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서 있대요…10장 남았습니다” 다급했던 송파구 투표소 [이런정치]

6·3 지방선거 본투표일인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잠실 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유권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가락2동 3투(표소) 90매, 줄 서 있대요”

지난 3일 오후 3시 39분께 서울 송파구 가락2동 제3투표소에 선거관리를 하던 서기는 단체 카톡방에 이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약 20분 뒤인 오후 4시 7분께 그는 “가락2동 3투 언제 출발하나요, 10장 남았습니다”라는 다급한 연락을 한 차례 더 남겼다. 5분 뒤인 오후 4시12분께 “가락2동 3투 중단”이라는 메시지를 끝으로 이날 가락2동 서기는 더 이상 단체 카톡방에 등장하지 않았다.

이 시간 투표용지가 동이 나 혼란에 빠졌던 건 가락2동 제3투표소뿐 아니었다. 잠실4동의 간사 역시 오후 3시35분께 “잠실4동 5투 잔여 수량 100매 미만입니다. 빠른 지원 바랍니다”라고 했고, 약 30분 뒤인 오후 4시11분께 “잠실4동 5투 투표용지 없어 투표 중단”이라고 했다.

잠실4동 제5투표소와 가락2동 제3투표소를 시작으로 문정2동 제2투표소(오후 4시 38분께), 잠실7동 제2투표소(오후 4시41분께) 등 곳곳에서 투표 중단이 현실화했다.

6·3 지방선거 본투표일인 지난 3일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시간이 오후 10시까지 연장된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앞에 주민들이 모여 있다. [연합]


6·3지방선거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극심한 혼란에 빠졌던 서울 송파구 일대 투표소의 고군분투가 지난 19일 고스란히 공개됐다. 열흘 간의 활동을 마무리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 진상규명위원회’의 마지막 브리핑에서다.

조현욱 위원장은 “단톡방에 나온 내용을 토대로 구체적으로 알린 이유는, 실제로 보고 체계가 어떻게 되고 있었는지, 위기 대응을 어떻게 했는지 보여드리기 위해 직접 다 인용했다”며 “읍면동 간사·서기들이 모여있는 단체방 내용을 보면 이미 낮 12시 무렵부터 투표용지 부적이 우려됐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일대에서 투표용지 부족 피해가 집중됐던 건 인쇄 하한선 50%(잠실3·4동은 6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량을 준비했던 탓이다. 송파구의 예상 선거인 수는 56만4438명이지만, 일련번호를 기재해 인쇄한 투표용지는 28만800장(49.74%)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여기에 일련번호가 기재되지 않은 투표용지 2000장을 더해야 28만2800장(50.2%)으로 겨우 하한선을 맞춘 수준이다.

김범진 서울시선관위 사무처장이 지난 4일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로 들어가려다 투표함 반출을 막는 시민들의 제지를 받고 있다. [연합]


일련번호 기재 여부는 투표일 극심한 혼란을 일으켰다. 공직선거법 150조 10항은 ‘투표용지에는 일련번호를 인쇄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을 준수하기 위해 송파구 선관위 직원들은 무번호 투표용지에 일일이 수기로 일련번호를 적어야 했고, 이는 결국 투표용지 배송을 지체시켰다.

조 위원장은 “일련번호를 기재한 투표용지를 송파구 선관위 직원이 투표소에 직접 배송하느라 단체방에 올라오는 각 동 간사·서기의 요청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으며, 송파구 선관위 사무국장까지 일련번호 기재에 매달려 위기 상황 대응 및 보고 체계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미 여러 투표소에서 투표가 중단된 이후인 오후 4시46분께 송파구 선관위와 서울시 선관위는 일련번호를 기재하지 않은 채로 투표소에 무번호 투표용지를 배부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들은 오후 5시가 넘어서야 투표소 현장에서 무번호 투표용지에 일련번호를 기재하도록 하고, 무번호 투표용지 소진 시 인근 투표소의 잔여분 활용 및 사전투표용 투표용지 발급기 이용 등 대책들을 뒤늦게 세웠다.

진상규명위는 활동 최종 보고에서 송파구 선관위 위원장을 비롯한 3명, 서울시 선관위 위원장 등 4명, 중앙선관위 노태악 전 위원장과 허철훈 사무총장 등 총 12명에 대한 수사 의뢰를 권고했다고 밝혔다. 또한 투표용지 인쇄비율 70% 상향과 무번호 투표용지 최소화 및 사건·사고 현장 중심 매뉴얼 정비하는 등 10가지 재발 방지 대책 및 정책을 제안했다.

조현욱 ‘투표용지 부족사태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9일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최종 조사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


아울러 진상규명위는 현재 대법관 겸직이 관례로 굳어진 비상근인 중앙선관위원장에 상근제를 도입하고, 감사원 직무감찰 범위에 선관위를 포함하도록 하는 등 강도 높은 선관위 제도 개혁을 주문했다. 이는 각각 선관위법은 물론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 사안으로, 정치권 제시된 방식이다.

민주당은 선관위원장 상임직 전환 및 상임위원 확대와 감사원 감사 허용을 중심으로 한 선거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선관위를 행정안전부 산하 기구로 두거나, 비상설 기구로 두는 등 사실상 해체 수준의 대대적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다만 섣부른 개혁이 오히려 과거 관권·부정선거를 겪으며 구축한 선관위의 중립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선관위 조직 전반을 손 보기보다 제대로 된 위기 대응 및 보고 체계를 갖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해결할 대책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는 취지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앙선관위장 상근화, 선관위 감사 등은 코로나19 당시 ‘소쿠리 투표’, 선관위 가족 채용 비리 사태, 지난 대선 투표용지 외부 반출 등이 터질 때마다 나왔던 대책”이라며 “분풀이식으로 대응할 게 아니라 선관위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 현실성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