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청, 종묘 개발 직권 취소 절차 착수…서울시에 ‘급브레이크’

서울시, 최고 ‘142m’ 고층 재개발 계획
국가유산청, 문체부·국토부 통해 제동
주무부처 장관 직권 취소 시 개발 불가


서울 종로구 종묘 정전에서 봉행된 ‘종묘대제’ [한국관광공사 제공]


[헤럴드경제=김명상 기자] 국가유산청이 세계문화유산인 종묘를 지키기 위해 칼을 뽑았다.

국가유산청은 최고 높이 142m에 이르는 서울 세운4구역 고층 재개발 계획을 저지하고자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 장관의 ‘직권 취소 절차’에 착수했다. 관련 절차가 실제로 완료되면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에 급브레이크가 걸릴 전망이다.

문체부·국토부 통한 개발 계획 취소 절차 돌입


‘종묘대제’에서 제관들이 정전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유산청은 서울시가 지난 6일 세운4구역 사업시행계획 변경인가 취소 요청을 거절함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를 거쳐 국토교통부를 통한 직권 취소 절차에 돌입했다고 8일 밝혔다.

이번 사안은 지난달 18일 임기 종료를 앞둔 전임 종로구청장이 세운4구역 사업시행계획 변경을 인가하고 이튿날 곧바로 고시하면서 불거졌다. 변경안의 핵심은 건축물 높이 상향이다. 종로변 건축물은 54.3m에서 98.7m로, 청계천변은 71.8m에서 141.9m로 대폭 높아지고, 규모도 지상 38층으로 확대됐다. 기존 계획 대비 건물 높이가 사실상 두 배 가까이 높아지면서, 종묘의 역사문화경관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유산청은 세운4구역 사업시행계획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같은 달 26일 종로구의 상위 기관인 서울시에 시정명령을 요청했다. 국가유산청은 이미 지난 5월 국가유산기본법에 근거해 세계유산영향평가(HIA)를 완료하기 전까지 인허가 절차를 중단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전임 종로구청장이 인가를 강행했기 때문에 절차적 위법이 명백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서울시는 법적 절차를 이유로 유산청의 요청을 거절했다. 지방자치법 제188조에 따르면 시정명령 요청 권한은 주무부처 장관에게 있는데, 국가유산청장 명의의 취소 요청은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논리다. 해당 조항은 지방자치단체의 처분이 법령을 위반하거나 공익을 현저히 해칠 경우 상급 기관이 시정명령을 내리고, 이행하지 않으면 주무부 장관이 직권으로 취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취소 위기에 ‘초강수’


서울시의 거부에 국가유산청은 우회로를 택했다. 도시정비법상 사업시행계획 인가 사무를 관장하는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를 통해 절차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국가유산청은 우선 상위 부처인 문체부에 위법 판단 근거를 전달하고, 문체부가 국토부에 직권 취소를 요청해 국토부 장관이 이를 검토하는 방식이다.

유산청 관계자는 “현재 국토부와 위법 근거 작성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협의하며 교감하고 있다”며 “주무부 장관인 국토부 장관이 직권 취소권을 행사할 경우 서울시는 사실상 개발을 진행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곽상언 의원이 국회 소통관에서 종묘 앞 세운4구역 재개발사업 인가를 규탄하는 모습 [연합뉴스]


국가유산청이 초강수를 두는 배경에는 유네스코의 압박도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곽상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의 지난 3월 비공개 서한에 따르면, 유네스코는 세운4구역 재개발 승인에 앞서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시행하라고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확답이 없을 경우 오는 19일부터 29일까지 부산에서 열리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종묘를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등재 검토 대상에 올리고 전문가 실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뜻을 전했다.

유네스코 운영지침상 세계유산 등재 철회 여부는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와 진정성, 완전성이 훼손됐는지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된다. 종묘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공식 등재되기 전인 1994년 10월, 유네스코의 심사 및 현지 실사를 관장하는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의 공식 평가보고서에는 ‘종묘의 시각적 완결성(Visual Integrity)을 지키기 위해 주변 지역의 고층 개발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고 권고한 내용이 명시돼 있다.

만약 서울시가 세계유산영향평가와 국제기구의 권고를 계속 거부할 경우, 유네스코로부터 ‘관리 의지 미달’로 평가받아 위험유산 등재는 물론 세계유산 목록에서 삭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유네스코 측 서한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현재 시점에서 최종 결정된 바는 없다”며 “인가 취소 절차를 밟는 동시에 유산영향평가를 바탕으로 조정을 위한 설득 작업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