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란 원유제재 재개 ‘강수’…종전MOU 20일만에 파국 위기

호르무즈 상선·유조선 잇단 피격에 “휴전위반”
美, 재공습·60일 원유제재 면제도 없던 일로
하메네이장례식 ‘반미결집’한 이란, 보복 천명
확전 우려 속 휴전체제·후속협상 좌초 직면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지난 2월 사망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관이 장례식 나흘째인 7일(현지시간) 이라크 나자프 국제공항에 도착해 운구되고 있다. 하메네이의 유해는 이라크의 시아파 성지 카르발라에서 8일 하루 조문객을 맞이한 뒤, 이란의 시아파 성지이자 하메네이의 고향인 마슈하드의 이맘 레자 영묘로 옮겨져 9일 안장된다. [로이터]


미국과 이란이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 이후 후속협상을 이어오다, 7일 미국이 공습을 재개하며 상황이 급반전을 맞았다. 종전 협상에 들어선 지 20일 만에 MOU 체결 전 상황으로 돌아온 셈이다. 양국이 다시 강대강 대치로 돌아선 배경에는 호르무즈 해협내 상선과 유조선이 잇따라 공격 받는 등 이란의 해협 통제권 과시에 더해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의 장례를 계기로 이란 내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졌다는 상황 변화가 있다.

반전의 계기는 7일 이란의 호르무즈 통항 시도 선박 공격이었다. 이날 오만쪽 연안을 통해 호르무즈를 통과하려는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국적 유조선 2척이 공격을 받았고, 이에 두 국가는 이란을 배후로 지목하며 강력히 항의했다.

이를 이유로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이란산 원유를 판매할 수 있도록 임시면허를 발급한 조치를 전면 철회했다. 이어 미 중부사령부는 “국제 해역에서 무고한 민간인을 태운 상선을 표적 삼아 공격한 데 대한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 이란을 상대로 일련의 강력한 공습을 개시했다”고 밝혔다. 이란 현지 매체에 따르면 게슘섬과 시리크 등 남부 지역이 공습을 받아 화염에 휩싸였다. 이란 외무부는 미국의 공습을 ‘조항 위반’이라 지적하며 “국익과 국가 안보를 보호하기 위해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양국이 다시 대치 상황으로 돌아선 것이다.

이 같은 전환의 계기가 된 이란의 민간 선박 공격의 배경에는 해당 선박들이 오만 연안 측 항로를 이용했다는 것이 있다. 호르무즈 해협 개방 이후 대다수 선박들은 미군이 안내하는 오만측 항로를 이용하고 있다. 이는 이란에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다는 분석이다.선박들이 계속 오만 측 항로를 이용하면 이란이 오만을 설득해 추진 중인 해협 통행료 부과 방안을 관철하더라도, 오만에만 좋은 일을 해주는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에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재확인하려는 조급함 때문에 민간 선박 공격이란 무리수를 뒀다는 것이다.

실제로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이란 국영 IRNA 통신에 “이란과 조율되지 않은 항로를 이용하거나 선박 추적 장치를 조작하는 것은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한 통항을 촉진하려는 이란의 노력을 방해하는 것으로 위험하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 같은 표면적인 이유 외에도 하메네이 장례식을 계기로 이란내 강경파 결집이 더 강해진 것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6일 파이낸셜타임스(FT) 추산으로 1200만명이 모인 장례행렬에서는 “우리는 거래(협상)를 원하지 않는다. 트럼프의 목을 원한다”는 구호가 군중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이란의 최고위급 강경파 인사들도 전면에 나서서 보복을 촉구하고 있다. 강경파인 하미드 라사에이 이란 의회 의원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인접 국가인 튀르키예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숙소를 미사일로 타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메네이 측근으로 분류되는 강경파 성직자 알리레자 파나히안 역시 “하메네이의 복수를 위해서라면 이란의 모든 국가적 이익을 희생할 각오를 해야 한다”며 협상 파기를 촉구했다. 초강경파 성향으로 분류되는 이란 매체 ‘아스르-에 이라니안’은 하메네이의 복수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이자 당국자들의 의무”라며, 협상을 이끄는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과 온건파 내각을 강하게 압박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하메네이의 장례식이 강경파에 일종의 ‘거리의 국민투표(referendum from the streets)’로 해석되고 있다며, 강경파들은 거대한 인파를 성직자 체제에 대한 지지로 간주해 서방(미국)과의 대결 전략을 더욱 강화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공습 이후 이란이 보복을 예고하고 나서면서, 향후 본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양국은 지난달 21~22일 스위스 뷔르겐스토크에서 고위급 회담을 진행했고, 이후 30일부터 이달 1일까지 카타르 도하에서 실무진 회담을 열었지만 후속 일정은 잡지 못하고 끝났다. 실무진 회담도 중재국인 카타르·파키스탄이 양국을 오가며 회담하는 간접적인 형식으로 진행됐고, 구체적인 성과를 도출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도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