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포기 대신 “우라늄 희석·3국 이전”…협상 또 벼랑끝

이란, 전투중단·해협 점진개방 제안
농축 20년 유예·핵시설 해체는 거부
파기시 해외이전 우라늄반환 조건도
트럼프 “수용 불가” 전면 거부 선언
전쟁재개 vs 협상 재시도 ‘중대기로’

 

지난 6일(현지시간)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광장에서 벌어진 친정부 시위에서  한 남성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입을꿰맨 그림이 그려진 커다란 빌보드를 배경삼아 국기를 휘두르고 있다.[AP=연합]
지난 6일(현지시간)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광장에서 벌어진 친정부 시위에서 한 남성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입을꿰맨 그림이 그려진 커다란 빌보드를 배경삼아 국기를 휘두르고 있다.[AP=연합]

이란은 10일(현지시간) 미국에 보낸 답변서에서 우라늄 농축 20년 중단과 핵 시설 해체 등 핵심 요구 사항을 전면 거부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요구한 고농축 우라늄 반납에 대해서도 일부는 희석하고 일부는 제3국으로 이전한 후, 향후 핵 협상이 파기되면 이를 돌려받겠다는 새로운 제안을 내놨다.

핵과 관련한 협상안 일부는 새로운 것이지만, 그 외에는 기존 요구를 반복해 사실상 협상은 공회전하는 분위기다. 이틀이나 기다렸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답변을 받아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완전 수용 불가”를 선언하며 전쟁 재개냐, 협상 지속이냐의 중대 기로에 서게 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란이 파키스탄을 통해 보내온 답변에는 미국이 요구한 우라늄 농축 20년 중단은 너무 길어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 담겼다. 이란은 이보다 짧은 기간의 우라늄 농축을 제안하면서 현재 보유중인 고농축 우라늄의 일부는 희석하고, 나머지는 제3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란은 기존 핵 시설을 해체하라는 미국의 요구도 거부했다. 여기에 더해 미국과의 핵 협상이 파기되면 제3국으로 이전했던 고농축 우라늄을 다시 돌려받는 방안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이란은 미국이 이란에 대한 해상 봉쇄를 해제하면 호르무즈 해협을 점진적으로 개방하고, 이후 30일간 핵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로이터 통신은 이번 답변에서 이란이 해협 개방 방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이란 반(半)관영 타스님 통신은 WSJ이 보도한 핵 관련 제안 내용을 부인하면서 ▷모든 전선에서의 즉각적인 전쟁 중단 ▷이란에 대한 제재 해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종식 등을 기본 틀로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란이 요구한 내용에는 해외의 이란 자금 동결을 즉시 해제하고, 핵 협상을 30일간 진행하면서 그 기간에는 이란 원유 판매 금지도 해제하라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국영매체인 프레스TV는 이란이 미국에 전쟁 피해 배상금 지불을 요구하고,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주권을 재차 강조했다고 전했다.

미국이 레드라인으로 제시했던 고농축 우라늄 전량을 반납, 최소 20년 우라늄 농축 중단, 핵 시설 해체 등 핵심 요구를 거부한 것이다. 이란은 오히려 자국에 유리한 새로운 제안을 던지면서 판을 다시 짰다

이번 답변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완전히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에 대해서도 타스님 통신은 “이란의 대응에 대한 트럼프의 반응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며 “이란 내 그 누구도 트럼프를 기쁘게 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협상팀은 오로지 이란 국민의 권리를 위한 계획만 수립해야 한다”며 조롱에 가까운 논평을 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8일부터 기다리고 있다고 한 답변을 이틀이나 늦게 전달하면서, 미국의 요구를 전면 거부한 내용을 전달한 데에는 장기전을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는 여유가 엿보인다. 국제유가 상승이 지속될수록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형세가 되며,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에 대한 압박을 더 많이 받는다는 판단이 이 같은 반응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성에 차지 않는 답변을 받아든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 재개냐, 협상 재시도냐의 기로에 서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 미 공영매체 PBS와 인터뷰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우리는 다시 그들을 마구 폭격해야 할 것”이라 발언한 바 있다.

이스라엘도 연일 강경 대응을 주장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CBS 시사프로그램 ‘60분’ 인터뷰에서 “이란에는 여전히 제거해야 할 핵물질이 남아 있다”며 “들어가서 그것을 가져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트럼프 대통령도 (핵 물질 확보를 위해) 이란에 들어가길 원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부담을 우회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 재개 대신 경제적 압박을 강화하면서 물밑 협상을 모색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군이 호르무즈 해협에 갇힌 민간 선박들의 해협 통과를 지원하는 ‘해방 프로젝트’(Project Freedom)를 재개하면서, 중재 의지를 보인 국가들을 통해 물밑 협상을 강화한다는 시나리오다. 여기에는 공식 중재국인 파키스탄 외에도 카타르, 중국 등이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10일 미국이 이란과 이란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금지하는 내용이 없는 상태에서 잠정적인 종전 합의를 체결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라이트 장관은 이날 미 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단기적 합의라 할지라도 이란의 핵프로그램을 해결하지 않는 합의에 미국이 동의할 수 있나’라는 질의에 “잠정 합의나 비슷한 무엇에 관해 나는 잘 모르지만, 최종 목표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안다”고 했다.

이어 “최종 목표는 호르무즈 해협과 같은 국제 해역을 통한 자유 항행, 이란 핵 프로그램이 될 것이다. 거기까지 가는 과정은 우리가 찾아내야겠지만 그것이 최종 목표”라고 답했다.

라이트 장관은 사회자가 거듭 ‘이란의 핵 프로그램과 관련해 모든 우려를 해결하지 않는 잠정 합의가 가능한가’라고 묻자 “그럴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다시 불발되면서 호르무즈 해협 개방에 대한 기대도 크게 수그러들었다. 골드만삭스가 지난 9일 기관 투자자 83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0%는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정상화되는 시점을 7월 말 이후로 예상했다. 도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