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제도 안 듣는 전립선암, 치매약이 치료제?…“한 달만에 병변 72% 줄어들어”[후암동 논문 연구소]

전립선암 환자에 치매약 투여 후 병변 52㎜→14㎜로 감소
“변신의 첫 단추” HOXD11 유전자 첫 규명
쥐 실험서도 종양 억제 확인…FDA 1465만건 분석에서도 같은 결과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장윤우 기자] 치매 치료 목적으로 개발된 약물이 전립선암 치료에 유효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공개된 국제학술지 셀 리포츠(Cell Reports) 제45권 제5호에 따르면, 중국 동남대학교 연구팀은 실험을 통해 치매 치료제가 전립선암 세포를 억제하는 기전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전립선암은 남성에게 흔한 암이다. 초기엔 호르몬 치료로 어느 정도 잡을 수 있다. 그런데 일부 환자에서 암세포가 변신을 시작한다. 호르몬에 반응하는 일반 전립선암 세포가, 뇌세포처럼 생긴 형태로 바뀐다. 신경내분비 전립선암이라고 부른다.

마치 애벌레가 번데기를 거쳐 나비가 되듯이. 문제는 이 ‘나비’ 상태의 암이 거의 모든 치료를 비웃는다는 것이다. 항암제를 써도, 호르몬 치료를 해도 꿈쩍 않는다. 진단 후 생존 기간은 평균 1년 남짓이다.

이번 연구는 변신을 막는 데 치매약이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초기 근거를 제시했다.

세포 하나하나 분석해 암의 ‘변신’ 순간을 포착


연구팀이 주목한 유전자는 HOXD11이다.

원래 이 유전자는 태아가 손가락을 만들 때 활동하다가, 성인이 되면 조용히 꺼져 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전립선암이 신경내분비암으로 바뀌는 초기 단계에서, 이 유전자가 다시 켜진다. 이미 졸업한 학교 교복을 뜬금없이 꺼내 입는 것처럼, 엉뚱한 시간에 엉뚱한 곳에서 활동을 재개한다.

연구팀은 이 사실을 단세포 RNA 시퀀싱이라는 방법으로 알아냈다. 암 조직 안의 세포 하나하나를 따로따로 들여다보는 기술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한 권씩 모두 읽듯, 세포 수만 개의 유전자 활동을 개별로 기록한다.

연구팀은 전립선암이 자연 발생하는 형질전환 쥐를 8주, 20주, 25주, 30주 시점에 분석했다. 쥐 나이로 8주는 암 초기, 30주는 완전한 신경내분비암 단계다.

총 2만9436개 세포를 분석한 결과, 일반 전립선 세포가 신경내분비 세포로 바뀌는 초입에서 독특한 세포 집단이 포착됐다. 아직 신경내분비암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상 세포도 아닌 ‘과도기’ 세포다. 이 세포에서 유독 강하게 켜져 있는 유전자가 HOXD11이었다.

연구팀은 “인간 신경내분비 전립선암에서 보존되는 초기 개시 상태를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HOXD11을 인위적으로 없애자 어떻게 됐는지도 실험에서 확인됐다. HOXD11을 억제한 쥐는 30주가 지나도 신경내분비암으로 진행하지 않았다. 신경내분비암에서도 HOXD11을 억제하면 전환이 막히고 생존 기간이 늘었다.

치매약이 암에 통한 이유


메만틴을 투여한 쥐와 그렇지 않은 쥐의 전립선암의 모습. [국제학술지 셀 리포츠 제45권 제5호]


HOXD11이 활성화하는 유전자들 중 일부는 뇌세포끼리 신호를 주고받을 때 쓰는 수용체의 부품을 만드는 설계도다. 연구팀은 신경내분비 전립선암이 이 뇌 신호 경로를 불법 복제해 자란다면, 이를 막는 치매약이 암에도 효과가 있지 않을까하는 역발상을 했다.

실험에 사용된 약은 메만틴이다. 현재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에 쓰이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약물이다.

암 실험에서 결과는 명확했다. 신경내분비암이 막 생기기 시작하는 시점의 쥐에게 메만틴을 경구 투여했더니, 10주 뒤 약을 먹은 쥐는 그렇지 않은 쥐보다 종양이 눈에 띄게 작았다. 조직을 들여다보면 정상적인 구조가 유지됐고, 신경내분비 세포 특유의 단백질은 크게 줄어 있었다.

연구팀은 FDA 부작용 보고 시스템 데이터베이스 1465만여 건도 분석했다. 메만틴 복용자에서 전립선암 발생 보고율이 유의미하게 낮았다. 치매약을 복용한 사람의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전립선암 보고율이 약 10분의 1 수준으로 낮았다.

1명의 환자, 그리고 조심스러운 희망


메만틴을 투여한 환자의 CT 사진. 투여 1주 전과 투여 후 모습을 비교하면 병변 크기가 작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국제학술지 셀 리포츠 제45권 제5호]


동물 실험에 이어 연구팀은 실제 환자에게 메만틴을 써봤다.

현재 진행 중인 임상시험에 등록된 환자 중 평가가 가능한 1명의 사례를 논문에 담았다. 처음부터 신경내분비 전립선암으로 진단받았고, 시스플라틴 기반 항암 치료 후에도 암이 다시 진행된 상태였다.

메만틴을 하루 한 번 경구 복용한 지 한 달 뒤, CT 촬영에서 전립선 주 병변 크기가 52㎜에서 14.67㎜로 줄었다. 전이된 림프절도 29.25㎜에서 7.65㎜가 됐다. 간 전이 병변도 개선됐다. 한 달만에 병변의 크기가 약 72%가 줄어든 셈이다.

단 한 명의 사례다. 이것만으로 치료 효과를 단정할 수 없다.

연구팀도 논문에서 “환자마다 제각각일 수 있는 약물 반응을 정밀하게 검증하고, 더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임상 시험을 통해 실제 치료 효과를 확인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메만틴에 주목한 데는 이유가 더 있다. 수십 년간 사람에게 써온 안전성이 이미 검증된 약이라는 점이다. 새 항암제를 처음부터 개발하려면 10년 이상이 걸린다.

연구팀은 “메만틴의 확립된 안전성을 활용함으로써 이 접근법은 장기간의 초기 단계 약물 개발 과정을 단축하고 임상 전환을 촉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순간을 포착했다


이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약 하나의 효과 때문만이 아니다. 신경내분비 전립선암이 왜, 언제,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처음으로 세포 단위에서 보여줬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지금까지 이 분야 연구는 이미 완전히 변신을 마친 세포를 들여다봤다. 범죄 현장에 도착했더니 범인은 사라지고 결과물만 남은 격이었다. 이번 연구는 범행이 시작되는 순간을 포착했다.

다만 실제 의료 현장에 적용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번 연구는 주로 자연 발생한 암 모델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으나, 실제 환자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치료 유발형’ 변종에서도 메만틴이 동일한 효과를 낼지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또한, HOXD11을 직접 겨냥하는 치료제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는 점도 과제다.

참고논문


DOI : 10.1016/j.celrep.2026.117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