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눈앞에서 터진 폭탄’ “이대로 죽나 싶었다” 1200㎞ 필사의 탈출 [세상&]

이란 체류 교민과 중동 여행객 귀국
이란에서는 하루 1200㎞ 달려 탈출
두바이 여행객들은 드론 공습 목격
‘카이로-인천’ 항공편 300만원에 구해
공항 도착하니 “아이고 살았다” 안도


지난 1일 (현지 시각) 두바이 미국대사관 공습 당시 사진. 5일 귀국한 두바이 패키지 여행객이 촬영했다. [독자 제공]


[헤럴드경제=이영기 기자] “공습 이후엔 비행기만 지나가도, 구급차 소리만 들려도 심장이 벌렁거렸어요.” “눈앞에서 드론이 자폭했어요.” “휴대전화는 완전 먹통이었어요.”

미국의 이란 공습 이후 전운이 감도는 중동에서 우리 국민이 탈출에 성공했다. 5일 오후 한국 땅을 밟은 이란 교민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발이 묶였던 여행객 40여명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이같이 말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들이 공항 입국장에 들어서자 발만 동동 구르던 가족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새벽에도 달렸다”…이란에서 ‘1200㎞’ 필사의 탈출


이날 오후 7시께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로 이란에서 탈출한 우리 국민들이 튀르키예항공편(TK090)을 타고 입국했다. 이란에 머물던 이들은 공습이 터지자 우리 대사관이 구한 버스로 약 1200㎞를 육로로 탈출했다. 이란 인접국인 투르크메니스탄으로 먼저 빠져나간 뒤 다시 터키 이스탄불로 이동하는 여정이었다. 이들이 탄 버스는 약 20시간 쉬지 않고 이동했다고 한다. 끼니를 제대로 챙길 여력은 없어서 과자와 음료로만 버텼다. 이들은 투르크메니스탄에 도착한 후 항공권을 구하는 대로 귀국하고 있다고 한다.

주이란대사관 직원인 김나현(35) 씨가 5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하며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


수화물 카트 가득 짐을 싣고 나오던 주이란대사관 직원 김나현(35) 씨는 “하루 종일 이동만 했던 거 같다. 새벽에 출발한 후 화장실 갈 때만 10분 정도 내리는 게 전부였다”며 “이동하면서는 에너지바, 과일 음료만 먹었다”고 말했다.

공습 당시를 떠올리면서 “최근 정세가 안 좋았기 때문에 현지에서는 위험을 예상하긴 했다. 막상 터지니 정신적 충격이 컸다”면서 “테헤란 주이란대사관 근처에도 공습이 여러 번 있었다. 심리적 불안이 커서 잠을 못 자는 직원들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란 현지에선 모든 통신이 차단됐다. 국내에 있는 가족에게 연락도 할 수 없었다. 김씨는 “투르크메니스탄으로 이동한 다음에야 연락했다”며 “이란 정부에서 통신망을 차단해서 현지에서는 스마트폰으로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도희 이란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5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이날 현지 교민들과 함께 들어온 이도희 이란 여자 배구대표팀 감독은 “대사관 근처에 폭격이 떨어졌을 때 굉장히 큰 폭발음이 들렸다. ‘죽는 건가’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2024년 6월부터 이란 여자 배구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그는 “외교부와 대사관이 빠르게 대처해준 덕분에 무사히 올 수 있었다”며 “이동할 때 가장 안전한 루트를 이용한 것 같다. 폭격을 맞닥뜨리지 않도록 (대사관이) 잘해주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같은 항공편을 통해 한국에 도착한 이들 가운데는 이집트 여행에서 돌아온 박시형(67) 씨도 있었다.

박씨와 아내는 전쟁이 발발하자 한국에 있는 자녀들에게 비행기표를 알아봐달라고 했다. 몸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1인당 300만원까지 가격이 뛴 ‘카이로-이스탄불-인천’ 구간 편도 항공편을 결제했다. 빠르게 항공권을 확보한 덕에 귀국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박씨는 “한국에 오니 ‘아이고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며 “한국에 있는 지인들도 전부 걱정했는데 무사히 와서 다행이다. 빨리 집에 가서 씻고 자고 싶다”라고 했다.

딸과 여행 왔다가…눈앞서 공습 피한 두바이 여행객들


지난 1일(현지시간) 두바이 미국대사관 공습 당시 영상. 5일 귀국한 두바이 패키지 여행객이 촬영했다. [독자 제공]


이란의 공습을 받은 두바이에 체류하던 여행객도 이날 대한항공 KE2022편을 타고 무사히 입국했다. 지난달 25일 단체 패키지여행을 떠났던 40여명이다. 이들은 이달 2일 귀국할 예정이었는데, 중동 지역 분쟁이 발발하며 예정보다 사흘 늦게 돌아왔다.

공습 이후에는 외부 활동은 전혀 하지 못하고 호텔에서만 생활했다. 이들은 관광 중 근거리에서 일어난 드론 공습을 직접 목격했다. 큰 소리만 들려도 심장이 벌렁거린다고 불안을 호소하기도 했다.

두바이를 방문했다가 귀국한 김재석(70) 씨가 5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


아직 긴장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게이트를 나온 김재석(70) 씨는 “밤에 비행기 소리 비슷하게 ‘윙’ 소리가 나면 자다 깨고, 또 자다 깨고 그랬다”며 “또 앰뷸런스 소리만 들어도 불안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호텔에만 있기 너무 답답해서 근처라도 가보고 싶었는데 전화해 보니 모두 닫았더라”며 “정말 호텔 안에서만 있다가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남은 분들은 막 불안에 떨고 있다. 근데 우리만 먼저 떠나오니 뒤돌아보기가 좀 민망했다”고 말했다.

두바이를 방문했다 귀국한 한 김연숙(65) 씨가 5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


딸과 함께 두바이 여행을 떠난 김연숙(65) 씨는 “모든 걸 다 얻은 거 같다. 죽어도 여기(한국)에서 죽어야지”라면서 “우리나라가 너무 그리웠다”고 말했다. 김씨 모녀는 눈앞에서 공습을 목격했다. 딸 김모 씨는 “투어 마지막 일정으로 두바이 루브르 박물관 투어 중에 첫 공습을 봤다”며 “바로 강 건너에 미사일이 떨어지더니 굉음과 함께 불길, 연기가 솟아올랐다”고 설명했다. 공습 지점까지는 ‘한강 건너편 정도의 거리’쯤이었다고 한다.

지난 1일(현지시간) 두바이 미국대사관 공습 당시 사진. 5일 귀국한 두바이 패키지 여행객이 촬영했다. [독자 제공]


외교부는 5일 오후 6시부터 최근 전쟁 중인 이란 전역에 대해 여행경보 4단계인 여행금지를 발령했다. 기존에 발령돼 있던 3단계(출국 권고)에서 한 단계 격상했다. 체류 중인 한국인은 모두 철수해야 한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번 조치로 이란 전역이 여행금지로 지정되며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받지 않고 이란에 방문·체류하는 경우 여권법 관련 규정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 있다”며 “해당 지역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국민께서는 여행을 취소해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