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쫀쿠 이후 [헤럴드 단편 : 오늘에 대한 우리 이야기]

마닐라 바닐라 라떼라는
디저트가 나오면
우리 작품이니까 그리 알고.
약자를 마바라라고 할지
마바떼라고 할지는 아직 논의 중이다.



[익명] [작성자] 너희들 요즘 유행하는 신상 디저트들... 무슨 소셜미디어에서 열풍이다 대세다 어쩌고 하는 것들 다 대기업들이 미리 세팅해서 만들어내는 유행이라는 거 아냐? 야밤에 다음번 유행 아이템 보고서 준비하다가 현타 와서 적어본다. 몇 시간 있다가 지울 글이니까 그때까지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라.

[익명] 이건 또 무슨 컨셉이냐.

[익명] 오 그래도 이건 좀 참신한데.

[익명] 두쫀쿠 같은 거 얘긴가.

[익명] [작성자] 그래. 두쫀쿠 같은 거. 두쫀쿠는 우리 작품 아니고 아마 조작도 아닌 거 같지만...

[익명] 그럼 뭐가 조작이냐?

[익명] [작성자]두쫀쿠 이후에 소셜미디어로 뜬 디저트는 거의 조작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 팀 말고도 한두 팀은 더 있지 않을까 싶은데... 대한민국에 유통 대기업이 보통 분야별로 세 개씩은 있으니까. 아, 봄동비빔밥 그것도 디저트는 아니지만 조작이다. 그게 파일럿이었지.

[익명] 난 커뮤니티에 이런 얘기 올라올 때 거기에 넘어가는 사람이 있는 게 신기함. 유행이 조작 가능하면 왜 디저트를 조작하고 있음? 휴대폰이나 자동차나 비싼 물건이 얼마나 많은데.

[익명] 그것도 그렇네. 정치를 조작하지 왜 디저트를 조작하냐.

[익명] [작성자] 그건 디저트가 조작하기 쉬워서 그래. 아무리 비싸도 만 원 정도잖아. 그러니까 2030한테도 그렇게 무리한 소비는 아니지. 우리는 인스타랑 틱톡 계정들로 유행을 조작하는데 그걸 보고 거기에 뭘 올리는 사람들도 2030이고. 그리고 플랫폼 특성상 눈으로 사람을 유혹해야 하니까 알록달록한 디저트가 적당하다. 정치가 눈에 보이냐? 정치병자 아닌 일반인들이 정치인 사진 보고 퍼 나르고 자기 인스타에 올리고 할 거 같냐.

[익명] 억지 유행이 많다 싶긴 했음. 저 말 믿는 건 아니고. 난 중립 기어 박는다.

[익명] 네 말 다 맞다 치자. 그러면 너희는 그걸 왜 하는 거냐? 두쫀쿠도 버터떡도 그 이후에 나온 디저트들도 한 회사가 판 게 아니잖아. 대부분은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팔린 건데. 유행 만들어내는 데에도 비용이 꽤 들 텐데.

[익명] [작성자] 그 자영업자들이 그 디저트를 만들려면 재료를 사야해. 그 재료는 누가 팔까? 두쫀쿠에는 카다이프라는 재료가 핵심이었어. 카다이프가 들어간 두쫀쿠는 진짜 두쫀쿠, 그걸 소면으로 대체한 짭존쿠라고 불렸지. 카페 사장님들이 카다이프 구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아냐? 그걸 누가 팔았을까?

[익명] 그걸 너희가 팔았단 말이야???

[익명] [작성자] 두쫀쿠는 우리가 만든 유행 아니라니까. 그리고 우리는 그걸 파는 회사는 아니야. 그런 회사들의 의뢰를 받는 회사들이지. 두쫀쿠 때 우리 고객사들이 피스타치오를 많이 팔긴 했지. 버터떡 유행 때 버터도 우리 고객사들이 팔았어. 그때 버터 가격 20퍼센트 올랐어.

[익명] 너희 고객사가 식재료 유통회사들이야?

[익명] [작성자] 여러 곳임.

[익명] 여러 곳이 각각 의뢰를 한단 말인가?

[익명] 다들 작성자 말을 믿는 거야??????

[익명] [작성자] 대기업 유통업체, 카페 프랜차이즈, 과자 회사들이 연합체처럼 연결돼 있어. 신디케이트 같은 거다. 거기서 의뢰를 받아.

[익명] 음모론 오지네~ 파충류 인간들이 만드는 유행이라고 하지 왜.

[익명] [작성자] 원래도 트렌드에 민감한 업계다 보니까 마케팅이나 홍보 임원들 모여서 정보 교환하는 딱딱하지 않은 자리들 있다. 여론조사 같은 거 같이 외주 주기도 하고. 그런데 요즘 요식업 트렌드는 너무 빠르게 휙휙 바뀌다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 여론조사가 의미가 없어졌지. 대기업들은 개인 카페처럼 빨리 움직이지 못하거든. 재료 수급 어떻게 할 건지, 가격 얼마로 할 건지 등등 고민해야 할 일도 많고 프랜차이즈들은 지점에 교육도 시켜야 해. 그럴 바에야 선제적으로 트렌드를 만들어볼까 그런 생각도 하게 되는 거고, 누가 그런 아이디어 내면 같이 시도해보자는 사람도 생기고, 거기에 나 같은 꾼도 합류하는 거고. 밀가루도 담합하고 설탕도 담합하는데 이런 거 못할 거 같냐.

[익명] 꾼이 뭐냐

[익명] [작성자] 여론조작꾼... 그냥 이 바닥 선수들끼리 쓰는 말이야. 밖에다 얘기할 때는 바이럴 마케터라고 해.

[익명] 불리한 질문은 대답 안 하네.

[익명] [작성자] 내가 뭘 대답 안 했는데?

[익명] 위에 너희가 자영업자들 좋은 일 하려고 그 일을 하냐는 질문 있었잖아. 그렇게 유행 조작해서 디저트 팔 거면 대기업이 다 만들어서 팔면 훨씬 이득인데 왜 자영업자들한테 재료만 공급하냐? 그리고 자영업자들한테 재료 판다고 했는데 과자 회사들은 거기에 왜 끼냐?

[익명] [작성자] 뭘 어디서부터 설명해줘야 하나... 일단 가장 큰 이유는 자영업자한테 팔아야 더 많이 팔 수 있어서 그래. 빵 프랜차이즈든 과자 회사든 라면 회사든 제일 두려워하는 게 뭔지 아냐. 재고 쌓이는 거야. 그래서 어떤 제품이 신드롬급 열풍 불어도 공장 증설 잘 안 하지. 생산량 늘렸다가 유행 지나면 고스란히 재고 떠안게 되니까. 생산 설비에 들어간 투자비도 회수 못하고.

[익명] 꼬꼬면이 그랬다고 들었는데. 생산 라인 늘렸다가 판매량 줄어서

[익명] [작성자] 그렇지. 그래도 꼬꼬면은 여전히 팔리고 있으니까 선방한 케이스고, 식품회사들도 바보는 아니니까 무슨 물건이 뜬다고 함부로 라인 늘리지 않거든. 빵이든 과자든 라면이든 이게 반도체 같은 게 아니니까 모방 제품 만들기가 쉬워. 자기들이 생산량을 늘리든 늘리지 않든 뭐가 뜬다 싶으면 시장에 우후죽순 카피 제품 깔리니까 결과는 똑같아져. 그러니까 한동안은 치고 빠지기 전략을 썼고 우리는 자영업자에게 떠넘기기 전략을 쓰는 거다.

[익명] 허니버터칩 대란 기억나네.

[익명] [작성자] 버터떡 인기가 치솟으면 개인 빵집이나 커피점에서 버터 가격이 제일 비쌀 때 버터를 엄청 주문하고, 그 빵집 주인들이 밤새워서 버터떡 만들어 내놓으면 버터떡 유행은 지나 있고, 우리는 그때 다른 아이템 내놓고, 버터 재고는 대기업 창고가 아니라 개인 빵집에 쌓이는 거지. 그리고 최종 제품이 더 비싸니까 소매 단계가 더 이익률이 높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아. 디저트들은 예뻐야 하니까 생산 공정 뒤로 갈수록 손이 많이 들어간다. 홍보하는 것도 공들여 해야 하고. 이런 물건들에 반응하는 얼리 어답터 타깃 고객들은 대기업 제품을 불신하는 탓도 크다. 여러 모로 재료 만들어 파는 게 훨씬 이익.

[익명] 이 자식 이거 완전 나쁜 놈이잖아???

[익명] [작성자] 그래서 나도 현타 온다.

[익명] 근데 두쫀쿠도 그렇고 나중에는 대기업도 뛰어들지 않나? 그건 왜 그런 거냐?

[익명] [작성자] 노는 라인들이 있거든. 거기서 적당히 찍어내고 빠지는 거야. 처음부터 그런 라인 활용해서 만들 수 있는 제품을 띄우는 거야. 그러니까 아이템 논의에 처음부터 참여해야 하는 거고. 보통은 외관은 다른데 생산 과정은 다른 제품이랑 똑같은 거, 그런데 특이한 재료가 한두 개 필요한 걸로 만들지.

[익명] 띄우는 건 어떻게 띄우냐 인플루언서 쓰냐.

[익명] [작성자] 인플루언서에게 돈을 주는 일은 없고 연락도 안 해. 그러기에는 가성비가 너무 떨어져. 그보다는 인플루언서가 활용할 수 있는 스토리를 우리가 짠다고 해야 맞겠지. 두바이에서 유명한 셰프가 만들었다, 상하이에서 알파 세대 사이에 인기다, 뭐 그런 스토리들. 이름도 잘 지어야 하고. 재미있고 힙한 느낌이 드는 이름으로, 세 글자 약자로 줄여도 그럴싸하게. 어떻게 보면 인플루언서가 우리한테 이용당하는 거야. 그들도 콘텐츠가 필요하니 서로 윈윈이고.

[익명] 그런 디저트가 상하이에 없으면 어떻게 하냐.

[익명] [작성자] 상하이에 사람 보내서 만들면 되지. 그게 인플루언서 광고보다 더 싸.

[익명] 상하이에서 만든다고 해도 그게 거기서 바로 인기를 얻는 건 아니잖아.

[익명] [작성자] 그런 건 아무도 확인 안 함.

[익명] 정성스러운 주작 글 잘 읽었다. 믿을 뻔했네.

[익명] [작성자] 믿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라. 난 이제 일하러 간다. 다음주에 마닐라 바닐라 라떼라는 디저트가 나오면 우리 작품이니까 그리 알고. 약자를 마바라라고 할지 마바떼라고 할지는 아직 논의 중이다. 이 글도 이제 지운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허탈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