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한 대만 태워주세요” 장맛비 속 출근길, 버스 앞 막아선 전장연 [세상&]

장맛비 속 출근길, 버스 앞 막아선 전장연
휠체어 5대 차례로 버스 탑승…15분 소요
시민들 “출근길 민폐” vs “잠깐 불편 감수”

8일 오전 8시30분께 서울 종로구 혜화동로터리 버스 정류장에서 전국장애인차별연대(전장연) 출근길 버스 탑승 시위 참여자가 저상버스에 탑승하는 모습. 김서현 수습기자


[헤럴드경제=정주원 기자, 김서현 수습기자] “제발. 휠체어 딱 한 대만 태워주세요.”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혜화동로터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시위대가 우비도 입지 않은 채 버스 전용차로 한가운데 서서 160번 버스 앞을 막아섰다. 버스 안은 이미 출근하는 직장인과 등교하는 학생 60여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날 전장연은 오전 8시부터 약 1시간 동안 교통약자이동권보장법 전면 개정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혜화동로터리 인근 버스정류장에는 휠체어 5대를 비롯해 전장연 시위대 약 20명이 대기했다. 휠체어를 탄 시위대는 우비를 입고 있었고 휠체어를 타지 않은 시위대는 고스란히 비를 맞고 있었다.

약 60m 길이의 버스정류장이 발 디딤 틈 없이 붐볐다. 휠체어 주변을 경찰과 취재진이 에워싸면서 인도는 더 좁아졌다. 비가 굵어지자 시민들의 우산이 서로 부딪히면서 통행이 정체됐다. 버스에서 내린 시민 일부는 인도에 바로 올라서지 못하고 차로 쪽으로 돌아 지나갔다. 경찰은 시민들이 차량 사이를 지나갈 수 있도록 교통정리를 하기도 했다.

시위대는 “헌법에 명시된 당연한 기본권”이라며 “오세훈 서울시장은 저상버스를 100% 도입하라”고 발언했다. 또한 “특별교통수단은 최대 12시간9분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했다.

8일 오전 8시30분께 서울 종로구 혜화동로터리 버스 정류장에서 한 버스기사가 휠체어 탑승을 거부하자 전장연 시위대 중 일부가 막아서고 설득하고 있다. 김서현 수습기자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출근하는 길이라는 한 30대 여성은 “비도 오는데 이런 날은 좀 피해주면 좋겠다”며 “우산을 펼 수가 없어 다 젖었다”고 말했다. 인근 학교로 향하던 동성중학교 학생 장하준(14) 군을 비롯한 친구들은 “저번 주에는 휠체어 한 대가 신호등에 서 있어 버스가 한참 움직이지 못했다”며 “장애인 이동권도 중요하지만 학교 가고 회사 가는 사람들의 이동권도 보장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시위 취지에 공감한다는 시민도 있었다. 대학원생 김지용(26)씨는 전장연이 탑승하려던 버스에서 내린 뒤 “내 불편은 잠깐이고 저들의 불안은 평생”이라며 “이런 잠깐의 불편은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버스 안에서 ‘아 뭐야’라는 말도 나오긴 했지만 비가 와서 특히 다들 예민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 대표는 탑승에 앞서 “비가 너무 많이 와 차별버스(계단으로 탑승하는 버스)는 타지 않고 저상버스를 타고 마로니에공원으로 이동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 같은 날 차별버스를 타면 비 맞은 생쥐가 되겠다”며 “이재명 정부 2년 차인 만큼 교통약자이동권보장법의 연내 전면 개정을 기대한다”고 했다.

휠체어 5대가 모두 버스에 오르는 데는 약 15분이 걸렸다. 첫 번째 휠체어는 오전 8시27분께 명륜3가 방면 102번 버스에 탔다. 버스 기사와 약 1분간 대치가 있었지만 큰 지연 없이 탑승이 이뤄졌다.

붐비는 버스는 휠체어가 탑승하는 과정에서 약 3분간 운행이 지연되기도 했다. 활동가 한 명이 버스 안으로 들어가 승객들에게 “뒤쪽에 자리 좀 만들어주세요”라고 요청했다. 하차하던 한 승객은 얼굴을 찌푸리며 “이게 뭐 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곧이어 정류장에 도착한 저상버스 일부는 이미 승객으로 가득 차 휠체어를 태우지 못한 채 그대로 출발했다.

8일 오전 8시40분께 서울 종로구 혜화동로터리 버스 정류장에서 계단 버스에 탑승하려는 휠체어를 전장연 시위대가 들어올리는 모습. 김서현 수습기자


박 대표는 계단이 있는 272번 버스에 탑승했다. 당초 저상버스를 타겠다고 했지만 도착한 저상버스가 만원이어서 탑승이 어렵자 계단버스를 택했다. 활동가 1명이 휠체어 앞쪽을 잡고 3명이 뒤에서 밀어 올렸다. 박 대표가 버스 계단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기까지 약 3분이 걸렸다. 현장에 남은 시위대는 해당 버스를 가리키며 “장애인을 차별하는 버스가 아직도 있다”고 했다.

큰 충돌은 없었지만 곳곳에서 작은 소란은 있었다. 오전 8시40분께 마지막 휠체어가 버스에 오르는 과정에서 활동가들이 스피커와 남은 장비까지 들고 탑승했다. 마이크를 든 활동가의 발언과 음악이 버스 안까지 이어지자 한 남성 승객은 “아 시끄러워 진짜”라고 큰소리로 외치며 버스에서 내리는 장면도 있었다.

이날 시위대는 성대입구에서 내려 마로니에 공원으로 집결했으며 다시 돌아오는 방식의 시위는 하지 않았다. 전장연은 앞으로도 매주 수요일 출근길 버스 탑승 시위를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