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예비비 4.2조원 편성…정유업계, 1분기 최대 실적
“유류세 인하·대체 수입선 발굴 등 대안 검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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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차 석유 최고가격제 발표를 앞둔 지난 7일 서울 한 주유소에 휘발유·경유 가격 안내문이 놓여 있다. [연합] |
[해럴드경제=배문숙 기자]2주 단위로 정유사의 주유소 공급가격에 상한을 정하는 석유 최고가격제가 오는 13일 시행 두 달을 맞게 된다. 정부는 최고가격제가 6개월간 유지되는 것을 전제로 목적 예비비 4조2000억원을 편성해놓았지만 정유사업계 1분기 실적은 역대급으로 전망되고 있다. 유가 급등에 따른 정제 마진 개선과 재고평가이익 상승 덕분이다.
이에 따라 정부의 재정 부담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동시에 제도의 지속 가능성과 출구 전략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7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지난 8일 0시부터 적용되고 있는 5차 석유최고가격제는 리터(ℓ)당 1934원, 경유 1923원, 등유 1530원으로 2∼4차와 동일하다.
정부는 지난 3월 13일 1차 최고가격제를 시행한 후 2차 발표 때 유종별 리터당 210원을 인상한 이후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5차 최고가격제 시행 첫날인 8일 전국 주유소에서 판매한 휘발유 평균 가격은 리터당 2011.71원, 경유는 2006.24원으로 전날과 비슷한 수준(휘발유 2011.70원·경유 2006.12원)이었다.
정부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대에서 등락을 반복하는 점과 물가 상승으로 인한 국민 부담 등을 고려해 최고가격을 유지했다는 입장이다.
최근 국가데이터처 발표를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2.6% 올라 1년 9개월 만에 최대 폭 상승을 기록했는데,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제와 유류세 인하가 그나마 물가 상승률을 1.2%포인트(p) 낮춘 것으로 추정했다. 최고가격제 등을 실시하지 않았다면 물가가 그만큼 더 올랐을 것이란 의미다.
하지만 가격이 억제되면서 발생한 ‘인상 억제분’은 숙제로 남아 있다. 앞서 국제유가가 급등했을 때 정부는 민생 안정을 이유로 최고가격에 인상분을 전부 반영하지 않았다. 그간 누적된 인상 억제분은 휘발유 약 200원, 경유 약 400원, 등유 약 600원으로 파악된다.
최고가격이 유지되는 사이 최근 국제유가가 다소 하락하기도 했지만 누적된 인상 요인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는 국제유가 상승분을 반영하지 못해 발생하는 정유사의 손실을 사후에 보전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결국 최고가격제 시행 기간이 길어지면 재정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최고가격제가 6개월간 유지되는 것을 전제로 목적 예비비 4조2000억원을 편성했다고 밝혔으나, 업계에서는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누적 손실액이 이미 3조원대에 달한다는 추정이 나온다.
그러나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정유사들이 수조원대 손실을 기록할 것이란 우려와 달리 1분기 역대급 실적이 예상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유사 매출의 대부분은 최고가격제가 적용되지 않는 수출과 산업용 물량으로 해당 부문에서 최고가격제에 따른 손실을 상쇄하고도 남는 이익이 발생한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S-Oil·HD현대오일뱅크)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 전망치 합산은 약 5조원 초반대로 추정된다. 이는 지난해 1분기 4사 합산 영업이익(811억원) 대비 대폭 개선된 실적이다.
SK이노베이션과 S-Oil은 지난해 1분기 영업손실을 기록했지만 올해 1분기에는 각각 2조원, 1조원대로 흑자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GS칼텍스는 약 1조9000억원, HD현대오일뱅크는 2000억원대 이익을 낼 것으로 추정된다.
중동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휘발유, 경유 같은 석유제품 가격이 상승한 영향이다. 정유사들은 원유를 공급받아 이를 휘발유 등으로 정제한 뒤 판매해 수익을 낸다. 전쟁 이전에 저렴한 가격으로 도입한 원유를 정제해 제품으로 만들었는데 이후 제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그만큼 정제 마진이 개선된 것이다.
KB증권에 따르면 국내 정유사들의 수출 비중은 60~70%이며 내수 30~40% 중 최고가격제의 적용을 받는 휘발유·경유·등유 비중은 판매량의 15% 전후로 추산된다. 정부의 수급 안정 조치로 석유제품 수출 물량도 제한된 상황이지만 제품 가격 상승 덕분에 매출은 오히려 증가했다. 지난달 석유제품 수출의 경우 수출 물량은 전년 대비 36% 감소했으나 수출액은 전년 대비 40% 증가한 51억1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정유사들의 역대급 실적이 전망되면서 최고가격제로 인한 손실 보전 필요성에도 논란이 제기된다. 석유사업법에 따르면 정부의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정유사 손실이 발생할 경우 정부는 이를 보전하기 위한 재정 지원을 할 수 있다.
최고가격제 해제 시점과 방법을 놓고도 고민이 필요한 상황이다. 가격 상한이 사라지면 억제됐던 국내유가가 급등할 수 있다는 걱정이 제기되면서 연착륙할 수 있는 출구 전략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중동전쟁이 더 오래 지속될 경우 최고가격제를 고수하기보다 유류세인하와 대체 수입선 발굴 등 가격 상승 요인을 완화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