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은 미국 전쟁, 러시아는 나토 임무” 역할 분담 뚜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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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린 2026 나토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EPA] |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미국과 이란 간 군사 충돌이 다시 격화하는 가운데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는 동맹의 전략적 우선순위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러시아 위협에는 32개 회원국이 결속했지만, 미국의 대이란 군사행동에는 유럽이 집단적으로 거리를 두면서 ‘나토의 새 계산법’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경제매체 CNBC는 8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유럽 동맹국들이 미국의 대이란 군사작전에 새로운 지원을 약속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회의는 미국이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상선 공격에 대응해 이틀 연속 공습을 감행한 직후 열렸지만, 정상회의 공동 의제는 러시아 억지와 유럽 방위, 국방비 증액에 집중됐다.
이는 이란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유럽이 중동 전쟁을 나토의 집단 임무로 확대하는 데 신중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미국의 이란 공습에 대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고 평가하며 이란이 휴전을 위반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토 정상회의의 최우선 과제는 미국의 동맹 복귀를 확인하고 러시아 억지력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럽 지도자들의 판단도 비슷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한정된 군사력과 재정을 중동으로 분산하기보다 동부전선 방어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도 회원국들은 국내총생산(GDP)의 5%를 국방비로 지출하는 목표를 재확인하고 우크라이나 지원을 이어가기로 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를 동맹의 소극적 태도로 받아들였다.
그는 정상회의에서 “나토가 테러 지원 1위 국가인 이란 문제에서 우리를 도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만이 있다”며 “그들은 우리를 돕기를 꺼렸다”고 말했다. 이어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 주요 회원국과 직접 통화한 사실을 공개하며 “나는 정말 시험해보고 싶었고 그들이 나설지 확인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 국가들이 공격받을 경우 미국이 방어에 나설 것이냐는 질문에도 즉답을 피하며 “그들은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고 말했고, 유럽 주둔 미군 철수 가능성까지 다시 거론했다.
그러나 유럽은 트럼프의 발언과 별개로 나토 자체의 결속은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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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이 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 서 로널드레이건재단 주최 행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AFP] |
뤼터 사무총장은 정상회의 폐막 후 “동맹국들이 공개적으로 논쟁하고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힘”이라며 트럼프와 유럽 정상들의 갈등을 축소했다. 그는 오히려 이번 정상회의가 미국의 나토 공약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도 회담 말미에는 “많은 사랑(love)이 있었다”, “엄청난 단결력이 있었다”고 평가하며 정상회의를 마무리했다. 나토 회원국들도 집단방위 원칙인 북대서양조약 5조를 재확인하며 러시아 억지 의지를 다시 천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상회의가 나토의 전략적 역할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으로 평가한다.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은 나토 전체가 대응해야 할 집단안보 사안으로 인식하는 반면, 이란 문제는 미국이 주도하고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이 참여하는 ‘연합(coalition)’ 방식으로 접근하는 구도가 뚜렷해졌다는 것이다. 미국도 장기적으로는 유럽을 러시아 억지에 더 맡기고 인도·태평양과 중동에 전략적 역량을 집중하려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니컬러스 번스 하버드대 교수이자 전 나토 주재 미국 대사는 CNBC 인터뷰에서 “미국은 유럽과 페르시아만 국가들을 설득해 이란 경제를 압박하는 데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군사 지원보다 외교·경제 공조가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