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항로 재개 약속” vs 이란 “통제권 인정”…협상 난항
안전 항행·기뢰 제거도 안 지켜져
전문가들 “모호한 합의 문구가 충돌 원인…핵 협상도 어려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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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현지시간) 오만 무산담에서 바라본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들. [로이터] |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미국이 이란을 상대로 사흘째 공습을 이어가는 가운데, 양국이 체결한 종전 양해각서(MOU)의 한 조항이 호르무즈 해협을 위협하는 뇌관이 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은 해당 조항을 해협 개방을 위한 의미로 해석한 반면, 이란은 자국의 해협 통제권을 인정한 근거로 받아들이면서 최근 잇따른 무력 충돌의 배경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9일(현지시간)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호르무즈 분쟁은 트럼프 합의문의 잘못 작성된 조항 하나로 귀결된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양측이 충돌하는 핵심 원인으로 MOU 제5항을 지목했다.
MOU 5항에는 전쟁 기간 봉쇄된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재개를 위해 이란이 필요한 조치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이란은 안전한 항행을 보장하고 기뢰 등 군사적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약속도 포함됐다.
미국은 이 조항이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한 항행을 보장하는 근거라고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이란은 MOU 5항을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배타적 통제권을 인정한 조항이라고 보면서 상반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5항에는 이란이 오만 및 주변국들과 함께 향후 해협 관리 방안을 협의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같은 문구는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과 이란의 협상을 중재한 당국자들에 따르면 협상 당시 양측은 일단 합의를 성사시키기 위해 모호한 표현을 수용했다. 협상에 정통한 미국 정부 관계자는 “합의문에 미국이 안전 항로를 마련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지 않은 점을 이란이 활용하고 있다”며 “(이란은) 이를 근거로 미국이 조율하는 항로를 이용하는 선박을 공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IRGC는 합의 체결 이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실질적으로 통제한다는 강경한 해석을 고수하고 있다. IRGC는 선박 통행료를 부과하겠다면서 자국 해안을 지나는 선박들에 대해 화물과 규모를 신고하고 통항 허가를 받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징수를 목적으로 하는 페르시아만 해협청(PGSA)도 출범시켰다.
특히 이란은 상선들에 대해 자국 연안을 따라 지정된 항로만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항로를 이용하는 상선에 대해선 드론과 미사일 공격까지 감행하고 있다. 자신들의 통제권에서 벗어난 항로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국제항로인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통제권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의 원유 판매 허가를 취소하고, 호르무즈 해협 일대와 인근 이란 목표물을 겨냥한 공습을 지시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 밖에 합의문에서 이란이 60일 동안 통행료를 받지 않고 상선의 안전한 통항을 보장하도록 규정하는 내용도 문제가 되고 있다. WSJ는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할 책임을 이란에 부여하면서, 다른 국가들의 통항 지원 노력을 배제하려는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며 “통행료 면제도 60일에 한정돼 있어 이후에는 이란이 요금을 부과할 여지를 남겼다”고 분석했다.
또 합의문에는 이란이 기뢰 제거 등 군사적 장애물을 없애고 30일 안에 통항을 정상화하도록 명시됐지만, 현재도 선박 공격이 이어지면서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WSJ는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호르무즈 해협 문제에서 드러난 해석 차이가 향후 핵 프로그램 협상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INSS)의 이란 전문가 라즈 짐트는 “양측의 신뢰 부족과 모호한 합의 문구가 현재의 충돌을 불러왔다”며 “핵 문제처럼 더 민감한 사안을 논의할 경우 갈등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정보당국 출신 에릭 브루어 전 이란 담당 선임 분석관은 “이번 MOU의 가장 큰 결함은 핵 문제를 비켜간 것이 아니라 휴전, 호르무즈 해협의 지위, 대이란 제재 완화 등 합의가 해결하려던 핵심 쟁점에서 미국과 이란의 근본적인 이견을 덮어버렸다는 데 있다”며 “미국이 이런 차이를 인지하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