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 장인? 내가 한 건 별로 없다” ‘대세 신인’ 허남준의 고백 [인터뷰]

SBS 금토 ‘멋진 신세계’ 재벌남 차세계役
첫 로코 주연으로 ‘하남자 중 상남자’ 완성
“신인이기 때문에…나만 잘하면 된다 다짐”
“일희일비 경계, 배우로서 롱런하고 싶어”

 

배우 허남준 [에이치솔리드 제공]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아본 게 처음이에요.”

시청자들에게도 처음이었다. 자기밖에 모르던 비호감 재벌이 사랑 하나에 울고 웃으며 오직 한 사람만을 향해 직진하는 순정남이 되는 모습을 본 건 말이다. ‘차세계’가 시청자들의 마음에 짙게 내려앉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멋진 신세계’가 유독 허남준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테다. 무엇이든 처음은 강렬한 법이니.

따뜻한 봄날의 햇살과 함께 설레는 출발을 알렸던 SBS 금토드라마 ‘멋진 신세계’가 계절의 문턱을 지나, 여름의 뜨거움 못지않은 시청자들의 열렬한 관심 속에 종영을 맞았다.

‘멋진 신세계’는 조선 악녀의 영혼이 씐 무명 배우 신서리(임지연 분)와 자본주의의 괴물, 악질 재벌 2세 차세계(허남준 분)의 혐관에서 시작해 순정으로 끝나는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다. 드라마는 공개 첫 주부터 넷플릭스 글로벌 비영어 TV쇼 1위에 올랐고, 두 자릿수를 거듭하며 동시간대 1위를 지켜온 시청률은 지난 20일 최종회에서 최고 14.1%까지 치솟으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화제성과 시청률, 글로벌 흥행까지 제대로 싹쓸이한 셈이다.

SBS ‘멋진 신세계’ 스틸 [SBS 제공]

‘차세계’라는 이름이 더없이 꼭 맞는 배우 허남준을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멋진 신세계’는 그의 첫 주연작이자 첫 로맨틱 코미디 도전작이다. 데뷔 8년 차. 아직도 스스로를 ‘신인’이라고 말하는 그는 도전에 도전으로 가득했던 이번 작품의 흥행이 아직도 얼떨떨한 듯 보였다. 그럼에도 쏟아지는 관심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며, 수다쟁이처럼 작품과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조잘조잘 풀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누가 뭐라 해도 확신의 ‘E(외향형)’다.

“당연히 흥행을 예상하진 못했죠. 그런데 촬영하면서도 이 드라마가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했어요. 요즘에는 길에서도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시고, 늘어나는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를 보면서 작품의 인기를 실감하는 것 같아요. 친구들은 제 모습이 오글거린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사실 로맨틱 코미디 남자 주인공으로서 그가 준 까칠한 첫인상은 묘한 느낌이었다. 마치 갑옷처럼 두른 슈트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 같은 표정은 당장이라도 누아르나 스릴러로 뛰어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듯 보였다. 그랬던 차세계는 신서리를 만나며 둘도 없는 순정남으로 변해간다. 자신의 마음을 깨달은 순간부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직진만 하는 로코 남주의 열렬한 순애보. 그냥 지나칠 방법도, 설레지 않을 방법도 없다.

사실 전형적인 남자 주인공의 느낌은 아니잖아요. 신서리를 제외하면 누구도 믿지 않는 칼 같은 사업가죠. 첫인상에서 느껴지는 강함이나 냉철함은 제 이미지에도 있는 것 같은데, 문제는 코믹과 멜로였어요. 제 안에 있는 그런 요소들을 감독님과 함께 찾아보려고 노력했죠.”

SBS ‘멋진 신세계’ 스틸 [SBS 제공]

재벌 차세계와 사랑에 빠진 차세계의 모습은 천양지차다. 말로 사람도 벨 것 같던 그의 입에선 어느 순간 “나랑 두근두근하자”, “예뻐용~ 합격이에용~” 같이 오글거리는 대사들이 아무렇지 않게 쏟아낸다. 사랑 앞에서 자존심은 사치다. 자신이 사내로 보이지 않는다며 밀어내는 신서리에게 물러나지 않고, 찌질함마저 불사하며 지고지순하게 밀어붙이는 것이 ‘차세계표 로맨스’의 정체성이다.

“차세계를 보고 ‘하남자 중의 상남자’라는 표현이 정말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신서리를 대하는 차세계를 연기하면서 제 안의 ‘찌질함’을 좀 더 발견하게 된 것 같아요. 강인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연약하고, 떼쓰는 아이 같은 제 모습을 직접적으로 바라보게 된 계기였죠.”

지난 2019년 영화 ‘첫잔처럼’으로 데뷔한 허남준은 강한 인상의 악역, 혹은 서브 남자 주인공으로 조금씩 존재감을 키워왔다. 2024년 ENA ‘유어 아너’에는 냉혹한 빌런 김상혁 역으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고, 지난해 JTBC ‘백번의 추억’에서는 주인공 고영례(김다미 분)와 서종희(신예은 분)의 운명적인 첫사랑 한재필 역을 맡아 지고지순한 순정남의 매력을 선보였다.

이번 ‘멋진 신세계’로 처음 로맨스 남자 주인공이라는 책무를 부여받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만 잘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배우 허남준 [에이치솔리드 제공]

“(상대 배우인) 임지연 선배는 이미 연기를 정말 잘하는 사람인데도 누구보다 열심히 하더라고요. 무리한 상황에서도 묵묵하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잘하는데도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면서 ‘나도 더 열심히,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밀당이라고는 모르는 차세계식 로맨스는 어느덧 허남준에게 ‘로코 장인’이라는 별명을 안겨줬다. 첫 로맨스 도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없이 큰 칭찬이다. 하지만 허남준은 “나는 한 게 별로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자신이 한 것은 그저 연기뿐이라는 설명이다.

“작가님이 전체적인 그림을 잘 그려주셨고, 감독님께서도 다양한 장치를 활용해 재기발랄하게 극을 살려주셨어요. 그리고 작품이 나온 걸 보면서 촬영, 조명, 편집과 음악 등 담당 스태프분들의 역할도 정말 컸다는 걸 깨달았죠. 이번 드라마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모두의 결과물이에요. 저는 ‘로코 장인’이라고 불릴 만큼 대단한 걸 한 게 아니라, 그저 제가 해야 할 연기를 했을 뿐이에요.

허남준은 인터뷰 내내 거의 모든 답변에서 자신을 ‘신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아직은 연기만 할 줄 아는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촬영할 때는 자신의 연기를 해내는 데 급급하고, 아직 전체적인 그림을 보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신인’은 부족함을 인정하고 부단히 채워나가겠다는 다짐처럼 들렸다.

SBS ‘멋진 신세계’ 스틸 [SBS 제공]

“저는 아직도 제가 모르는 게 너무 많고, 신인 같아요. 어디서든 모르는 건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이유도 제 부족함을 잘 알기 때문이에요. 물론 언젠가는 큰 그림을 보면서 연기하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해요.”

‘차세계’를 통해 배우로서 한 단계 도약에 성공한 그는 작품이 종영되기도 전에 차기작을 확정 지었다. 그는tvN 시대극 로맨스 ‘고래별’에서 독립운동가 송해수 역으로 시청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다음 작품에 대한 부담도 있지만, 흥행 여부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건 배우 생활을 오래 이어가기 위한 그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제 업의 본질은 어떤 (시청자) 반응이 오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열심히 준비해서, 그걸 다 보여드리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제가 가는 길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을 거잖아요. 잘된다고 너무 들뜨지 않고, 안 된다고 심하게 낙심하지 않아야 건강하게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