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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댄포스가 옳았다’ [트위스트1971 공연제작소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누가 범인인가. 범인을 찾으려는 순간, 관객은 함정에 빠질 지도 모른다. 장진 감독의 정통 심리극 ‘댄포스가 옳았다’는 사실 전혀 다른 것을 묻는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방대한 대사와 유쾌한 농담으로 무대를 채웠던 장진 감독이 이번엔 완전히 달라졌다. ‘웃음 포인트’는 딱 여섯 번, 단 두 명의 배우에게 무려 40페이지의 대사를 몰아넣었다. 12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과 천재 프로파일러가 30분씩 일곱 번을 마주하는 동안 둘의 역할은 수시로 달라진다.
장진 감독은 최근 서울 종로구 예스24스테이지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초연 연극은 늘 스스로도 의심하는 부분이 많은데, 그래도 잘 시작해 관객을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연극 ‘댄포스가 옳았다’는 지난 12일 개막했다.
이 연극은 대화와 침묵만으로 긴장을 쌓아 올리는 장진표 심리극의 귀환이다. 뉴욕 브루클린 메트로폴리탄 구치소를 무대로 삼은 연극은 단 두 명의 배우만 오른다. 조너스 역은 박건형·최영준·강승호가, 존 역은 고상호·김한결·이현우가 번갈아 맡는다. 같은 인물이라도 배우 조합에 따라 매번 다른 무게의 심리전이 펼쳐진다는 점도 관전 포인트다.
그는 “연쇄살인마를 쫓아 그가 범인인지 아닌지를 밝히는 이야기 그 이상의 것이 후반부에 펼쳐진다”며 “갈수록 몰아치는 배우들의 에너지와 집중력을 기대해 달라”고 당부했다.
원작은 본래 5명이 등장하는 희곡이었다. 장 감독은 “8~9년 전 희곡으로 쓰다가 너무 영화 같다고 느껴 시나리오로 다시 썼고, 언젠가 영화로도 만들고 싶다”고 돌아봤다. 대본을 처음 완성했을 당시엔 존과 조너스 외에도 수사관 팀장, 어릴 때 부모를 잃은 존을 대부처럼 돌본 노교수, 존을 처음 제보한 인물 ‘도니 매커시’까지 다섯 명이 등장했다.
장 감독은 “어느 순간 연극으로 먼저 올리자는 생각에 희곡을 마무리했는데, 고민 끝에 2인극으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영화 시나리오로 완성된 버전은 한국을 배경으로 이미 따로 존재한다고 장 감독은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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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댄포스가 옳았다’ [트위스트1971 공연제작소 제공] |
작품의 출발점은 어린 시절 친구와 나눈 대화였다. 장 감독은 “‘내가 너 부자 되는 법 알려줄게. 흉악범 현상금이 높아지면 그때 나를 신고해’라고 했던 누군지도 기억나지 않는 친구와의 유치한 농담이 모태가 됐다”고 한다.
배경을 미국 뉴욕으로 잡은 이유엔 거창한 의도가 있지 않다. “이야기가 과잉으로 치닫는 부분이 있는데, 외국을 배경으로 하니 좀 편했다”고 한다.
연극에 나오는 사건들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은 아니다. 장 감독은 “책도 보고 사례도 찾아보면서 상상을 많이 했다”고 했다. 극 중 펜싱 선수 출신 살인범의 광기를 그릴 때는 실제 국가대표 펜싱 선수를 인터뷰해 현실감을 살렸다. “누군가를 수십만 번 찌르다 보면 환청과 환각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살인 충동을 느낄 수 있느냐”고 직접 물어가며 희곡을 완성했다. 그는 “당사자는 냉철하게 ‘그건 미친 상상’이라고 했지만, 창작자로서 상상해 볼 만한 지점이었다”고 웃었다.
장진표 연극은 ‘블랙 코미디’가 유명하지만, 이 작품에선 코미디는 자제했다. 그는 “살짝만 삐끗해도 유쾌하게 다가갈 수 있어 과한 코미디는 자제했다”며 “극이 필요로 하는 긴장도를 깨지 않는 선에서 배우들이 스스로 조율하고 있다”고 했다.
장 감독은 결말에 대해 “엄청난 스포일러”라면서도, “수개월에 걸쳐 관객을 만나는 작품인 만큼 스포일러 때문에 즐거움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유를 보였다.
배우들은 고생이 많았다. 압도적인 대사량 때문이다. 박건형은 “이 작품은 대사량의 공포가 있었다”며 “40페이지 분량을 외우는 일 자체가 큰 산이었다”고 털어놨다. 강승호는 “연습에 들어오기 전 대사를 절반 정도는 숙지하고 갔다”며 “감독님의 디테일한 지시를 따라가는 두 달이 험난했지만, 배우로서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5인극에서 살아남은 두 캐릭터에 세 명이 등장했던 인물들의 대사가 고스란히 얹히면서 분량은 한 사람에게 쏠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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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댄포스가 옳았다’ [트위스트1971 공연제작소 제공] |
연쇄살인범 캐릭터를 빚어낸 과정도 인상적이었다. 고상호는 “살인 행위 자체보다 이 사람이 어떻게 잡혀왔고, 프로파일러 앞에서 어떻게 보여야 하는가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김한결은 “감독님이 ‘글 안에 캐릭터의 90%가 있다’고 하신 말을 마음에 새겼다”며 “시한부 삶을 사는 사람이 일반인 눈에는 사이코패스처럼 보일 수 있다는 지점에서 출발해, 미국 수사 드라마를 많이 참고했다”고 돌아봤다. 이현우는 “처음엔 전형적인 연쇄살인마 이미지로 캐릭터를 쌓아갔지만, 대본을 파고들수록 같은 대사도 다른 마음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그 과정 자체가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다”고 자평했다.
장진 감독과의 작업 과정은 고통과 행복의 연속이었다. 박건형은 장진과의 작업이 “굉장히 불편하다”며 “작품을 쓰고 연출한 사람이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앞에서 처음 연기를 보여드린다는 게 마냥 편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불편함을 편함으로 만드는 두 달간, 연기하는 행복과 고통을 동시에 느꼈다”고 덧붙였다.
고상호 역시 “고등학교 시절 처음 연극을 했을 때 장진 감독의 희곡으로 교내 공연을 했던 적이 있다”며 “그때 주인공이었던 작품을 직접 연기하게 됐다는 점에서 호감이 컸다. 두 인물이 하고 싶은 말을 끝내 다 하지 못한 채 치닫는 결말에 매력을 느껴 출연을 택했다”고 밝혔다. 김한결은 “감독님은 요령을 못 피우고 아끼지를 못한다”며 “그래서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해내고 나면 성취감이 크고 배우로서 계속 성장하는 기분이 든다”고 돌아봤다.
연극은 ‘범인 찾기’에 방점을 둔 스릴러가 아니다. 장진 감독은 “두 인물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고 했다. 관객이 프로파일러와 살인범 중 어느 한쪽에 서기보다, 두 사람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결국 같은 자리에서 만나도록 설계한 작품이라고 장 감독은 강조했다.
작품의 핵심은 ‘누가 범인인가’가 아니라 ‘악은 발견되는가,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에 있다. 이현우 역시 “극을 보고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보고 싶은 대로 살았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작품”이라며 “삶을 살아갈 때 우리가 얼마나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