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넘, 영국 차기 총리 사실상 확정…노동당 대표 경선 단독출마 수순

소속 의원 79.9% 지지 확보…17일 대표 선출·20일 총리 취임 전망
‘북부의 왕’ 별명 얻은 온건 좌파…지방분권·지역균형발전 강조


지난달 29일 영국 북부 맨체스터에서 열린 행사에서 연설하던 앤디 버넘 노동당 하원의원이 웃고 있다. 버넘 의원은 9일(현지시간) 시작된 노동당 대표 경선 후보 등록을 통해 키어 스타머 총리의 후임으로 사실상 확정될 전망이다. [AFP]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의 후임을 뽑는 집권 노동당 대표 경선에서 앤디 버넘 하원의원이 사실상 단독 출마 수순에 들어갔다. 버넘 의원이 노동당 소속 하원의원 10명 중 8명에 가까운 지지를 확보하면서 영국 차기 총리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9일(현지시간) BBC 등에 따르면 버넘 의원은 노동당 대표 경선 후보 등록 첫날 노동당 소속 하원의원 403명 가운데 322명의 지지를 확보했다. 전체의 79.9%에 해당한다.

노동당 대표 경선 후보로 등록하려면 당 소속 하원의원 20%인 81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403명 중 323명 이상이 한 후보를 지지하면 다른 후보는 후보 등록 요건을 채울 수 없어 경선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BBC는 후보 지명 문건에 직접 서명하지 못한 하원의원 일부가 의회에 복귀하면 버넘 의원을 지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현재까지 버넘 의원 외에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도 없다. 출마를 검토하던 앨 칸스 전 국방부 부장관은 지난 8일 밤 불출마를 선언했다.

버넘 의원은 페이스북에 “322명의 노동당 하원의원이 나를 신뢰하고 당 대표로 지명해준 데 깊이 감사하다”고 밝혔다.

후보 등록은 오는 16일까지다. 버넘 의원의 단독 출마가 확정되면 별도 경선 없이 오는 17일 노동당 대표로 공식 발표되고, 20일 찰스 3세 국왕을 만난 뒤 총리로 취임할 전망이다.

버넘 의원은 이날 “하원의원들의 지지는 영국에 새로운 정치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공유된 믿음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그는 본인이 강조해온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다시 앞세웠다. 버넘 의원은 “웨스트민스터로부터 권력을 빼내고, 평범한 국민을 위해 경제를 재연결하며, 곳곳에서 양질의 성장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버넘 의원은 지난달 중순 보궐선거를 통해 하원에 재입성한 뒤 스타머 총리가 당내 압박 끝에 사임을 발표하면서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 떠올랐다.

올해 56세인 그는 17년간 하원의원으로 활동하며 토니 블레어·고든 브라운 정부에서 문화부 장관, 보건부 장관, 재무부 수석 부장관 등을 지냈다. 노동당이 야당이 된 이후에는 예비내각에서 보건·교육·내무 분야를 맡았다.

2017년 지방선거에서는 63.4%의 득표율로 그레이터 맨체스터 시장에 당선됐다. 이후 지역경제 발전과 코로나19 대응 등 행정 능력을 인정받아 3선에 성공했고, ‘북부의 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정치 성향은 중도좌파 노동당 내 온건 좌파로 분류된다. 그는 ‘기업 친화적 사회주의’를 경제 모델로 제시해왔다. 주택, 공공 인프라, 교통, 교육 등 생활 밀착형 정책 권한을 지역에 넘겨 각 지역에 맞는 경제 발전을 추진해야 한다는 ‘맨체스터리즘’을 주장해왔다.

버넘 의원은 지난달 하원 복귀 이후 맨체스터에 제2 총리실을 두는 ‘북부 총리실’ 설치도 제안했다.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업무 조율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스타머 총리의 큰 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버넘 의원은 재정준칙 준수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영국의 핵 억지력 유지를 공언했다.

다만 가자지구 전쟁 대응과 관련해서는 스타머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버넘 의원은 이날 “가자를 다루는 노동당의 초기 대응은 엄청난 상처를 야기했다”며 “우리가 잘못했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는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을 규탄하면서도 영국 정부가 가자지구 전쟁 휴전을 촉구하는 데 너무 느렸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자지구 폭력에 관여한 인사들에 대한 추가 제재와 불법 정착촌 관련 상품 거래 금지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스타머 정부는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공식 인정하고 요르단강 서안 정착민 폭력을 조장한 이스라엘 극우 장관들을 제재했지만, 노동당 좌파와 진보 성향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대응이 늦고 불충분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영국 언론들은 스타머 총리 재임 중 노동당이 진보 색채를 잃으면서 좌파 녹색당 등으로 지지층 일부가 이탈했고, 이것이 총선 압승 이후에도 노동당 지지율이 급락한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