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맞춤 농업기술 개발·보급하는 코피아
누에 신품종 개발…잠종 자급률 13% 도전
256개 채소 시험해 11개 품종 현지서 등록
농가·기업 잇는 K농업 ODA 가치사슬 구축
![]() |
| 지난 1일 베트남 하노이 베트남양잠연구소(VietSERI) 내 누에 사육실의 모습 [농림축산식품부 공동취재단 제공] |
[헤럴드경제(하노이)=양영경 기자]“쏴아 쏴아 쏴아” 지난 1일 찾은 베트남 하노이의 베트남양잠연구소(VietSERI). 사육실은 수천 마리 애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는 소리로 가득했다. 연구소를 둘러싼 뽕나무밭에서 갓 따온 잎을 사육 선반에 올려놓자 손톱만 한 누에들이 일제히 먹이를 파고들었다.
한쪽에는 누에가 고치를 짓는 틀인 한국식 ‘누에섶’, 일명 ‘누에 아파트’가 놓여 있었다. 누에는 스스로 틀 위로 올라가 집을 짓고 농가는 나방이 나오기 전 이를 수확해 실을 뽑아낸다. 잠종(누에알)을 농가에 보급하면 약 2주 만에 누에고치를 생산할 수 있다.
세계 4위 실크 생산국인 베트남은 고품질 잠종 부족과 중국산 잠종 의존도가 높아 산업 성장에 한계를 겪어왔다. 농촌진흥청의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인 코피아(KOPIA)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지 연구기관과 맞춤형 농업기술을 공동 개발·보급하고 있다. 현재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등 22개국에서 운영 중이며 2009년 해외 첫 코피아센터가 문을 연 곳도 베트남이다.
코피아 베트남센터는 2019년부터 현지 연구진과 함께 신품종 누에 ‘VH2020’ 개발과 잠종 생산체계 구축을 추진해 2023년 베트남 정부 품종 등록을 마쳤다. 한국형 다단 사육시설도 함께 보급해 생산량은 15~20% 늘고 노동력은 20% 줄었다. 연간 1만 상자 이상의 잠종을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갖췄고 잠종 국가 자급률은 지난해 9%까지 높아졌다. 오는 2028년에는 13% 달성이 목표다.
![]() |
| 지난 1일 베트남 하노이 외곽 베트남양잠연구소(VietSERI) 내부 회의실 모습 [농림축산식품부 공동취재단 제공] |
레 홍 반 베트남양잠연구소 소장은 “양잠은 베트남의 오래된 산업이지만 한동안 침체돼 있었다”며 “2019년 코피아가 사업을 시작한 뒤 선진 기술이 도입되면서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명래 코피아 베트남센터 소장은 “베트남은 뽕나무가 1년 내내 자라 우리나라가 연 2회 정도 누에를 사육하는 것과 달리 연 10~12회 양잠이 가능하다”며 “한국 기술자가 교배 조합을 통해 최초의 복교잡 흰누에 품종인 ‘VH2020’을 개발했고 이를 바탕으로 잠종 자급률을 높여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잠은 코피아가 베트남에서 거둔 성과의 일부다. 2009년 해외 첫 코피아센터가 하노이에 문을 연 이후 채소·양잠·딸기 등 20여 개 농업기술 협력 과제를 수행했고 현재는 양잠과 땅콩을 국가 단위 성과확산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성과는 한국 채소 품종의 현지 보급이다. 코피아는 베트남농업과학원(VAAS)과 함께 한국 채소 256개 품종의 현지 적응시험을 진행해 배추·무·상추·참외 등 7개 작물 11개 품종을 베트남에 등록했다.
하노이 인근 김득(Kim Duc) 마을에서는 한국 품종 배추 7헥타르(ha·1ha는 1만㎡), 무 1ha, 상추 1ha를 계약재배하고 있으며 호아빈성에서는 ‘동하’ 무 재배면적이 매년 15~20ha까지 확대돼 헥타르당 4억~5억동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 |
| 허수영 동아비나 대표가 1일 하노이 인근의 땅콩버터 가공 공장에서 코피아 사업으로 생산된 땅콩의 가공·판매 방식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공동취재단 제공] |
땅콩도 한국 기술로 경쟁력을 높였다. 코피아는 2014년부터 베트남 건조지역의 대표 소득작물인 땅콩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우량 품종 개발과 종자 생산체계 구축을 추진했다. 병해에 강한 ‘TK10’과 ‘L20’ 품종을 개발한 결과 생산성과 농가 소득이 모두 50% 이상 증가했다. 올해 1월에는 토양관리기와 탈곡기, 탈피기 등 한국산 농기계 11대를 시범마을에 도입해 재배 전 과정의 기계화를 지원하고 있다.
코피아가 보급한 기술은 농가를 넘어 민간 사업으로도 확장됐다. 코피아 우량 품종으로 생산한 땅콩은 한·베트남 합작사 ‘동아비나’의 땅콩버터 브랜드 ‘투본 너츠’의 원료로 쓰인다. 지난해 30톤(t)을 사용한 데 이어 올해는 원료 사용량을 50t까지 늘릴 계획이다.
생산된 땅콩버터는 베트남 현지에서 판매되는 것은 물론 지난달부터 일부 물량이 한국에도 수출되기 시작했다. 허수영 동아비나 대표는 “수출 비중이 80% 이상이며 수입 제품보다 약 20% 낮은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농진청은 “베트남 땅콩 사례는 ODA 사업 성과를 바탕으로 수원국 정부와 현지 기관의 신뢰를 확보하고 이를 민간기업의 현지 사업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한 사례”라며 “코피아 사업이 단순한 기술 보급을 넘어 민관 협력 모델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