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고 논란, ‘공부하는 선수’의 빈칸 [현장에서]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의 사과문은 씁쓸했다. 학생 선수들의 반성문이었지만 동시에 어른들의 성적표나 다름없다. 잘못은 학생들이 했으나 그 잘못이 경기장에서 아무렇지 않게 나왔다는 사실은 다른 질문을 남긴다. 학교는 그동안 운동부 학생들에게 무얼 가르쳤는가.

이번 사안은 학생 몇 명의 일탈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다. 역사 인식 부재, 혐오의 놀이 문화는 겉으로 드러난 문제다. 그 이면에는 학교 운동부 안에 이끼처럼 남아 있던 승리 지상주의와 조롱 관행의 대물림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현장에선 이를 ‘야지 문화’라고 불러왔다. 야지는 야유와 조롱을 뜻하는 일본어에서 파생된 말이다. 상대 팀 선수의 기를 꺾는다는 이유로 조롱성 구호를 단체로 외치는 행위다.

문제는 이 관행이 오랫동안 경기의 일부처럼 묵인돼 왔다는 점이다. 응원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팀워크라는 명분도 따라붙었다. 그렇게 상대 선수를 향한 조롱은 전략이 됐다.

교육당국은 그동안 공부하는 선수를 강조해 왔다.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일정 성적에 미치지 못하면 대회 참가를 제한하는 최저학력제를 운영하고 있다. 학생 선수에게도 다른 학생들처럼 교육받을 환경을 제공하고 최소한의 학업을 놓치지 않도록 만든 장치다. 방향은 맞다. 다만 공부하도록 관리하는 것만으로는 학생 선수 교육이 완성되지 않는다.

배재고 논란은 학생 선수 교육의 빈칸을 드러냈다. 학업 성적과 수업 결손 관리는 제도화됐다. 반면 윤리 교육은 현장 재량에 맡겨졌다. 대회 참가 기준은 숫자로 관리됐지만 경기장 문화는 제대로 점검되지 않았다. 학생 선수의 수업 결손은 문제 삼았지만 승리를 위해 상대를 깎아내리는 분위기는 관행으로 넘겼다. 이 틈에서 학생 선수들은 공부는 관리받았지만 태도는 충분히 교육받지 못했다.

학생 선수에게 필요한 교육은 교과 성취만이 아니다. 경기에서 이겨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한 마디로 상대 선수를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역사적 상처를 조롱의 소재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감각도 배워야 한다. 스포츠맨십, 인권, 역사 감수성은 부가 교육이 아니다. 앞으로 학교 체육 기본이어야 한다.

정치권과 교육계가 해야 할 일은 여기에 있다. 학생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키우고 어느 한쪽이 옳다고 편드는 일을 할 때가 아니다. 학교 운동부가 어떤 교육을 받고 있는지, 지도자 교육은 제대로 이뤄지는지, 협회와 교육청의 관리 책임은 어디까지인지를 따져야 한다. 사과와 징계 이후 시스템을 바꾸는 일이 어른의 역할이어야 한다.

이번 사건은 역사 인식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학교 체육의 문제다. 혐오 표현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승리 지상주의의 문제다. 학생 개인의 잘못이지만 동시에 교육 시스템의 실패다. 어느 하나만 말하면 사건은 작아진다. 모든 것을 함께 봐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운동부 학생은 선수이기 전에 학생이다. 학생이라면 이기는 법만 배우는 것이 아닌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상대를 무너뜨리고 조롱하는 말이 응원이 될 수 없다는 것도 배워야 한다. 그것이 학교 체육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배재고 사과문은 씁쓸함으로 끝나선 안 된다. 정치권과 좌우의 공방으로 소비될 일도 아니다. 이번 사건이 남긴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학교 운동부에 승리 말고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