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프타 쇼크’ 석유화학 4월 셧다운 공포…“러 원유 허용해야”

중동발 공급망 충격…석화 업계 사면초가
국내 주요 업체들 줄줄이 ‘불가항력’ 선언
3월말·4월초 여수 산단 ‘셧다운’ 가능성도
나프타價 올해 101%↑…실적 충격 가시화
업계, 러원유 수입·국가전략물자 지정 요구


미·이란 전쟁 여파로 국내 주요 석화 기업들이 나프타 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사진은 지난 9일 전남 여수시 석유화학단지 모습. [연합]



미·이란전쟁발 에너지쇼크가 현실화되고 있다. 중동발 ‘나프타’ 수급 충격에 여수 등 국내 석화 산단이 줄줄이 가동을 중단할 수 있다는 우려는 날이 갈수록 커지는 모양새다. 4월 위기설에 설상가상으로 액화천연가스(LNG) 세계 3위 수출국 카타르의 ‘라스라판’ 산업단지가 이란의 공격으로 대규모 파괴를 겪으면서 LNG 공급마저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이에 러시아산 원유 수입부터, 장기적으로는 나프타를 국가전략물자로 지정하는 등 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호소가 나오고 있다.

▶카타르 LNG 수출용량 17% 손실…공급차질 장기화·가격급등 우려=이란의 카타르 라스라판 산업단지 공격으로 LNG 공급 차질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라스라판에 있는 카타르의 LNG 처리시설은 글로벌 LNG 공급량의 약 20%를 담당해왔으며, 여기서 생산되는 LNG의 90%가 아시아 시장으로 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타르에너지 최고경영자(CEO)를 겸임하고 있는 사드 알카비 카타르 에너지부 장관의 19일 로이터 인터뷰에 따르면 이란의 라스라판 공격으로 카타르에너지의 LNG 수출용량 중 17%가 손실됐다.

이에 따라 3∼5년 동안 연간 1280만t의 LNG 공급 감소가 예상되며 이에 따른 연간 매출 감소액은 200억 달러(30조 원)로 추정된다.

알카비 장관은 이와 관련, 카타르에너지가 한국, 중국, 이탈리아, 벨기에와 체결했던 LNG 장기공급계약에 대해서도 불가항력에 따른 계약이행 불가능을 선언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카타르는 앞서 이미 불가항력에 따른 LNG 공급 중단을 선언한 바 있으나 당시에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으로 즉각 공급이 불가능해졌다는 단기 선언이었고, 이제는 라스라판 LNG 시설의 수리가 진행되는 향후 3∼5년 혹은 그 이상 장기간에 걸친 공급계약도 이행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카타르산 (LNG 수입) 비중이 올해 14% 수준으로 높지 않고, 대체 수입처도 있어 가스 수급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다만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수급, 가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며 대응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나프타 쇼크’에 내달 셧다운 가능성도=20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주요 석화 업계에선 핵심 원료인 나프타 수입 통로가 막히면서 내달 연쇄 ‘셧다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중동 전쟁 국면에서 호즈무즈 해협을 봉쇄한 여파다. 호르무즈 해협은 국내 업체들이 수입하는 나프타 절반 이상이 통과하는 주요 통로다.

현재 현재 업계에 남은 나프타 분량은 최소 2주 분량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국내 주요 NCC가 줄줄이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석유 제품의 일종인 나프타는 이른바 ‘산업의 쌀’을 만드는 핵심 원료다. 에틸렌은 자동차, 전자, 건설, 섬유, 플라스틱 등 산업계 전반의 중간재 역할을 한다. 중동발 에틸렌 수급 차질이 국내 주요 제조업 공급망 전반을 흔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 최대 석화 산업단지인 여수 산단은 이르면 이달 말이나 내달 초 가동을 중단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앞서 여천NCC는 고객사에 원료 확보 문제로 공급 차질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는 ‘불가항력’ 상태를 선언하고 공장 가동률을 66%까지 하향했다. 불가항력이란 전쟁 등 불가피한 외부 요인으로 계약을 이행하기 어려울 때 이를 사전 통보해 책임을 면제 받기 위한 조치다.

공급 차질은 나프타뿐 아니라, 나프타로 만드는 완성재로까지 번진 상태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은 최근 고객사에 고부가가치 제품인 아크릴로니트릴 부타디엔 스티렌(ABS) 공급 차질 가능성도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도 현재 NCC 가동률을 각각 60%대까지 낮춘 상태다.

전 세계적인 나프타 공급난으로 치솟은 가격 역시 당장 실적에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산업통상부 원자재가격정보에 따르면 현재 나프타 가격은 톤당 1068달러다. 연초와 비교해 101.13%, 전주 대비로는 79.19% 상승한 수치다. 이달 평균 가격은 톤당 914달러로 올초 톤당 500~600달러를 머물던 수준에서 2배 가까이 급등했다.

정부도 나프타 수급난에 대비하기 위한 대책을 고심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나프타를 생산할 수 있는 원유 2246만배럴을 방출하기로 했지만, 이는 불과 일주일가량 소비할 수 있는 분량에 그친다.

▶러시아 원유 허용…나프타 국가전략 물자 지정 필요=이에 정부와 업계는 나프타를 생산하기 위한 러시아산 원유 수입 재개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부는 최근 국내 정유 4사(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와 회의를 갖고 러시아산 원유 도입 가능성을 논의했다. 러시아산 원유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기 위해 수입이 중단된 상태다.

석화 업계에선 나프타를 국가전략물자로 지정하는 등 보다 구체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호소도 나오고있다. 19일 정종은 LG화학 상무는 국회에서 열린 석화업계 간담회에 참석해 “원유나 LNG의 경우 국가전략물자로 인식돼 정부가 대규모 투자를 통해 저장탱크를 구축하고 있는데 나프타는 그렇지 못하다”며 “나프타를 통해 만들어진 에틸렌이 산업의 쌀 역할을 하는만큼 정부 차원에서 나프타 비축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18일 나프타를 경제안보품목으로 한시 지정했는데, 보다 안정적인 공급망 체계를 구축해달라는 주문이다.

국내 정유사들의 나프타 수출 물량 일부를 국내로 전환하는 방안도 언급됐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현 상황으로는 이른 시일에 나프타 재고가 바닥하는 게 분명한만큼 정유사들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날 석화 업계에선 ▷플라스틱 공급 안정 ▷가격 급등 방지 ▷원자재 가격 연동제 도입 등을 건의하기도 했다.

이날 회의에선 올해 중순까지 나프타 수급난 상황이 이어질 것이란 예상도 나왔다. 배용재 여천NCC 전무는 “에틸렌을 공급하는 업체로서 수출보다는 국내에서 플라스틱을 업체 등에 전략 판매를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필요한 나프타 물량을 다 공급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이같은 상황이 4~5월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채정묵 한국프라스틱공업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전쟁 이후 톤당 20만원 수준의 가격 인상과 함께 공급 물량 조정이 이뤄졌고, 추가 인상과 공급 중단 가능성까지 통보받은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박혜원·한영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