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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조이오브스트링스 ‘환’ 공연 [조이오브스트링스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30년 전, 제자들과 처음 악단을 꾸렸을 때부터 가슴 한구석에 품었던 숙제가 있었습니다. ‘가장 우리다운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이었죠. 이제야 그 대답을 무대 위에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한예종 명예교수) 예술감독이 이끄는 현악 앙상블 ‘조이오브스트링스(Joy of Strings)’가 창단 30주년을 앞두고 한국 음악사의 기념비적인 도전에 나선다. 오는 26일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에서 열리는 ‘메타모르포시스(Metamorphosis): 영산회상’에서다.
조이오브스트링스는 이번 공연에서 50분이 넘는 국악의 정수 ‘영산회상’ 전곡을 서양 챔버 오케스트라의 문법으로 완전히 재창조한다. 그간 한국 전통음악의 선율을 빌리거나 서양 악기로 국악곡을 연주하는 시도는 여럿 있었지만, 이런 사례는 처음이다.
이성주 예술감독은 “30년 전 학생들을 데리고 악단을 시작했을 때, 우리 음악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단원들이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시범 연주를 하는데 ‘이렇게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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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악 앙상블 조이오브스트링스의 ‘메타모르포시스:영산회상’ 공연 기자간담회에서 이성주 예술감독 [연합] |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제목인 ‘메타모르포시스(변용)’에 있다. 조선 시대 불교 성악에서 출발해 궁중과 민간의 풍류로 진화해 온 영산회상의 역사를, 서양 고전음악의 틀 안에서 또 한 번 진화시키겠다는 의지다.
공연의 산파 역할을 한 이왕준 후원회장은 “서양 음악의 주체적 수용과 전통음악의 창조적 계승은 우리 음악계의 해묵은 과제였다”며 “이번 공연은 K-클래식이 단순히 ‘한국인이 연주하는 서양 음악’을 넘어, 우리 고유의 미학과 정신성을 담은 독자적 장르로 나아가는 역사적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무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악기 간의 ‘영적 대화’다. 작곡을 맡은 김인규는 전통 악기의 음색을 서양 악기로 치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기법과 질감을 현대적으로 복원해 냈다.
‘영산회상’의 척추인 거문고 소리를 구현하기 위해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는 활 대신 대나무 ‘술대’를 들고 현을 뜯는다. 콘트라베이스를 거문고의 주법으로 치환하는 시도다. 음색의 확장도 눈에 띈다. 단소는 플루트로, 피리는 오보에로, 대금은 클라리넷으로 변신해 서양 오케스트라 특유의 폴리포니(Poliphony)와 결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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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서울 종로구 송우홀에서 열린 현악 앙상블 조이오브스트링스의 ‘메타모르포시스:영산회상’ 공연 기자간담회에서 이성주 예술감독이 공연을 설명하고 있다. 이 공연은 오는 26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연합뉴스> |
곡의 구성 역시 입체적이다. 김인규 작곡가는 “영산회상에서 나타나는 ‘자기수양’을 주제로 서사를 짰다”며 “작품을 ‘수행자의 여정’이라고 상상하고, 느리고 명상적인 악장으로 시작해 후반부에서는 수행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인간의 느낌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한 명의 수행자가 산을 내려와(하산) 속세의 고통을 겪고(삼계화택), 마침내 대중 속으로 들어가 깨달음을 실천하는(입전수수) 과정이 음표로 그려진다. ‘매우 느림’에서 ‘빠름’으로 나아가는 국악 특유의 가속 구조와 맞물려 청중에게 한 편의 ‘음악적 로드무비’를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지휘를 맡은 정치용은 “이번 곡을 단순한 영산회상의 ‘편곡’이라고 보면 의미가 없다. 하나의 재창조 작품, 새로운 창작으로 봐 달라”며 “이러한 작품이 더 많아져서 특별한 일이 아닌, 일상적인 시도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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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악 앙상블 조이오브스트링스의 ‘메타모르포시스:영산회상’ 공연의 정치용 지휘자 [연합] |
1997년 창단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현악 앙상블로 자리매김한 조이오브스트링스는 이번 공연을 통해 자신들의 음악적 지향점을 분명히 했다. 정치용 지휘자가 이끄는 이번 무대에는 영산회상 외에도 김인규의 ‘강강술래’, 김준호의 바이올린 협주곡 ‘무아(無我)’ 등 전통의 리듬과 호흡을 담은 창작곡들이 함께 오른다.
이성주 예술감독은 “단순히 30년을 버텼다는 자축보다, 우리가 왜 이 땅에서 클래식을 하는가에 대한 답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영산회상’의 모든 악장을 서양 체임버 오케스트라로 새롭게 창작하는 시도는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한국적 여백의 미와 서양적 정교함이 만나는 이번 공연은 K-클래식의 또 다른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소영 음악평론가는 “‘영산회상’은 전통 음악을 도구적으로만 사용하지 않고 원곡의 거대한 구조와 미학적 뿌리를 깊이 파고들었다”며 “우리 음악의 창작 생태계에 신선한 영감을 던지는 뜻깊은 사건”이라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