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 반말엔 “친해서”, 고성엔 “사고 예방 위해”
노동부는 존중 캠페인…교재는 순응 교육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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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제작한 고용허가제(EPS) 한국어 표준교재 ‘직장생활 한국어 2’. 교재에는 상사의 반말과 고성을 “친해서”, “사고 예방을 위해”라고 설명하는 대화문이 수록돼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 교재 캡처] |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제작한 한국어 교재에 상사의 반말과 고성을 사실상 정당화하는 내용이 담겨 논란이 일고 있다. 외국인근로자의 문제 제기를 ‘오해’로 결론짓는 서사가 포함돼 있어 노동인권 보호 기조와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21일 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고용허가제(EPS) 한국어 교육 과정에서 활용되는 표준교재 ‘직장생활 한국어 2’에는 직장 내 의사소통을 다룬 대화문이 수록돼 있다.
대화문에서 외국인근로자 ‘칼로’는 “부장님이 저한테 자꾸 반말을 하셔서요”라고 불만을 토로한다. 이에 다른 인물은 “부장님이 칼로 씨를 친하게 생각해서 반말하시는 거예요”라며 “한국에서는 친한 사람에게 반말을 할 수도 있고 부모님께 반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설명한다.
이어 칼로가 “그래도 가끔 너무 무섭게 말씀하세요”라고 하자 상대방은 “일할 때 소리 지르시는 거요? 사고가 나면 안 되니까 그러시는 거예요”라고 답한다. 대화는 “부장님이 저를 무시한 게 아니었네요”, “아, 제가 부장님을 오해했네요”라는 칼로의 말로 마무리된다.
교재는 이어 학습자들에게 “부장님은 칼로 씨를 무시해서 반말을 해요?”, “왜 부장님은 일할 때 소리 질러요?” 등의 질문을 제시하고 대화 내용을 바탕으로 답하도록 구성했다.
문제는 외국인근로자가 직장 내 반말과 고성에 불편함을 제기했음에도 교재가 이를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 또는 오해의 문제로 정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급자의 언행이 적절했는지 여부를 따져보기보다 외국인근로자가 스스로 인식을 수정하는 방향으로 서사가 전개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장 교사들은 해당 교재가 단순한 언어 교육을 넘어 권위적인 직장문화를 수용하도록 유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창용 직장갑질119 온라인노조 한국어교원지부 지부장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학습자는 결국 ‘부장님이 저를 무시한 게 아니었네요’, ‘제가 오해했네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며 “한국어 교사는 사실상 그 답을 정답으로 가르쳐야 하는데 이것이 과연 노동인권 교육인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한국어 교원들의 비판도 이어졌다. 한 교원은 “칼로의 마지막 한마디는 ‘그럼 저도 일할 때 소리 지르면서 말해도 되나요? 사고가 나면 안 되니까요’여야 한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교원은 “직장 내 괴롭힘을 설명하기 위한 대화문이라면 이해하겠지만 현재 구성은 반말과 고성을 정당화하는 내용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한 교원은 “미얀마 문화에서는 팔짱을 끼는 것이 예의라는 내용을 담은 교과서라면 한국인 사장이 ‘제가 미얀마 문화를 몰라서 오해했네요’라고 말하는 장면도 함께 들어가야 상호문화 이해 교육”이라며 “이 교재는 외국인근로자가 오해한 것이 아니라 상급자의 언어폭력을 합리적 이유로 포장해 이해하라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비판했다.
학계에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한국학자인 박노자(블라디미르 티호노프)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는 SNS를 통해 “고용노동부의 인권 감수성 수준을 보여준다”며 “국내 학생들에게 이런 식으로 가르쳤다면 큰 문제가 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라도 이런 교과서를 재편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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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나주시의 한 벽돌 생산공장에서 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가 지게차 화물에 묶인 채 들어올려지는 영상이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사진=전남이주노동자네트워크 제공] |
일각에서는 노동부가 직장 내 괴롭힘 예방과 노동인권 보호를 강조하면서도 외국인근로자 교육 과정에서는 상급자의 권위적 언행을 용인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 산업현장에서 반복적인 고성이나 모욕적 언행은 직장 내 괴롭힘 판단 요소가 될 수 있다.
한편 노동부는 최근 전국 산업현장을 대상으로 ‘이주노동자 노동존중 캠페인’을 벌이며 “‘야’, ‘너’ 대신 이름을 부르자”는 메시지를 확산하고 있다. 노동부는 지난달 광주에서 열린 캠페인에서 “관행적인 호칭 문화를 개선하고 함께 일하는 동료에 대한 존중 문화를 확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