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당대 인식…피해자 공격하는 ‘성적 수치심’, 이젠 법을 바꿉시다”[수치스러운 피해자는 없다④]

與 고민정 의원 성폭력처벌법 개정안 대표발의
‘수치심’→‘불쾌감’ 골자…“의식 수준 올라와”
지난해 8월 국회 법사위 상정, 1소위에 계류중
법원행정처,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
다른 법도 일괄 정비·혼란 방지가 바람직 취지
임오경·정춘생 의원도 성폭력처벌법안 대표발의


‘수치’라는 단어에 ‘X’자가 표시되고 옆 페이지에 새로운 내용을 적는 모습의 이미지. ChatGPT를 활용해 생성.


[헤럴드경제=안대용·양근혁·안세연 기자] 정치권에서도 현행 법률에 쓰이고 있는 ‘성적 수치심’을 다른 용어로 대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결국 법 자체를 바꿔야 성폭력·성범죄 사건 수사 단계와 재판 단계에서 궁극적으로 용어가 대체되고, 법적 요건도 바뀐다는 이유에서다. 22대 국회에서 이와 관련한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아나운서 출신 재선인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2일 ‘성적 수치심’이란 용어에 대해 “성적으로 피해를 받은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쓰는 단어여야 하는데 오히려 피해자를 공격하는 단어”라고 지적했다.

고 의원은 지난 2024년 12월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고 의원과 같은 민주당 소속 진선미·장철민·김한규·이병진·김동아·임호선·안태준·조인철·김태년 의원이 발의의원 명단에 함께 이름을 올렸다.

이 법안은 현행 성폭력처벌법상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허위영상물 등의 반포, 촬영물 등을 이용한 협박·강요 등 처벌 규정에 쓰인 ‘수치심’이라는 용어를 ‘불쾌감’으로 변경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고 의원은 앞선 21대 국회에서도 이 같은 내용의 법안을 대표발의 했으나 국회 법사위 1소위 단계에서 더 이상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고 21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서 자동으로 폐기됐다.

고 의원은 “당대 사람들의 인식을 표현해주는 게 언어잖나”라며 “이제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이제는 좀 바로잡을 필요가 있겠다는 취지”라고 법안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고 의원은 “여러 가지 성폭력, 성범죄 관련 사건이 발생했을 때 너무 불쾌하고 혐오스러운 느낌이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라며 “‘성적 수치심’은 피해자를 보호하는 단어가 아니라 피해자를 공격하는 단어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는 약자, 피해자들을 공격하는 이런 단어들을 우리가 스스로 바꾸는 것이 맞다”고 했다. 그러면서 “입법 의지는 당연히 크다”며 “이 법안이 지난 국회에서는 결국 폐기됐는데 이번 22대 국회 내에서는 반드시 통과될 수 있도록 모든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개정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고 의원의 대표발의 법안은 지난해 8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돼 현재 법안심사1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안에 대한 국회 법사위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8월 기준, ‘수치심’이라는 표현을 직접 사용하고 있는 법률은 총 15개다. 이중 형사처벌의 대상을 규정하면서 ‘(성적) 수치심’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법률은 성폭력처벌법을 비롯해 청소년성보호법, 노인복지법, 장애인복지법, 장애인차별금지법, 철도안전법 및 항공보안법 등 7개다.

그 밖에 군형집행법, 노인장기요양보험법 등 8개 법률은 업무처리에서의 준수사항을 규정하면서 금지되는 행위로, 또는 행정제재의 대상이 되는 행위로 각각 ‘(성적) 수치심’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수치심’이란 표현은 아니지만, 경범죄 처벌법에 ‘부끄러운 느낌’이라는 표현이 있는 규정도 존재한다. 경범죄 처벌법 3조에는 공개된 장소에서 공공연하게 성기·엉덩이 등 신체의 주요한 부위를 노출해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 사람(과다노출)에 대해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하도록 정하고 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고 의원 대표발의 법안과 관련한 관계기관 의견으로 ▷성폭력처벌법 관련 규정의 보호법익 ▷성적 수치심과 불쾌감의 개념상 차이 ▷수치심을 사용하고 있는 다수 법률규정과 경범죄 처벌법 규정과의 구별 필요성 등을 고려해, ‘수치심’을 ‘불쾌감’으로 변경하는 것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국회에 밝혔다.

그러면서 입법 과정에서 처벌 범위의 변화 여부를 명확히 하고, 다른 법률의 ‘성적 수치심’ 용어도 일괄 정비해 해석상 혼란을 방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성폭력처벌법의 ‘성적 수치심’만을 ‘성적 불쾌감’으로 변경할 경우 판례가 인정해온 ‘성적 수치심’ 개념이 그대로 적용되는지 불분명하게 되고, 다른 법률의 ‘성적 수치심’과 구별되는 의미인지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성폭력처벌법과 관련해선 고 의원 외에 임오경 민주당 의원과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임 의원과 정 의원이 각각 제출한 대표발의안도 ‘수치심’을 ‘불쾌감’으로 바꾸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