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삼성·SK 오라” 압박 다음날…최태원 “메모리 공장도 가능”

최태원, 나스닥 ADR 상장 행사서 미국 추가투자 언급
최태원 “조건 맞으면 메모리 공장 가능”
인디애나 패키징 공장 외 메모리 생산시설 가능성 열어
러트닉 美상무장관 “삼성·SK하이닉스 생산시설 짓게 하고 싶다”

10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뉴욕 나스닥 마켓사이트에서 열린 ‘오프닝 벨’ 행사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 곽노정 SK하이닉스 CEO, 고승범 SK하이닉스 사외이사 겸 이사회 의장 등 임직원들이 나스닥 ADR 거래 개시를 알리고 있다. [나스닥 제공]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SK하이닉스가 미국 나스닥 데뷔와 동시에 미국 내 반도체 추가 투자 가능성을 열어뒀다.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향해 현지 메모리 생산 확대를 공개적으로 요구한 직후 나온 발언이어서, AI 반도체 공급망을 둘러싼 한미 간 투자 압박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상장 기념행사에서 CNBC와 인터뷰를 갖고 미국 내 추가 투자 가능성을 언급했다.

최 회장은 “미국 인디애나주 첨단 패키징 시설 외에도 추가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며 “전력·용수·인력·공급망 등 여건이 갖춰질 경우 메모리 생산공장 건설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현재 SK하이닉스는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38억7000만달러, 약 5조6000억원을 투입해 반도체 첨단 패키징 생산기지를 짓고 있다. 첨단 패키징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AI 반도체 성능을 끌어올리는 핵심 공정으로 꼽힌다.

최 회장은 메모리 생산시설과 별개로 AI 데이터센터, 관련 기술, 합작법인 등에 수백억달러 규모의 투자가 이뤄질 수 있다고도 했다. AI 수요 확대에 맞춰 반도체 제조뿐 아니라 데이터센터와 솔루션 영역까지 미국 내 사업 기반을 넓힐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최 회장의 발언은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의 공개 압박 직후 나와 더 주목받고 있다. 러트닉 장관은 전날 마이크론이 미국 뉴욕주 클레이 타운에 짓고 있는 반도체 공장 행사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미국 생산 확대를 직접 거론했다.

러트닉 장관은 한국의 두 메모리 반도체 기업과 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그는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미국으로 불러와 생산 시설을 짓게 하고 싶다”며 “마이크론이 앞장서고 있으니 경쟁사들도 결국 따라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사업을 해야 할 곳은 미국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미국에 투자하기에 지금보다 좋은 시기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압박 배경에는 AI 시대 핵심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전략이 깔려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반도체 제조 기반을 미국 안에 더 많이 확보하고, AI 산업에 필요한 메모리와 첨단 패키징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묶겠다는 구상을 추진하고 있다.

마이크론의 대규모 투자 발표도 같은 흐름이다. 마이크론은 2035년까지 미국 내 반도체 공장과 기술에 2500억달러, 약 375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뉴욕 공장 건설과 아이다호·버지니아주 공장 확장이 포함된 계획으로, 마이크론은 이를 통해 자사 D램의 40%를 미국에서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SK하이닉스로서는 미국 투자 확대 요구와 국내 투자 계획을 동시에 조율해야 하는 상황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청주, 호남권 등을 중심으로 1100조원 규모의 국내 AI 메모리 생산벨트 구축 계획을 공개했다. 국내 생산거점을 AI 메모리 핵심 축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미국 정부가 반도체 관세와 보조금, 공급망 재편을 협상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한국 기업들의 선택지도 복잡해지고 있다. 미국 현지 생산은 고객사 접근성과 통상 리스크 완화 측면에서 장점이 있지만, 메모리 공장은 전력·용수·인력·협력사 생태계가 모두 갖춰져야 해 단기간에 결정하기 어려운 투자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실제 미국 내 메모리 생산공장 건설에 나설 경우 투자 규모가 장기간에 걸쳐 수백조원대로 커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메모리 생산라인은 단일 공장만으로 끝나기 어렵고, 후속 증설과 장비 투자, 소재·부품 공급망 구축이 함께 따라붙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이번 나스닥 ADR 상장을 통해 약 265억달러, 약 40조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다. 조달 자금을 HBM을 비롯한 AI 메모리 생산능력 확대와 재무 안정성 강화에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