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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디를 가든 두 명 이상만 모이면 꼭 나오는 주제가 있다. 첫째는 주식 이야기, 두 번째는 반도체 기업의 성과급 이야기이다. 최근 급격하게 상승하는 코스피 때문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그런데 4월 말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기업이 코스피 시가총액의 약 42.76%를 차지하고 있으며, 며칠 사이 주가 변동을 고려하면 50%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즉, 주제는 두 개인데 결국 그 이야기의 뿌리는 반도체 하나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반도체가 호황기에 접어든 것은 아주 최근 일이며 그것도 AI(인공지능)라는 새로운 수요산업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불과 몇 년 전인 2023년도 한국 반도체 기업은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대만의 파운드리 기업인 TSMC가 승승장구하는 것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한국 반도체 산업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었다. 이대로라면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일본과 같이 무너진다는 걱정에 반도체 기업의 주가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불과 3년도 지나지 않아 전세는 역전됐다. 반도체 기업의 매출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반도체 기업의 성과급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 됐다. 지난 30년간 수출 1위 품목인 반도체산업 경기가 이렇게 호전돼 한국 경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지금의 한국 반도체 경기 움직임은 과거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반도체 시장은 PC, 스마트폰, 데이터 센터 등의 발전과 함께해 왔고 그 제품들은 개인 수요에도 좌우되고 있었다. 그런데 AI의 등장으로 인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AI 수요가 폭발한 것은 생성형 AI 등장 때문이지만, 개인이 생성형 AI를 활용하기 위해 반도체를 구입하지는 않는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서 AI 시스템을 구축하고 우리는 그 서비스를 활용하고 있다. 여기서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이 바뀐 것이다. 즉 지금의 반도체 시장은 소비자가 아니라 빅테크 기업의 투자 경쟁에 의해 움직이고 있으며, 주도권도 빅테크 기업에 있다.
이러한 변화는 반도체 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서 AI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개인들이 지불하는 금액은 사실 투자 금액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규모이다. 따라서 AI 거품론이 계속 제기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지금의 빅테크 기업들은 시장 선점을 위해 무리한 투자를 경쟁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경쟁의 끝에는 승자와 패자가 분명히 나눠질 것이다. 즉, 지금의 호경기가 영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AI 거품론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의 산업사를 보면 과열된 투자 경쟁을 통해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다시 우리 주변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우리나라 반도체 경기가 계속해서 좋으리라는 낙관론만 넘쳐난다. 2년 전의 적자도, 앞으로 바뀔 수밖에 없는 산업 구조에 대한 대비도 없다. AI는 이제 거의 모든 산업의 기반 기술이 되고 있으며, 반도체는 단순히 부품의 역할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인프라로 작동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반도체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모두가 현재의 성과에 너무 흥분해서 미래에 대한 대비가 부족한 것은 아닌지 차분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경제안보 통상전략연구실 전문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