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최고가로 팔아드립니다’ 생면부지 부동산에서 온 우편물…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세상&]

등기 등 공적 장부 ‘광고DB’처럼 활용
공인중개사법상 규제·처벌 근거 미비
경찰 “등기 개인정보 오남용”


거래한 적이 없는 부동산에서 자택 주소로 발송한 광고물. [독자 제공]


[헤럴드경제=김아린·정주원 기자] #. 경기 고양시에 거주 중인 70대 A씨는 지난 3월 30일 한 번도 거래한 적 없는 공인중개사 사무소에서 보낸 우편물을 수령했다. A씨의 이름과 자택 주소를 수신자로 명기한 우편물을 열어보니 매도·임차 거래 중개를 홍보하는 광고였다. 우편물 하단에는 ‘고객님의 성함과 주소 정보는 부동산 공적 장부 열람으로 알게 된 것으로 저희 중개업소는 다른 어떤 정보도 갖고 있지 않음을 알려 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작은 글씨로 적혀있었다. 해당 공인중개사 사무소가 위치한 서울 모 구청에 문의하자 ‘공인중개사법 위반이 아니라 직접 민사 고소해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27일 헤럴드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등기부 등본, 토지 대장 등 공적 장부를 열람해 취득한 개인 정보를 부동산 거래 광고에 활용하는 행태가 공인중개사 업계 전반에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용자들은 불편·불안을 호소하지만 경찰 등에 따르면 이를 막을 공적 규제가 미비한 실정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광고물을 돌린다고 밝힌 복수의 공인중개사들은 등기부 마케팅이 ‘업계 오랜 관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설명을 들어보면 특정 아파트 단지의 동·호수를 입력해 소유자 주소를 하나씩 확인한 뒤 해당 주소로 우편물을 발송하는 방식이다.

서울 은평구에 사무소를 둔 한 공인중개사는 “세대마다 방문할 수 없으니 등기부를 다 떼서 소유주 주소로 일률적으로 보낸다”며 “부동산 업계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팁”이라고 했다. 서울 금천구에서 활동하는 공인중개사는 “30년 넘게 부동산 하면서 등기부 주소로 보내는 광고가 문제라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라며 “관심 있으면 연락 달라는 취지일 뿐”이라고 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사는 “등기부 등본, 건축물 대장은 수수료 몇백원에 누구나 볼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추후 매물 확보를 위한 적법한 영업 활동”이라고 했다.

지난 2024년 2월 한 익명의 작성자가 포털 사이트에 ‘등기부 등본상 주소를 보고 공인중개사가 집으로 찾아왔다’고 주장하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현행 공인중개사법으로는 부동산 공적 장부를 활용한 광고 행위를 처벌할 만한 마땅한 규정이 없다. 부동산 전문 엄정숙 변호사는 “변호사는 변호사법상 불특정 다수에게 우편이나 팩스 등을 보내는 광고를 해서는 안 되는데, 공인중개사는 그런 규정이 없어 규제할 근거가 모호하다”며 “공적 장부를 광고 발신 데이터베이스(DB)처럼 활용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조치가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 사안은 국민의 개인 정보를 영리 목적으로 오남용 하는 중대한 문제”라면서 “공개된 정보라는 점을 악용해 공인중개사들 사이에서 횡행하는 변칙적 영업 행위에 대해 엄격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등기는 거래 안전과 권리 관계 확인 등을 위해 열람이 허용된 건데 마케팅 목적으로 수집하는 것은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등기 개인정보가 불특정 다수에 무방비 노출돼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이런 정보 취득 방식이 스토킹 등 관계성 범죄에 이용될 소지가 다분한 만큼 행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 2022년 금융 투자로 거액의 손실을 본 투자자가 금융사 대표의 자택에 침입해 위협한 사건도 있었다. 그는 당시 경찰에 등기부를 보고 대표의 주소를 알아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분별한 부동산 장부 조회를 막기 위한 입법 움직임도 있었지만 개정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범죄를 신고한 피해자인 경우 등기 등 공시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특정범죄신고자 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논의 끝에 폐기됐다. 당시 대법원은 “개정안의 입법 취지에 공감하나 예외적으로 공시가 제한되는 등기 사항을 인정하는 것은 등기의 효용성, 소송시 서류 송달 등의 문제와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반려 취지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30대 이모씨는 “공시 목적으로 조회할 수 있는 정보가 부동산 업자 광고용으로 사용되는 일은 막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경기 고양시 거주자 지모씨는 “관련 법이 없다면 또 잔혹한 범죄가 발생하고서야 뒤늦게 대응하는 일이 없게 입법부가 움직이기를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