대신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무기명은 돈이 수익자 계좌로 바로 들어가는 구조라 대리인이 중간에서 손댈 여지가 없습니다.
무기명 지정된 배우자·자녀가 실제 청구할 때 필요한 서류는 두 갈래입니다. 보험금 청구서, 대리청구인 신분증 사본, 피보험자 진단서와 의료비 영수증 등 기본 서류에, 무기명 자격을 증명할 청구 시점의 가족관계증명서(또는 혼인관계증명서)를 더하면 됩니다. 서류 접수 후 보험금은 조사가 필요한 경우를 빼면 평균 3영업일 안에 지정된 수익자에게 지급됩니다.
은행의 ‘거동불가 예금주’ 제도를 활용하면 됩니다.
무기명 방식에서 보험금은 피보험자(수익자) 본인 계좌로 들어오는데, 정작 본인이 의식불명이면 그 돈을 꺼내 병원비를 낼 수 없는 상황이 생깁니다. 보험사에서 돈은 나왔는데 은행 문턱에서 다시 막히는 셈이죠. 이때 대리청구인이 입금된 계좌의 은행을 방문해 병원비 결제 목적의 송금을 요청하면, 본인 서명 없이도 계좌에서 병원으로 치료비를 직접 이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은행이 치료비 관련 증빙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의사 진단서(또는 소견서), 대리인 신분증, 가족관계증명서, 병원 치료비 영수증이나 세금계산서 등을 미리 챙겨가는 게 좋습니다. 필요 서류는 은행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으니 방문 전 해당 은행에 확인하면 헛걸음을 줄일 수 있습니다.
대리청구인 지정 자체는 여러 보험에서 가능한데, 금융감독원은 가입 때 지정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도록 한 대상을 치매보험에서 암·뇌·심혈관 상품까지 넓혔습니다. 전체 질병보험 적용은 내년 상반기가 목표입니다.
한화손해보험의 경우 지난 1일부터 단체·연금보험을 제외한 인(人)담보(사람의 상해·질병·사망을 보장하는 담보) 포함 상품 전체로 대상을 선제 확대했습니다. 치매뿐 아니라 갑작스러운 사고나 뇌출혈로 의식을 잃었을 때도 폭넓게 활용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시스템도 함께 손봤습니다. 청약 단계에 들어가면 ‘무기명-배우자 및 직계존비속’이 자동으로 선택되도록 기본값을 바꿔, 소비자가 일일이 챙기지 않아도 제도 효과를 누릴 수 있게 했습니다. 아무 선택 없이 지정을 건너뛰려면 미지정 사유를 고르고 “대리청구인을 지정하지 않겠다”는 문구를 직접 적어야 합니다. 가입만 하고 정작 혜택을 못 받는 사각지대를 한 번 더 걸러내겠다는 취지입니다.
담당 설계사, 고객센터, 지점 방문, 모바일 앱 어디서든 되고 비용은 들지 않습니다. 신청 당일 바로 반영됩니다.
다만 채널별로 가능한 유형이 다릅니다. 설계사나 지점 창구에서 서면으로 서명하면 기명·무기명·미지정 모두 고를 수 있지만, 모바일 앱·알림톡 같은 전자 서명으로는 무기명과 미지정만 가능합니다. 이름을 적는 기명을 원한다면 설계사나 지점을 통해 서면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이미 가입한 고객이라면 계약변경(배서) 절차를 통해 대리청구인을 지정하거나 바꿀 수 있게 될 예정입니다. 배서란 이미 맺은 보험계약의 내용 일부를 고치는 절차를 말합니다. 기존 가입자라면 당장은 담당 설계사나 고객센터를 통해 본인 계약의 지정 여부부터 확인해 두는 게 좋습니다. 다만 이 배서 기능은 현재 개발 중으로, 열리는 대로 순차 적용될 예정입니다.
무기명으로는 안 됩니다. 법적 분쟁을 막고 지급 절차를 단순하게 하기 위해 무기명 대상을 가장 직관적인 가족 관계인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으로 한정했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는 직계가 아닌 방계혈족이라 여기서 빠집니다.
대안은 있습니다. 형제·자매의 이름과 인적 사항을 직접 적는 기명 방식으로 등록하면, 필요한 순간 형제·자매도 똑같이 대리청구인으로서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1인 가구처럼 배우자나 자녀가 없는 경우라면 기명 방식을 적극 검토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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