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닉스 번 만큼 외국인 차익실현…개미 ‘불나방’ 만든 단종Letf [홍길용의 화식열전] (903회)

§삼성전자가 2분기 세계 영업이익 1위에 오르고 경상흑자가 역대 최대인데도, 코스피는 4년 만에 약세장에 빠졌다. 이 상황의 뿌리는 정부의 ‘상황 파악(sensemaking)’ 실패다.
§환율 급등에 쫓긴 정부가 단일종목 레버리지ETF를 속전속결로 도입했지만, 시총 절반을 쥔 삼전닉스에 레버리지를 붙이자 변동성만 폭발했다.
§외국인은 개인이 떠받친 고점에서 차익을 실현했다. 개인들 상당수가 손실 위험에 처했다.
§이미 나온 상품은 되돌리기 어렵다. 이제 증시의 기초체력을 키워 과실을 국민과 오래 나눌 큰 시장을 만들 때다.


※ 챗GPT의 도움을 받아 만든 이미지입니다.


코스피 60일선 붕괴, 46개월만에 약세장 진입

8일 발표된 5월 경상흑자는 또 역대 최대를 경신했다. 전일 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 전세계 기업 중 영업이익 1위에 올랐다. 그런데 이날 코스피는 지난 달 19일 고가(9385.59) 대비 22.8% 급락하며 중기추세선(60일 이동평균선) 아래로 다시 내려섰다. 약세장(고점대비 -20%) 진입은 2022년 9월 이후 거의 4년 만이다. 이해가 되는(make sense) 상황이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얼마전 별세한 조직심리학의 거장 칼 와익(Karl E. Weick)의 대표 개념은 ‘sensemaking’이다. 상황 파악, 의미 만들기 정도로 번역된다. 와익은 위기 상황에서는 정보가 부족한 게 아니라, 정보가 너무 많고 모순적이라고 봤다. 그래서 정답을 아는 능력이 아니라, 쓸 만한 해석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중요시했다. 와익에게 리더는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게 아니라 행동하면서 배우고, 작은 신호를 놓치지 않고, 조직이 잘못된 해석에 갇히지 않게 하는 사람이다. 조직이 현실을 제대로 보도록 하는 사람이다.

반도체로 번돈 만큼 주식 팔아 챙겨간 외국인

코스피 하락은 외국인 매도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을 하며 올 상반기 코스피에서만 178조원을 순매도했다. 이달 8일까지 기간을 늘리면 193조원이 넘는다. 삼성전자의 상반기 영업이익 잠정치는 약 147조원이다. SK하이닉스는 102조원으로 예상된다. 외국인 순매도는 두 회사 상반기 영업이익(약 250조원)의 약 77%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반도체 호황으로 경상흑자가 급증하고 있는 대만 증시와 비교해 보자. 상반기 외국인 순매도는 약 296억 달러로 TSMC의 영업이익(추정) 436억 달러의 약 68%다.

하지만 가권지수는 현재 4만 5479 로 지난 달 23일 최고가인 4만8219 대비 낙폭이 5% 수준이다. 지난 달 23일 2535달러로 최고가를 기록했던 대만 TSMC 역시 AI 거품 우려에도 현재 2440달러로 고점 대비 조정 폭이 약 4%다. 우리 증시가 대만보다 더 많이 하락한 이유는 뭘까?

단종L・ETF가 삼전닉스와 코스피 변동성 주범

먼저 코스피의 상승 기울기가 대만보다 더 가파르다. 특히 단일종목 레버리지ETF(단종L・ETF)가 차이를 키웠다. 지난 5월 27일 상품 출시 이후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한 달도 안 돼 최고 40.1%, 25.2% 급등했다. 코스피도 최대 16.6%까지 올랐다. 비슷한 기간 다른 증시와 비교해보자. 미국(S&P500, 나스닥)은 약보합이었고 일본과 대만의 상승률은 최고 10.7%였다. TSMC의 상승률은 최고 6.4%에 그쳤다. 대만이나 일본에는 단종L・ETF는 없다. 미국은 우리처럼 종목 쏠림이 심하지 않다. 대만은 섹터형 레버리지ETF에는 상/하한가 폭을 10%로 제한한다.

다음은 환율이다. 대만의 미국 달러 대비 환율은 올 내내 31~32달러로 안정적이다. 지난 연말 1440원도 안 됐지만 최근 1550원까지 넘었던 달러/원 환율과 차이가 크다. 통화 약세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는 환차손 위험이다. 대만의 외환관리는 우리 보다 여러면에서 한 수 위다. [ 6월6일 ‘성공의 저주’가 부른 환율 대란…비슷한 처지 대만은 어떻게 피했나 [홍길용의 화식열전](897) 참조] 가치가 떨어지는 통화의 비중은 줄이는 게 정석이다. 리밸런싱 수요까지 있으니 매도 물량을 쏟아낼 만하다.

정부, 환율 잡으려다 증시 변동성만 키워

하나씩 따져보자. 우리는 왜 단종L・ETF를 도입했을까? 지난 1월 28일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단종L・ETF 도입 계획을 밝힌다. 배경은 “해외에도 비슷한 ETF가 상장돼 있다”였다. 이틀 뒤 입법예고가 이뤄지고 석 달도 안 된 4월21일 자본시장법 시행령이 개정됐다. 5월 27일 첫 상품 출시까지 딱 4개월이 걸렸다.

지난 1월 말은 환율 급등으로 비상이던 때였다. 정부는 국민연금 환 헤지, 국내주식복귀계좌(RIA)를 비롯해 온갖 대책을 내놓았다. 때마침 코스피도 5000선을 돌파(1월27일)했다. 단종L・ETF로 해외투자를 막아 환율을 안정시키고 국내 투자는 더 독려해 코스피를 끌어올리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의도대로 됐을까?

2월말 이란 전쟁이 터지면서 외국인 매도와 환율 상승이 3월까지 진행됐다. 종전 기대로 4월에는 외국인 매도도 진정되고 환율도 1400대로 내려선다. 그런데 상황은 단종L・ETF 출시를 앞둔 5월 초부터 달라진다.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진행되며 증시가 반등했고 5월 한 달간 개인은 무려 42조원을 순매수하며 지수를 끌어올렸다. 5월 초 코스피는 약 7000선이었다. 단종L・ETF 출시 이후인 6월 개인 순매수는 56조원을 넘고 코스피는 삼전닉스 주가 급등에 힘입어 6월 19일 9400선까지 치솟는다.

개인 매수자금 외국인 차익실현 재원으로

개인이 사는 만큼 주가는 올랐고 외국인은 비싼 값에 주식을 팔아 대금을 달러로 환전했다. 5월 반등한 환율은 단종L・ETF 출시 이후 한때 1560원에 근접했다. 개인은 삼전닉스를 중심으로 올 상반기 코스피에서 133조원 이상을 순매수했다. 8일까지로 기간을 늘리면 147조원이 넘는다. 금융투자 몫으로 잡힌 약 59조원 가운데 상당수도 ETF로 유입된 사실상 개인자금이다. 개인이 산 주식은 외국인이 판 물량이다. 외국인이 챙긴 차액 대부분이 개인투자자 돈인 셈이다.

단종L・ETF가 출시되지 않았다면 코스피도, 삼전닉스도 덜 올랐을 가능성이 크다. 코스피 시총의 절반을 차지하는 두 종목에 단기간에 막대한 차입 투자가 집중되면 지수가 과민반응하는 건 당연하다. 이 때 주식을 판 외국인은 더 많은 차익을 거뒀을 것이고, 주식을 산 개인은 더 비싼 값을 치렀을 게 뻔하다.

정부가 단종L・ETF를 도입한 이유는 환율을 안정시키고 코스피 상승 동력도 강화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삼전닉스가 벌어들인 영업이익의 77%에 해당하는 돈을 외국인이 챙겨가며 의도와 달리 환율은 더 올랐다. 코스피 역시 변동성만 비정상적으로 팽창하며 WSJ이 지난 6일 ‘오징어 게임’에 비유하는 칼럼을 실을 정도가 됐다. 개인들의 투기적 접근으로 변동성이 커지고 이 때문에 증시가 급등락한다는 지적이다.

7000이상서 유입된 개인 자금 117조 손실 위험

기록적인 기업 실적에도 최근 외국인 매도로 코스피가 힘을 잃자 한때 140조원에 달했던 고객예탁금도 110조원대로 줄었다. 7월 8일 종가인 7246 수준 이상에서 개인이 순매수한 자금은 약 117조원으로 추정된다. 이 만큼의 자금이 손실 구간에 있다는 뜻이다.

반면 외국인들은 공격적인 매각에도 보유 중인 주식이 여전히 많고, 거의 전부가 여전히 수익 구간에 있다. 지난해 상반기 말 대비 지분율은 8일 종가 기준으로 SK하이닉스가 55.51%에서 50.06%로 5%포인트 낮아졌다. 삼성전자는 49.64%에서 46.58%로 3%포인트도 줄어드는 데 그쳤다. 오래전부터 낮은 가격에 많이 갖고 있었기 때문에 높은 값에 팔아도 액수만 커지고 보유주식 수는 크게 줄지 않았다.

외환위기 트라우마, 외환시장 개혁 막아

와익을 유명하게 만든 논문 중 하나가 1993년 발표한 ‘조직에서의 상황파악 능력 붕괴: 만 굴치의 비극(The Collapse of Sensemaking in Organizations: The Mann Gulch Disaster)’이다. 1949년 미국 몬태나주 만 굴치 산불에서 소방대원 15명 중 13명이 사망한 사건을 분석한 논문이다. 소방대원들은 도망치기 위해 장비를 버려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삽과 도끼는 그들에게는 정체성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해부터 불거진 환율 불안은 달러 수급을 넘어 원화의 글로벌 신뢰도에 대한 문제였다. 2008년 MSCI가 한국을 선진지수 관찰대상국에 올릴 때부터 외환시장 개혁은 필요했지만 정부는 외환위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무역 중심의 20세기 스타일의 외환시스템을 버리지 못했다. 이 같은 현실 인식으로 당장의 수급에만 집착해 단종L・ETF라는 위험한 카드까지 꺼내게 됐다. 우리 정부에게 20세기 외환시스템은 삽과 도끼였는지 모른다.

초대형 종목 레버리지 허용 파장 검토 소홀

정부의 상황 파악 실패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단종L・ETF 허용이 가져올 파장도 제대로 검토하지 못했다. 가장 깊은 유동성과 넓은 파생상품 시장을 가진 미국을 제외하고는 단종L・ETF를 허용하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미국도 단종L・ETF에는 꽤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하도록 한다. 시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 시장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종목의 주가가 최근 급등했는데 레버리지까지 허용하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어렵다.

해외에 있으니 국내에도 허용한다는 접근도 엉성하다. 해외와 국내 상품은 확장성이 다르다. 해외 상품은 세금, 환전, 시간대, 거래비용이 진입장벽 역할을 한다. 돌아보면 과열과 쏠림을 관리할 제동 페달과 안전벨트가 필요했던 때에 정부는 과속과 변동성을 더욱 키우는 가속 페달을 밟았던 셈이다.

이미 나온 상품 규제 어려워...증시 체력 키워야

이미 시장에 나온 단종L・ETF 규제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금융당국이 규제를 강화한다지만 뾰족한 수는 없어 보인다. 치료제가 없다면 체력과 면역력을 높여서 증상을 이겨내야 한다. 변동성을 낮추려면 장기투자 자금의 증시 유입을 늘리고 시장의 깊이를 지금보다 더 키우는 방법뿐이다.

부동산에 쏠린 가계 자산을 증시로 돌리면서, 투자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상품이나 기구(vehicle)를 개발해야 한다. 대만은 가계자산의 20%가 시장성 증권이고, 30%가 예금이다. 부동산 비중은 30%에 불과하다. 한국은 가계자산의 75% 이상이 부동산 등 실물자산이다. 예금 비중이 20%가량이고 시장성 증권 비중은 6%가 안 된다. 해외자금 유치도 중요하다. 글로벌 투자자들도 우리 증시에 손쉽게 접근하도록 채널을 개발해야 한다. MSCI선진지수 편입도 서둘러야 한다.

원론적인 얘기처럼 들리지만 이 같은 변화를 위해서는 많은 제도를 만들고 고쳐야 한다. 그래서 와익의 말을 빌려 정부와 국회에 한 가지만 당부하고 싶다.

“옳다고 믿고 주장하되, 틀렸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들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