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이후 비극 되풀이…간호계 “인력 부족·과중한 업무가 태움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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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20대 간호사가 ‘태움’으로 불리는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간호업계의 고질적인 악습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2018년 이후 같은 비극이 반복되고 있지만 폭언과 괴롭힘은 여전해 구조적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경기 광주의 한 병원에서 근무했던 20대 간호사 강수빈 씨는 선배 간호사들로부터 반복적인 폭언과 부당한 대우를 받는 등 이른바 ‘태움’에 시달린 끝에 지난달 2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강 씨는 지난해 3월 병원을 퇴사한 뒤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다. 노동당국은 일부 괴롭힘 사실을 인정했지만 병원 측은 가해자에게 훈계 처분을 내리는 데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태움’은 선배 간호사가 신입 간호사를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표현에서 유래한 간호업계의 은어다. 업무 교육을 명분으로 폭언과 모욕, 공개 질책, 따돌림 등을 반복하는 문화를 뜻하며, 의료 현장에서는 대표적인 직장 내 괴롭힘으로 꼽힌다.
강 씨의 사망 사실이 알려진 이후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일 자신의 X(옛 트위터)에 “태움은 결코 정당화할 수 없는 끔찍한 폭력”이라며 “유가족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관계 당국에 철저한 진상 규명과 법령 위반 시 엄정한 조치,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이에 경기남부경찰청은 강 씨의 일기장 등에 적힌 피해 내용을 토대로 직장 내 괴롭힘 여부를 수사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도 해당 병원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에 착수해 직장 내 괴롭힘과 노동관계법 위반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도 간호사 태움 방지 대책을 점검하기로 했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간호사 태움 방지를 위한 조치 진행 상황을 점검해 미비점을 보완하겠다”며 “간호인력지원센터 내 직장 내 괴롭힘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고용노동부 노동지청과 연계해 근로감독과 조직문화 컨설팅 등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간호업계에서 반복돼 온 태움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2018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고 박선욱 씨, 2019년 서울의료원 간호사 고 서지윤 씨에 이어 2021년에는 의정부을지대병원 신입 간호사가 선배 간호사의 폭언과 괴롭힘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당시 가해 간호사는 모욕과 폭행 혐의로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병원은 조직문화 개선을 약속했지만 유사한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실태조사에서도 간호 현장의 인권침해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지난 5월 발표한 ‘2026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8.2%가 최근 1년간 폭언·폭행·성폭력 가운데 하나 이상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간호사의 경우 62.3%가 환자와 보호자, 의사, 상급자 등으로부터 폭언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간호협회가 지난해 공개한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조사’에서도 간호사의 50.8%가 최근 1년간 폭언이나 직장 내 괴롭힘 등 인권침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가해자는 선임 간호사(53.3%), 의사(52.8%), 환자 및 보호자(43.0%) 순이었다.
간호계는 태움이 개인 간 갈등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만성적인 간호인력 부족으로 업무 부담이 과중한 상황에서 폐쇄적인 조직문화와 위계적인 교육 방식이 맞물리며 악습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실효성 있는 근무환경 개선과 적정 인력 확보 없이는 같은 비극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이 용인되는 조직문화를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