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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들 [로이터] |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최근 3주 동안 약 70척의 상선이 자동식별장치(AIS)를 끈채 미군 안내를 받아 해협을 통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익명의 미국 관리들을 인용해 미 중부사령부(CENTCOM)가 최근 수주간 페르시아만을 오가는 일부 상선의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지원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군은 직접 함정을 동원해 호위하지는 않았지만 선박들과 지속적으로 교신하며 안전한 항로를 안내했다. 이 과정에서 약 70척의 선박이 페르시아만 안팎을 오가는 데 성공했다.
대다수 선박은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통제하고 있는 이란의 탐지를 피하기 위해 AIS와 조명을 모두 끈 채 운항하는 이른바 ‘암흑 항해’ 방식으로 해협을 통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AIS를 끄고 항해할 경우 다른 선박과의 위치 확인이 어려워 레이더에 의존해야 하는 만큼 충돌 위험이 높아지고 숙련된 항해 기술이 필요하다.
미국 관리들은 구체적인 항로와 선박 종류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일부 선박은 이란 해안선과 거리를 둔 채 이동했다고 설명했다.
선박 분석가들은 미군의 안내를 받은 상선들이 이란 해안 대신 오만 해안에 가까운 항로를 이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측은 이란의 허가 없이 이란 해안 인근을 지나게 될 경우 드론이나 미사일 공격을 받을 위험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 중부사령부의 팀 호킨스 대변인은 NYT에 “미군이 직접 호위를 제공하고 있지는 않지만 호르무즈 해협을 자유롭고 안전하게 통과하려는 상선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미군 지원은 이란의 위협 속에서도 제한적이나마 해협 통항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통과 선박 수는 하루 평균 3척에 불과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난 2월 말 이란을 공격하기 전 하루 100척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이용했던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정상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다.
실제로 해운업계에서는 전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해상 운송량의 약 20%가 지나는 핵심 에너지 수송로다. 이란의 봉쇄 이후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미국과 국제사회는 해협 정상화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과 이란 간 종전 협상이 막바지에 접어든 것으로 알려졌으나 해협 통제권을 둘러싼 양측 입장 차는 여전히 크다.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이 국제 해상교통로인 만큼 전쟁 이전처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이란은 전쟁을 계기로 해협에 대한 영향력을 제도화하려 하고 있다. 이란은 최근 설립한 페르시아만해협청(PGSA)을 통해 선박당 최대 200만달러(약 30억원)의 통행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중동 지역에서는 이미 이란이 사실상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확보했다는 인식도 확산하고 있다.
이에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은 지난 27일 PGSA를 제재 명단에 올렸다. 이란이 일방적으로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를 부과하며 해협 관리 권한을 행사하려는 시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미국과 이란이 해협 재개방에 합의하더라도 통항량이 전쟁 이전 수준으로 빠르게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홍해에서 후티 반군의 공격으로 감소한 선박 통행량이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것처럼 선주들이 전쟁 재발 가능성과 이란의 통제 강화, 미국 제재 위험 등을 고려해 운항을 재개하는 데 신중한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서방 선사들은 향후 호르무즈 해협 이용 과정에서 이란 혁명수비대 또는 관련 기관과 협력해야 할 경우 미국 제재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안고 있다.
이 때문에 해운업계에서는 향후 호르무즈 해협이 전쟁 이전과 같은 ‘자유 항행 수로’가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접근성이 달라지는 새로운 형태의 해상 요충지로 변모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