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티에 카퓌송 “블랙핑크 협업, 문화적 충격이자 경이” [인터뷰]

블랙핑크에서 베토벤까지…
경계를 허무는 궁극의 커넥터
12일 클래시컬 브릿지 페스티벌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 [클래시컬브릿지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첼리스트가 악기를 품에 안는 행위는 숭고한 포옹을 닮았다. 활이 현에 닿아 첫 음을 밀어 올리는 순간, 객석은 숨을 죽이고 연주자의 몸과 목재 악기가 자아내는 성스러운 밀착을 목도한다. 세계 음악계가 사랑하는 첼리스트 중 한 명인 고티에 카퓌송(Gautier Capuon)에게 첼로는 단순한 악기가 아니다. 그에게 ‘첼로’는 인간의 성대와 가장 긴밀하게 공명하는 매개이자, 자아와 타자의 경계가 무너지는 유일무이한 영토다.

전 세계를 ‘연주 여행’하며 ‘노마드(Nomad)’의 삶을 살고 있는 그가 다시 한번 한국을 찾는다. 이번 여정은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거장 미하일 플레트네프, 라흐마니노프 인터내셔널 오케스트라(RIO)와의 협연으로 꾸며진다. 카퓌송은 베토벤의 ‘삼중 협주곡’을 통해 한국 관객과 만난다.

내한을 앞두고 나눈 서면 인터뷰에서 카퓌송은 플레트네프와의 만남을 두고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미 여러 차례 호흡을 맞춘 바 있는 대가이지만, 거장이 이끄는 포디움 아래서 베토벤의 유일한 첼로 협주곡 시편을 연주한다는 것은 연주자에게 언제나 새로운 서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그와 함께 연주하며 깊은 예술적 조도를 느꼈어요. 이번에는 그가 지휘하는 가운데 제가 깊이 경애하는 베토벤 삼중 협주곡을 연주하게 되어 기대가 남다릅니다. 거장들과 음악적 도원결의를 맺는 매 순간은 제 삶의 가장 눈부신 하이라이트가 되곤 하죠.”

특히 이번 공연은 플레트네프가 2023년 창단한 신생 단체인 ‘라흐마니노프 국제 오케스트라(RIO)’의 첫 협업이라는 점에서 클래식 음악계의 관심도 모아진다. 세계적인 명문 악단들과 수없이 협연해 온 그에게도 아직 한 번도 호흡을 맞춰보지 않은 단체와의 투어는 낯설고도 매혹적인 모험이다.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 [클래시컬브릿지 제공]

그는 “단 한 번도 함께 연주해 본 적이 없는 미지의 여정이기에 외려 기분 좋은 전율이 일어난다”며 “서로의 예술적 결을 탐색하고 호흡을 맞춰갈 첫 협업의 과정이 무척이나 고대된다”고 했다. 특히 “앙상블이란 서로를 알아가는 대화와 같기에, 그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하게 될지 설렘을 감출 수 없다”고 했다.

베토벤 ‘삼중 협주곡’은 지난 2월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도 올린 적이 있는 곡이다. 당시엔 그의 친형인 바이올리니스트 르노 카퓌송,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함께 이 곡을 선보였다. 베토벤의 다른 첼로 소나타나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삼중 협주곡이 첼리스트에게 갖는 의미는 독보적이다.

“베토벤 삼중 협주곡은 첼리스트들에게 지극히 특별한 궤적을 지녀요. 사실상 베토벤이 남긴 유일한 첼로 협주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이 곡에서 첼로는 서사의 중심축을 이끌며 온전히 독주자로서 무대 위에 노출됩니다. 기술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연주자의 한계를 시험하는 도전적인 수작(秀作)이지요.”

클래식 레퍼토리 중 유독 ‘첼로 협주곡’의 가뭄을 겪는 연주자들에게 베토벤이 남긴 유산은 더없이 귀중한 자산이다. 카퓌송은 “여러 모험을 펼칠 수 있는 이 곡을 정말 사랑한다”며, 삼중주가 만들어낼 팽팽한 긴장감과 하모니가 이번 내한 무대의 백미라고 했다. 이 곡은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로자코비치, 피아니스트 엘렌 메르시에와 함께 연주한다.

오랜 시간 친구이자 연인처럼 함게 해온 첼로는 그에게 악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카퓌송은 “첼로는 인간의 성대와 가장 닮아 있는 악기이자 동시에 극도로 관능적인 악기”라고 했다.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 [클래시컬브릿지 제공]

“아마도 연주자와 악기가 물리적으로 태아처럼 밀착되는 유일한 존재가 아닐까 싶어요. 첼리스트가 온몸으로 악기를 품어 안고 활을 켤 때, 무대 위에서 두 개의 개체는 휘발되고 오직 하나의 유기적인 존재만 남게 됩니다. 그 어떤 악기보다 타자(他者)인 악기와 자아(自我)가 가장 긴밀하게 공명하는 경이로움을 선사하죠.”

이토록 내밀한 악기를 다루지만, 그가 음악을 세상에 전파하는 방식만큼은 개방적이다. 카퓌송은 클래식을 대중에게 알리고 여러 세대를 잇는 페스티벌과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정형화된 공연장이나 정통 투어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관객과 접점을 넓히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더 많은 대중에게 음악이라는 시공간을 개방하는 일에 깊은 열정과 책임감을 느낀다”며 “청중과의 정서적 교감,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유대감의 서사를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종잡을 수 없이 빠르게 변하고 파편화되는 현대 사회일수록 우리는 인간적인 연대와 온기를 사수해야 한다”며 “음악은 그 단절을 극복케 하는 궁극의 예술 층위이며, 이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마땅히 수행해야 할 숭고한 책무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이러한 철학은 프로그램 큐레이션에서도 나타난다. 한 시즌 동안 대략 15개의 서로 다른 협주곡과 수많은 실내악 프로그램을 소화하는 극한의 스케줄 속에서도 그는 ‘동시대 작곡가들의 신작 위촉’을 중요한 과업으로 여긴다.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 [클래시컬브릿지 제공]

카퓌송은 “살아있는 작곡가와 텍스트를 함께 해석하고 음악적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은 연주자에게 허락된 최고의 특권이자 풍요로운 자양분”이라며 “시대의 호흡을 담은 우리 시대의 음악을 무대에 올리는 것은 음악가의 당위적 의무”라고 강조한다.

카퓌송의 예술적 외연 확장을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은 K-팝과의 협업이다. 지난 2023년 프랑스 자선 갈라(Le Gala des Pices Jaunes) 무대에서 세계적인 K-팝 그룹 블랙핑크와 함께 펼친 협연은 클래식과 팝 장르 모두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문법이 전혀 다른 장르와의 통섭(統涉)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블랙핑크와의 작업은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자 경이로운 경험이었어요. 제겐 완전히 새로운 미학적 작업 방식이었죠. 이종(異種)의 예술가들이 만나 언어와 장르의 빗장을 풀고 하나의 새로운 메타포를 만들어내는 시도는 지극히 독창적입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서로에게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러한 조우를 시대의 축복이자 행운으로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예술의 외연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지속해야 합니다.”

한국을 향한 호감도 상당하다. 그는 “한국은 진심으로 사랑하는 나라”라고 말한다. “지독하리만치 열정적이며, 음악에 대한 깊고 탁월한 감식안과 이해도”를 지닌 관객들의 존재는 “연주자로서 한국의 객석을 사랑하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강조한다.

“무대 위에서 뿜어내는 연주자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흡수해 더 큰 감동으로 돌려주는 객석이 바로 한국이에요. 한국의 뜨거운 공기, 깊은 밤을 채울 베토벤의 선율 속에서 조만간 반갑게 인사 나누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