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민주주의 수호조치” 미국 알린 김태효 결국 ‘내란가담’ 혐의 구속

내란중요임무종사 및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받는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이 10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


법원 “증거인멸 염려”…내란중요임무종사·직권남용 혐의
우방국에 “자유민주주의 수호 조치” 메시지 전달 의혹
MB정부 기밀 반출로 재판 중 발탁…유죄 확정 뒤에도 유임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12·3 비상계엄 선포 직후 미국 등 주요 우방국에 계엄을 정당화하는 메시지를 전달한 의혹을 받는 김태효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이 구속됐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부동식 내란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김 전 차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진행한 뒤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권창영 2차종합특별검사팀은 지난 7일 김 전 차장에게 내란중요임무종사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전 차장은 10일 오전 영장심사에 출석하면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지시 여부 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김 전 차장은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 외교부와 국가안보실 관계자들을 통해 미국 등 우방국에 계엄의 배경과 정당성을 설명하도록 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전달된 메시지에는 비상계엄이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조치”이고 “헌법 테두리 안에서 이뤄진 정치적 시위”라는 취지의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야당의 입법 활동을 ‘입법 독재’로 규정하고 반국가세력 척결을 위해 계엄이 불가피했다는 논리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이 계엄 선포 직후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김 전 차장에게 해외에 계엄 선포 배경을 설명하도록 지시했을 가능성을 들여다보고 있다. 김 전 차장이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외교·안보 조직을 동원했다면 계엄 실행 과정에서 중요 임무를 담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특검의 판단이다.

수사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해 1월 제기한 의혹에서 출발했다. 정 장관은 김 전 차장이 계엄 해제 직후 필립 골드버그 당시 주한 미국대사에게 연락해 “입법 독재로 사법·행정 시스템을 망가뜨린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기 위해 계엄이 불가피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차장은 계엄 선포 약 1시간 뒤 골드버그 대사와 통화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계엄을 설득하거나 정당화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그는 대사에게 “같이 상황을 지켜보자”고 말한 뒤 통화를 끝냈다고 해명해왔다.

특검은 지난 4월 김 전 차장의 자택과 대학 연구실 등을 압수수색하고 관련 문건과 통신 기록을 확보했다. 국가안보실이 작성한 계엄 설명 자료가 외교부와 국가정보원 등을 거쳐 해외 정보기관에 전달됐는지도 수사 대상이다.

국가정보원이 미국 중앙정보국(CIA) 측에 계엄의 정당성을 설명했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는 조태용 전 국정원장과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지시·보고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김 전 차장의 신병을 확보한 특검은 윤 전 대통령과 당시 외교안보라인 사이의 지시·보고 체계를 집중 추궁할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차장은 윤석열 정부에서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 대북 정책을 총괄한 외교안보 분야의 핵심 참모였다. 윤 전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 참여한 뒤 2022년 5월 국가안보실 1차장에 임명돼 정부 출범 초기부터 주요 정상외교와 안보 현안을 담당했다.

김 전 차장의 기용은 임명 당시부터 논란이 됐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과 대외전략기획관을 지낸 뒤 2012년 사직하면서 군사기밀 문건을 외부로 반출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재판에서 문제가 된 문건은 합동참모본부와 국가정보원, 국군기무사령부 등이 작성한 북한 동향과 안보 관련 자료 등 41건이었다. 김 전 차장은 해당 자료를 청와대 밖으로 반출한 혐의로 기소됐고 1·2심에서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차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 그를 국가안보실 1차장으로 발탁했다. 김 전 차장을 기소한 수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윤 전 대통령이었다.

대법원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인 2022년 10월 김 전 차장에게 벌금 300만원의 선고유예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군사기밀 반출 혐의에 대한 유죄 판단이 최종 확정됐지만 대통령실은 “벌금형의 선고유예라는 가벼운 판결”이라며 별도 인사 조치를 하지 않았다.

당시 야당은 군사기밀을 유출해 유죄가 확정된 인물이 국가안보 업무를 계속 총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경질을 요구했다. 대통령실은 사건의 경위와 김 전 차장의 업무 수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유임 방침을 유지했다.

김 전 차장은 이후에도 윤석열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전면에 섰다. 한일 관계 개선과 한미일 정상회의, 확장억제 강화, 대북 강경 정책 등을 주도하며 윤 전 대통령의 외교안보 구상을 실행하는 역할을 맡았다.

한편 특검의 1차 수사 기한은 오는 24일까지다. 국회에는 수사 기간을 30일 연장하는 내용의 특검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어 개정안이 처리될 경우 수사는 다음 달 말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