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득점 전략? 일단 진단서 떼오세요” 美 입시판 뒤흔든 ‘추가 시간 확보’ 편법 [나우,어스]

ADHD·과민성대장증후군 등 진단 받고 시험 시간 추가 확보
2000~1만달러까지 “돈만 내면 진단서 받아”
美 부촌서 번지는 ‘입시 편법’ 논란

미국 아이비리그 명문대 중 하나인 예일대 캠퍼스 전경.[로이터]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미국 대학입시 시험인 SAT와 ACT에서 ‘추가 시험시간’ 제도를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원래는 학습장애나 건강 문제가 있는 학생들을 배려하기 위한 제도였지만, 최근에는 부유층을 중심으로 이를 입시 전략처럼 활용되고 있다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1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일부 부촌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SAT·ACT 시험시간을 더 받기 위해 각종 진단서를 끊는 일이 사실상 ‘입시 컨설팅 코스’처럼 번지고 있다.

뉴욕 롱아일랜드 제리코고등학교에 자녀를 보낸 피부과 의사 아다르시 비자이 머드길은 딸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같은 학년 학생 최소 60명이 ACT 시험에서 추가 시간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모두가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며 “결국 제도의 허점을 활용할 줄 아는 부모들이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사실상 부정행위”라며 “정상적으로 시험을 보는 학생들이 오히려 불리해진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불안장애, 우울증, 강박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이 있으면 SAT·ACT 시험에서 시간을 1.5배 또는 2배까지 더 받을 수 있다. 별도 시험실 제공, 무제한 휴식, 자유로운 화장실 이용 허가도 가능하다. 심한 불안장애가 있으면 ACT 시험을 나흘에 걸쳐 치르기도 한다.

문제는 이 제도가 최근 들어 ‘돈 있는 집안의 입시 무기’처럼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부모들은 수천~수만달러를 들여 신경심리학자 진단을 받게 하거나, 과민성대장증후군이나 염증성 장질환 진단을 받게 해 시험 중 무제한으로 화장실 이용 허가를 받는 사례까지 등장했다고 전했다.

또 평소 학교 시험에서 추가 시간을 받도록 한 뒤 교사들에게 “불안 증세가 있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받아 제출하는 방식도 쓰인다고 한다.

맨해튼 사립학교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좋은 위장병 전문의를 찾는 게 SAT 전략”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미국 대입을 위한 시험인 SAT를 대비해 공부하는 수험생의 모습. [게티이미지]

시험기관 측은 “돈만 있다고 추가시간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ACT 측은 신경심리검사 비용이 2000달러에서 많게는 1만달러 이상 들 수 있지만, 시험기관은 단순 진단서만 보는 게 아니라 학교의 학습지원 이력과 맞춤형 교육계획 등을 함께 검토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추가시간 제공 비율은 빠르게 늘고 있다. ACT에 따르면 특별 편의를 제공받은 응시자 비율은 지난해 7%로, 2013년(4.1%)보다 크게 증가했다. SAT를 주관하는 칼리지보드 역시 지난해 응시자의 약 6.7%가 추가시간 혜택을 받았다고 밝혔다. 10년 전만 해도 2% 수준이었다.

뉴저지의 입시컨설턴트 로리 코프 와인가튼은 “2년 전만 해도 학부모들이 추가시간 문제를 거의 묻지 않았다”며 “지금은 설명회만 가면 관련 질문이 쏟아진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는 공정성을 위한 제도였는데 지금은 돈과 정보 접근성이 좋은 사람들에게 더 유리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애틀랜타의 임상심리학자 스콧 해밀턴은 최근 한 고등학생을 평가한 뒤 SAT 추가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자, 부모가 화를 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고 설명했는데 부모가 화를 냈다”며 “SAT 시험을 끝내지 못하는 것 자체는 장애가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