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포용금융 유인책 설계해야 ‘관치금융’ 논란 해소”

전문가 “실상환력 평가 ‘금융’ 전환” 제안
정보 기반, 중신용자·소상공인 접근 완화
담보 대출기관서 리스크 관리 파트너로
인센티브중심 구조로 혁신모델 이끌어야


서울 시내의 한 은행 대출 창구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헤럴드 DB]



이재명 정부 들어 포용금융이 금융권 최대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전문가는 금융기관이 담보 위주의 관행에서 벗어나 차주의 실질적인 상환 능력을 평가하는 ‘정보 기반 금융’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정책의 방향성도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분담금 출연 등 압박 일변도의 정책은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해칠뿐더러, 지속성도 떨어져 인센티브와 성과평가를 결합하는 ‘동기 부여’ 방식으로 포용금융을 끌고 가야 한다는 의견이다.

▶공급자 중심의 금융구조, ‘도넛 시장’ 만들어…금융소비자 중심으로 바꿔야=그간 금융회사들은 상대적으로 리스크 평가가 쉬운 담보대출에 집중해온 반면, 담보가 없는 취약 차주에 대해서는 금융 공급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로 인해 자산이 있는 사람은 더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었지만, 자산이 부족한 이들은 높은 금리를 부담하거나 금융 접근 자체가 어려웠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현 금융시장을 “절벽으로 설계된 도넛 시장”이라고 평가한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다.

실제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 2월말 기준 예금 취급 기관의 전체 가계대출 잔액은 1331조5829억원으로, 이 중 주택담보대출 비중은 68.5%로 집계됐다. 은행으로 범위를 좁히면 76.4%로 상승한다.

이에 차주의 실질적인 상환 능력과 회복 가능성에 기반해 금융을 공급하는 것이 금융소비자 중심의 패러다임 변화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자산 중심에서 정보 중심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포용금융의 핵심”이라며 “금융소비자에게 데이터 주권을 쥐여주면 금융회사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산이 많은 사람은 저렴하게 돈을 빌릴 수 있지만, 그러지 않은 사람은 높은 금리로 돈을 빌리게 되고 결과적으로 더 어려워진다”며 “이러한 패러다임을 바꿔보자는 것이 포용금융”이라고 했다.

김용기 생산과포용금융연구회장은 “담보와 금융이력이 충분한 차주는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구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은 이들은 그들이 실제로 갖고 있는 리스크보다도 더 밀려나고 있다”며 “포용금융은 위험을 더 정확하게 구분하는 금융 본연의 역량을 키우는 일”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전환 등 기술 발전 역시 이런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금융당국은 8월부터 소상공인 특화 신용평가모형(SCB)을 도입해 매출, 업종, 상권 등 비금융 정보까지 신용평가에 반영할 계획이다. 제도가 안착하면 기존 신용등급이 다소 낮더라도 성장 가능성이 높은 차주는 보다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패러다임 전환에 성공할 경우 금융회사는 ‘리스크 평가’라는 본질적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강 교수는 “은행의 역할은 ‘담보 대출’자에서 ‘데이터 기반의 리스크 관리 파트너’로 진화할 수 있다”며 “금융소외계층과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한편,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도 “포용금융 정책이 제대로 설계된다면 은행은 단순한 위험을 선별하고 관리하는 금융중개기관으로 바뀔 것”이라며 “자영업자, 중소기업, 중신용자, 지역기반 차주에 대해 더 세밀한 정보화 사후관리 체계를 갖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포용금융은 본질적으로 금융회사의 경쟁력을 높이는 정책”이라고 했다.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엔 ‘부정적’…“정부는 규칙 설계하는 주체”=앞으로 금융회사는 고신용·담보 중심 영업에 머물 것이 아니라 중신용자의 위험을 평가하려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특히 김석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공적 역할의 형태에 대해서는 금융회사의 크기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며 “중소 회사는 고객을 직접 대면하고, 대형사는 분담금 등 간접적으로 기여해가는 것이 각 금융회사의 전문성을 살리면서도 효율적인 포용금융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만 정부가 직접 개입보다는 금융회사들이 자발적으로 포용금융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인을 설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조언한다. 인센티브 중심 구조가 마련되면 금융회사별로 다양한 혁신 모델이 등장할 수 있고, ‘관치금융’ 논란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회장은 “정부의 역할은 직접 대출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설계하는 데 있다”며 “포용금융은 규제만으로도 안 되고, 출연금으로도 안 되며 규제, 인센티브, 공공 협력, 경쟁 촉진이 함께 작동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령 일정한 요건을 충족할 경우 정부가 보증 비용이나 자본 부담 완화, 사후 관리 비용 지원에 나서는 것이다. 김 회장은 “성과 평가 시에도 단순 취급액이 아니라 금리 절감, 회복 지원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며 “정부는 압박을 가하는 주체가 아니라, 규칙을 설계하는 주체”라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상생금융 분담금 출연 등은 단기적으로는 유효하겠지만, 금융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시장에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데이터 독점을 해결하는 역할에 집중해, 금융소비자가 데이터 주권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은 “포용금융 실천 현황을 공시하고 우수 회사에는 감독·검사상의 혜택을 주는 방식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다”며 “일정 범위를 넘어선 영역은 국가의 ‘복지’ 체계가 담당해야 한다”고 했다.

금융당국은 이달 중 전반적인 포용금융 정책을 논의하기 위해 각계가 참여한 ‘포용금융 추진단’을 띄울 예정이다. 금융당국, 금융권뿐만 아니라 산업계와 시민단체가 논의 주체로 참여한다. 김 실장이 지적한 신용평가시스템부터 부동산 대출에 집중했던 서민금융기관의 대출 행태 개선 등이 논의 테이블에 오를 전망이다. 서상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