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 투자금 반환 논의 들어가야
SK에코플랜트 등 이미 마친 곳도
![]() |
|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지난 4월1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중복상장 제도개선 의견수렴을 위한 공개 세미나에서 축사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금융당국의 중복상장 규제가 본격화하면서 상장(IPO)을 전제로 재무적투자자(FI) 자금을 유치했던 기업들이 수천억원대 ‘청구서’를 받아들 위기에 놓였다.
지난 6일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가 공개한 중복상장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중복상장 규제 대상은 물적분할로 설립된 회사뿐 아니라 인수, 신설한 자회사도 포함된다. 물적분할 자회사는 모회사 주주들의 동의를 필수로 요구한다. 인수 또는 신설 자회사 상장을 시도할 경우에는 주주 동의를 받거나 주주 동의가 없을 시 거래소가 주주충실의무 지켰는지 개별 심사할 방침이다.
자본시장에서는 고강도 규제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산업이나 거래 유형을 명확히 제시하기보다 주주총회, 이사회, 특별위원회, 거래소 심사 등 ‘절차’에 중점을 둔 가이드라인으로 사실상 ‘원칙적 금지’에 해당한다는 지적이다.
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개인투자자 보호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가이드라인 적용 시점을 늦추거나 산업 종류, 자회사 형성 과정에 따라 한시적으로라도 예외를 뒀다면 시장 불확실성이 훨씬 줄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가장 먼저 압박을 받는 곳은 기한 내 상장을 조건으로 사모펀드, 자산운용사 등으로부터 자금을 유치한 기업들이다. 계약상 정해진 기한 내 IPO를 추진할지, FI 투자금을 되돌려줄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 특히 2026~2027년까지 상장을 약속한 기업들은 당장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기존 FI 엑시트를 위해 모회사와 대상회사가 직접 자금을 투입하거나 새 FI를 찾아야 한다. 프리 IPO 당시 보장했던 내부수익률(IRR)이 통상 5~10%인 점을 고려하면 투자 원금에 누적 수익률을 더한 상환 부담은 수천억원에 달한다.
LS그룹의 LS MnM과 LS에식스솔루션즈 대표적이다. LS MnM은 2022년 JKL파트너스로부터 4700억원 규모 교환사채(EB) 투자를 유치하며 오는 2027년 8월까지 상장을 추진하기로 했다. LS에식스솔루션즈는 지난해 미래에센자산운용·KCGI 컨소시엄으로부터 2950억원 규모 프리IPO 투자를 유치하고 곧바로 상장을 시도했으나, 지난 1월 상장 신청을 전면 철회했다. 계약서상 상장 기한은 2030년 8월까지로 비교적 여유가 있지만 상장을 전제로 계획했던 대규모 투자와 사업 확장에 제동이 걸렸다.
또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가이드라인 발표가 늦어지면서 당초 예상보다 완화된 안이 나올 수 있다는 예상도 있었지만 시장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며 “상장 기한이 임박한 기업은 강화된 규제의 ‘첫 타자’가 되는데 부담이 큰 만큼 지분 매입이나 추가 투자 유치 논의를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이미 FI 상환을 마치거나 순차적 반환에 나선 사례도 있다. SK에코플랜트는 지난 6월 이음프라이빗에쿼티(PE), 프리미어파트너스 등 FI 투자금을 반환했다. 컨소시엄은 2022년 구주 2000억원, 전환우선주(CPS) 6000억원 등 8000억원을 투입했다. 2026년 7월까지 상장을 약속했지만 회계처리와 중복상장 규제가 겹치면서 IPO가 어려워졌고, 결국 SK(주)와 SK에코플랜트가 투자 원금에 이자를 더해 1조500억원을 돌려줬다.
SK스퀘어 자회사 티맵모빌리티도 FI 협상 부담이 남아있다. 2021년 어펄마캐피탈·이스트브릿지파트너스로부터 총 4000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당초 2025년까지였던 IPO 시점은 2027년까지로 미뤄졌다. 티맵모빌리티 측은 올해 초 FI 보유 지분 중 절반가량을 사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더 큰 부담은 신산업 자금조달 창구가 좁아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 상장 대기업 집단 내부에서 반도체, 배터리, 수소, 환경 등 대규모 설비투자(CAPEX)가 필요한 신사업을 키우면서 상장을 조건으로 한 자금을 조달해왔다. 모회사의 현금 창출력과 차입 여력만으로 투자 규모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IB업계 관계자 “미국은 자본시장이 커서 비상장 자회사도 자금 조달이 용이하다. 대만이나 홍콩에 비하면 한국은 산업 포트폴리오가 훨씬 다양하다는 점을 간과했다”며 “자본시장 규모, 산업 구조 측면에서 중복상장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