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서 떼어낸 조직이 3년간 살았다… 맛 좋은 해삼, 영원히 죽지 않을까[후암동 논문 연구소]

해삼.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장윤우 기자] 잘려 나간 조직이 죽지 않았다. 숙주도 없고 특수 배양액도 없이, 바닷물만 흘려보내는 수조 안에서 3년 넘게 살아 있었다. 스스로 상처를 닫고, 면역 반응을 유지하고, 주변 물에서 영양분을 흡수했다.

최근 공개된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제12권 제22호에 따르면, 캐나다 메모리얼대 해양과학과 사라 잡슨 박사 연구팀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 대상은 북대서양 한류 해역에 사는 해삼의 일종이다. 보통 해삼은 우리에게 친숙한 횟감이나 다양한 요리의 고급 식재료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발견으로 과학계에서는 새로운 주목을 받게 됐다.

연구팀이 이 해삼의 발 역할을 하는 돌기, 발이 무리를 지어 붙어 있는 띠 조직, 입 주변 촉수를 각각 잘라낸 뒤 관찰했다. 확인해 본 결과, 그 어떤 조직도 썩지 않았다.

복잡한 조직이 자연환경에서 이렇게 오래 살아남은 기록은 이전에는 전혀 없었다. 1950년대 발견된 ‘헬라 세포’나 줄기세포처럼 단일 세포가 실험실에서 무한 증식한 사례는 있었다.

그러나 피부·신경·근육처럼 서로 다른 세포 여럿이 뒤섞인 복합 조직이 아무 처리 없이 수조 안에서 수년을 버틴 것은 처음이다.

연구팀은 “조직의 생존과 죽음에 대한 생물학계의 기본 상식을 뒤흔드는 사건”이라고 밝혔다.

절단 6일 만에 스스로 봉합… 영양분도 빨아들여

해삼을 잘라낸 뒤, 죽은 세포을 파랗게 염색해 추적한 사진이다. 처음(A)에는 파란색 오염 부위가 가득하지만, 6일(C)이 지나자 깨끗해지는 자가 치유 과정을 보여준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제12권 제22호]

절제 직후 6일간의 일어난 변화는 이 연구의 출발점이다. 해삼 발 돌기를 자른 직후 절단면에는 조직이 손상되고 내부 구조가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이틀 만에 손상 조직이 떨어져 나가고, 6일째에는 절단면이 완전히 봉합됐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세포가 생겨나는 ‘세포 분열’과 수명을 다한 세포가 스스로 죽는 ‘세포 자멸’ 작용이 동시에 활발해졌다. 두 작용은 하루(24시간) 주기로 번갈아 가며 강해졌는데, 주로 상처가 난 절단면 근처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났다.

쉽게 말해 상한 세포는 스스로 없어지고, 그 빈자리를 새로운 세포가 채우는 구조다. 이와 함께 해삼의 면역세포들은 잘려 나간 직후 내부 깊은 곳에서 출발해 이틀 만에 상처 부위로 이동했다. 외부 세균을 막기 위한 방어벽을 친 것이다.

스스로 영양분을 흡수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연구팀은 추적이 가능하도록 특수 처리를 한 영양분(아미노산 16종)을 바닷물에 넣었다. 잘라낸 첫날에는 영양분을 흡수하는 양이 보통 조직과 차이가 없었지만, 6일째가 되자 흡수량이 3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살아있었다

(A~C: 0시간~6일) 해삼의 발을 잘라낸 직후(A)에는 상처 부위가 붉게 드러나 있지만, 3일(B)이 지나면서 상처가 닫히기 시작해 6일(C)째가 되자 상처가 완전히 아물고 치유됐다.
(D: 약 4개월 뒤) 122일이 지나자 쥐색이나 주황색이었던 발의 전체적인 색이 점점 하얗거나 분홍빛으로 옅어졌다.
(E: 1년 뒤) 1년(365일)이 지나자 흩어져 있던 빨간 색소 세포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를 이뤘다. 그리고 그 주변은 투명한 조직으로 감싸졌다.
[F~G: 2년~2년 반 뒤) 2년(730일)이 지나자 빨간 색소 덩어리가 정중앙에 자리 잡고 주변 조직은 더 투명해졌다. 이 상태는 2년 반(912일)이 지나도 거의 그대로 유지됐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제12권 제22호]

6일이 지난 후에도 조직은 끊임없이 변화했다. 한두 달(30~60일)이 지나자 잘린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상처가 아물었다.

1년이 지나자 붉은 색소 세포들이 안쪽으로 모여들면서 겉면이 투명해졌다. 근육 조직은 면역세포에 의해 자연스럽게 흡수되었고, 세포들을 연결해 주는 조직이 그 내부를 채워나갔다.

2년째에는 단백질 섬유들이 단단한 다발 구조를 만들어 둥근 형태를 유지했다.

약 2년 반(912일)이 지난 시점에도 조직은 처음과 거의 같은 형태를 유지했다. 특히 입 주변의 촉수 조직은 건드리자 반응하며 움직이기까지 했다. 신경계가 여전히 살아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연구팀은 비교를 위해 불가사리, 성게, 거미불가사리 등으로도 똑같이 실험했다. 그러나 다른 생물들의 조직은 가장 오래 버틴 것이 104일에 불과했다. 오직 이 해삼만이 가진 고유한 능력이라는 것이다.

왜 이 해삼만 가능할까?

연구팀은 이 해삼이 몸속에서 만들어내는 특정 화학 물질에 주목했다.

세포를 녹이거나 독성을 발휘하는 기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성분인데, 이 물질 덕분에 몸체 없이도 세균 감염과 표면 오염을 스스로 막아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구팀은 이번 발견이 ‘신약 개발’과 ‘질병 연구’에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이 해삼은 보기와 다르게 유전적으로 인간과 같은 척추동물과 꽤 가까운 계통에 속한다. 덕분에 복잡한 동물 실험을 거치지 않고도 인간과 유사한 단백질·면역 반응을 연구할 수 있는 창구가 생긴 셈이다.

다만 연구팀은 이번 연구는 이 조직들이 실제로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 집중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원리로 이런 일이 가능한지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참고논문

DOI : 10.1126/sciadv.aeb1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