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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명관 작가가 17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장편 소설 ‘아코디언’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창비] |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역사는 반복되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이겨내려 하는 의지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도 그런 알레고리가 있습니다. ”
2023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천명관 작가가 10년만에 장편 소설로 돌아왔다. 한국전쟁의 흙먼지가 채 가시지 않은 195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한 신작 ‘아코디언’이다. 이번 소설은 해방촌, 미군 기지촌 등을 배경으로 전쟁고아가 돼 앵벌이를 하며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천명관 작가는 17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아코디언’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전쟁은 인류사에서 드문 끔찍하고 거대한 비극이면서 지금 한국 사회의 지형을 만든 가장 근원적인 사건”이라면서 “가장 비참하게 밑바닥에서 희생된 아이의 이야기에 마음이 끌려서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 소설은 2012년 창비 블로그에 ‘길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발전시킨 작품이다. 당시 1년가량 연재를 하고 영화 일을 하느라 10년을 보낸 후 이번에 다시 2년 정도 수정을 해 총 3년에 걸쳐 완성하게 됐다.
“연재 분량은 1000매 이상이었고 원래 이 책도 3배 분량 정도로 구상했다. 스타일도 지금과 매우 다르게 쓰려고 했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흘러 다시 쓰려고 하니 생각이 바뀌었다. 분량을 300매 정도로 줄이고 문체와 구성도 완전히 바꿨다. 이번 책이 가장 힘든 작업이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고래’를 쓸 때는 머릿속의 상상력이 뻗어나가는 대로 놓아줬다”면서“이 이야기(‘아코디언’)는 리얼한 측면을 강조하다 보니 판타지적 요소가 거의 없다. 상상력을 억제하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최근 문학계에서 드문 소재인 한국전쟁을 선택한 것은 그 영향이 현재까지도 유효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천 작가는 “분단이 고착화되고, 이데올로기 투쟁이 있고, 진영이 갈라지고, 그걸 이용해 권력을 잡는 사람들이 있고, 그로 인해 삶이 위축되는 측면과 모순이 여전히 존재한다”며 “인류는 타인을 지배하려는 속성과 그 힘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자유의지를 모두 갖고 있는데, 그 둘은 언제나 투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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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명관 ‘아코디언’. [창비] |
소설은 깡통 앞에 엎드린 소년 ‘동이’의 시선으로 펼쳐진다. 피난길에 고아가 된 동이는 앵벌이 움막에 떠밀려가 폭력 속에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 속에서 ‘연이’, ‘거북이’, ‘깜상’, ‘미키’ 등 다른 아이들을 만나며 함께 살아남기 위해 분투한다.
우연히 발견한 아코디언은 동이의 운명을 흔든다. 소년은 단 한 번 들은 노래도 손끝으로 되살려내는 재능을 발견하고 거리에서 아이들과 합주한다. 슬픈 하루에 위안이 되었던 음악은 이내 어른들의 착취 대상이 되지만, 후반부에 달해서는 다시 누군가의 숨을 이어주는 목소리가 된다.
“‘아코디언’ 하면 거리의 악기라는 이미지가 있다. 소리는 아련한 슬픔이 있으면서도 매우 아름답다. 아코디언은 동이가 바라는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살아남으려는 생의 의지”라고 작가는 설명했다.
‘럭키 서울’, ‘목포의 눈물’, ‘홍콩 아가씨’ 등 당시 유행가들은 민중의 삶을 드러내는 장치로 등장한다. 작가의 말에서 “그 시대 노래에 바치는 헌사”라고 언급되기도 했다.
소설에서 음악은 심장 박동으로 자리한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작가는 “음악은 죽음의 반대말이라는 문장도 썼다”고 부연했다.
리얼리즘 문학이 쇠락하고 내면성의 문학이 강화한 시대에 70년 전의 시대, 결락이 있는 하층민의 삶을 리얼하게 다룬 이번 소설은 작가로서도 모험일 수 있다. 하지만 천 작가는 이번에도 과감하게 선택하고, 다르게 풀어냈다.
그는 “어릴 때는 공감의 문화가 있었고, 서민의 이야기가 많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선망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재벌 이야기가 나온다”며 “하위 주체들에 대해선 다루는 데가 없다. 오히려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할 존재처럼 혐오하는 현상이 심해져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결국 공감하고 함께 이겨내지 않으면 방법이 없는데 서로 증오만 키우고 점점 고립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천 작가는 “나는 현실의 부조리를 계속 쓸 수밖에 없는 작가다. 불평등과 모순, 고립, 결핍에 늘 마음이 가 있다. 공감은 ‘문학이 할 수 있는바’가 아닐까”라며 “이야기의 결과 마음들을 같이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커상의 영향에 대해 작가는 “인생에서 그냥 재밌는 해프닝이었다. 시상식에 가기 전부터 못 받을 걸 알았다”고 웃어넘기며 “50대에 10년간 더 영화를 해 보고, 그 후 나머지는 소설을 쓰면서 보내지 않을까 생각했다.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