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로 이사를 오는 날까지 자신이 마주하는
모든 사람에게 불평과 분노를 쏟아내는
엄마 곁에 도저히 머무를 수 없었다.
![]() |
| 일러스트=김효민·챗GPT |
나는 그저 달리고 있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분노에 차올라 무작정 달렸을 뿐이다. 비탈진 흙길에서 뛰려니 숨이 차오르고 열이 치솟았다. 그래도 멈추고 싶지 않았다. 숨이 끊어질 듯한 지경일 때 차라리 끊어지기를 바랐다. 커다란 버드나무 너머로 호수가 보였다. 호반에 조성된 산책로에서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달려갔다. 갑작스레 나타난 사람들 틈에 휩싸여 몸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 달렸다. 다들 아무 말 없이 앞만 보며 달리고 있기에 누구에게도 왜 달리느냐고 물을 수 없었다.
인파에 섞여 10분쯤 달리고 나니 다들 한 자리에 줄지어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들 사이에 서 있자 누군가 내 손등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이게 무엇이냐고 물으니 인증 도장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니까 이것을 왜 찍어주느냐고 다시 묻자 달리기 대회 완주 경품 수령을 위해 도장을 꼭 받아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그제야 나는 오늘 이곳 호반에서 달리기 대회를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더 이상 뛰고 싶지 않았고, 호수를 바라보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었다. 하지만 많은 인파 속에서 홀로 멈춰 설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냥 계속 달렸다.
최근 러닝 붐이 일며 많은 이들이 달리기를 즐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인구 8만 명도 안 되는 도시 속초에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얼마나 달렸을까? 숨이 차오르며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데, 다들 아주 편안한 자세로 일정하게 달려 나갔다. 나는 왜 편안하지 않을까? 나만 왜 힘들고, 나만 왜 괴로울까? 생각해봤자 답이 떠오르지 않으므로 나는 그저 달렸다. 계속 숨이 차고 열이 올랐다. 더 이상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왜 뛰어왔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졌다가 까맣게 덮어씌워지는 듯했다. 심장이 조여오고 다리에 힘이 풀릴 듯한 순간에야 나는 발구르기를 멈추고 섰다. 소금기 서린 바닷물 냄새에 주변을 둘러보니 동쪽으로 바다가 보였다.
나는 엄마에게 화가 나서 뛰쳐나온 길이었다. 속초로 이사를 오는 날까지 자신이 마주하는 모든 사람에게 불평과 분노를 쏟아내는 엄마 곁에 도저히 머무를 수 없었다. 어쩌면 이모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다를까? 한국계 캐나다인과 결혼해 일찌감치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이모하고는 내가 열두 살일 때부터 함께 살았다. 당시 아버지의 사업이 호황을 누리며 엄마는 나를 캐나다로 유학 보내고 이모와 함께 살도록 만들었다. 아이가 없던 이모 부부는 꺼리는 기색 하나 없이 나를 받아주었다. 내가 처음 캐나다에 갔을 적 아직 20대였던 이모하고는 유난히도 죽이 잘 맞았다. 그래서 자매와 같은 사이로 지내며 무려 12년간 함께 살았다.
대학에 진학하고 졸업을 앞둔 시점에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통보받아 그만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마지막 학기에는 등록금도 생활비도 충당할 수 없을 지경이라 졸업마저 불투명해진 상황이었다. 그런 나를 이모 부부가 흔쾌히 도와주어 겨우 졸업할 수 있었다. 나는 당연히 그런 이모와 함께 살며 캐나다에서 취직하고 싶었다. 그러나 취업이 되기까지 계속 이모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한국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부모님 댁에서는 생활비 한 푼 안 내고 함께 사는 게 가능한데, 이모 부부하고는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게 결국 ‘가족’이라는 굴레의 축복이자 비극인가 싶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서초동에 있던 부모님 댁으로 들어갔다가 한 달도 살지 못하고 곧장 속초로 이사하게 됐다. 아버지가 서울 집을 팔고 자기 고향이자 관광지인 속초에서 자영업이라도 하면서 먹고 살 계획을 세운 까닭이었다. 나 또한 캐나다에서 관광경영학을 공부했으니 속초에서 대형 호텔 취직을 노려보고 싶었다. 그마저도 안 되면 부모님을 도와 사업체를 꾸려가는 게 나을 거라는 판단도 있었다.
포장 이사 전문 업체에 이삿짐을 의뢰했기에 이삿날 내가 마땅히 할 일은 없었다. 인부들 틈에서 일도 돕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나하고 엄마를 보다 못한 업체 실장이 어디 카페라도 가 있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말할 정도였다. 엄마와 나는 결국 프랜차이즈 카페로 가서 커피와 스콘을 주문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엄마는 타고난 성격이 그런지, 아니면 나와 떨어져 살아온 세월 동안 성격이 드세어진 것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많았다. 이삿짐 업체를 알아보고 견적을 받을 적부터 업체 측 대표에게 온갖 짜증을 내고 성질을 부리기 일쑤라 매번 싸움이 크게 번졌다. 다들 엄마의 성격에 지쳐 다른 업체를 알아보라고 말했고, 겨우 한 군데 업체와 계약해 이사를 진행했다. 그런데도 엄마는 타인을 드러내놓고 무시하고 하인 부리듯 대하며 성질을 냈고, 나는 엄마를 볼 때마다 치솟는 분노를 어찌할 수 없었다.
이삿짐 정리와 부동산 계약까지 마치고 정오가 넘어 속초로 출발했다. 차 안에서도 계속 배가 고프다며 신경질을 부리던 엄마가 속초에 도착하자마자 밥을 먹어야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어쩔 수 없이 아버지만 이사할 집으로 가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하고, 엄마와 나는 집 근처 상가 앞에 내려 김밥집을 찾아갔다. 엄마는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김밥이 왜 이렇게 비싸냐며 성질을 부렸다. 함께 먹을 김밥을 주문하면서 아빠가 먹을 김밥까지 포장해가야 하니 국물과 반찬까지 싹 다 싸달라고 요구했다. 식당 주인이 국물은 따로 없다고 하자 엄마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손님이 달라면 줘야지 어디서 없다는 소리를 하느냐며 화를 냈다. 식당 주인은 밥통에서 눌은밥을 덜어 냄비에 넣고 끓이며 누룽지 국물을 싸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엄마가 의기양양해졌다. 화내고 소리 질러서 국물을 받아낸 자신을 칭찬하기까지 했다.
주인은 포장 주문까지 받은 뒤 김밥을 말기 시작했다. 서빙이 늦어지자 엄마가 또다시 우리 먹을 김밥부터 내놓으라며 소리를 질렀다. 주인이 지금 하고 있다고 대답하며 부랴부랴 김밥을 내오자, 국물과 반찬을 같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 소리 질렀다. 주인이 지금 준비하려 했다고 대답하는데도 엄마는 빨리 가져오라고 성화였다. 엄마가 요구한 누룽지 국물과 함께 단무지, 김치가 반찬으로 나왔다. 엄마는 순식간에 김밥 한 줄을 입 속으로 털어 넣고 내가 주문한 김밥까지 절반이나 더 먹어 치웠다. 그러면서도 단무지와 김치 한 점 나에게 양보하지 않고 모조리 혼자 먹었다.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이런 순간을 그러려니 하며 흘려보내지 못하고 매번 치솟는 화를 주체 못하는 나 또한 엄마와 다름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에 자괴감이 들었다.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 주인이 포장해 준 김밥을 엄마의 손에 들려주고 먼저 집으로 돌아가 아빠에게 전해주라고 권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봤자 방해만 될 테니 근처에서 산책이나 하다가 들어가겠다고 하자 엄마가 뒤돌아 가게에서 나갔다. 내가 계산대로 가서 신용카드를 꺼내니 식당 주인이 나를 보며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러고는 나에게 “참 힘드시겠어요”라고 말했다. 엄마가 소리 지르며 성질을 쏟아낸 대상은 내가 아니라 식당 주인이었다. 엄마의 성질을 받아낸 당사자가 오히려 나에게 힘들겠다고 말하니 눈물이 와락 쏟아질 뻔했다. 오늘 나를 처음 본 사람도 내가 지금 얼마나 힘든지, 무엇 때문에 화가 나는지 잘 아는데, 가족으로 엮인 엄마는 조금도 알지 못하는 현실이 갑갑하게 조여왔다. 이대로 엄마와 함께 속초에서 살아갈 나날이 걱정이었다. 앞으로 어떠한 현실이 펼쳐질지 불 보듯 훤해서 더욱 숨이 막혔다.
식당에서 나와 새로 이사한 집 앞 산책로를 찾아 무작정 뛰었다. 햇볕 좋은 주말이면 이모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온타리오 호수 주변을 돌던 기억이 떠올랐다. 호수라기보다는 바다에 가까워 보이던 온타리오 수변 잔디밭에서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결혼하는 커플을 보며 나도 언젠가 그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이모 부부처럼 살아가고 싶었다. 내가 이런 허황한 꿈을 이야기하면 이모는 당장이라도 결혼식을 올려줄 기세로 자신이 아는 케이터링 업체와 드레스 업체를 언급하며 자기가 다 해줄 거라고 큰소리쳤다. 이모도 나와 같이 드레스를 입은 채 들러리를 서고 축가를 부르고 춤을 출 거라며 기뻐하던 모습이 눈앞에 선연히 그려졌다.
이곳에는 이모도 없고 자전거도 없으니 앞으로 달리기라도 하면서 현재의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 누군가 나에게 생수병을 내밀었다. 돌아보니 어느덧 달리기 대회를 시작한 지점에 다다라 있었다. 결승선에 몰려 있던 사람들이 손뼉 치며 나를 환영했다. 달리기가 뭐라고 다들 이렇게 부둥켜안고 기뻐하며 축하하는 것일까? 어리둥절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나는 마라톤 경주에서 완주한 사람이라도 된 양 두 팔을 치켜들고 환호하며 사람들과 인사 나누고 기쁨을 만끽했다. 이래서 다들 달리기를 하는 걸까?
앞으로도 이곳 영랑호에서 달려보고 싶었다. 엄마에게 화가 나건 이모가 그립건 내가 계속 달리다 보면 현재의 시간을 어떻게든 흘려보낼 수 있겠지. 그때 나의 분노도 그리움도 동쪽 바다로 떠내려갈까? 울산바위와 동해가 내다보이는 속초에서, 나는 새로운 호흡으로 다시 달려 나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