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권 독립 자체가 목적 아냐…신뢰 얻을 때 제대로 실현”
“정치적 해결이 바람직한 사안 사법부로 가져오는 현상 심화”
“법관은 정치적 중립 지켜내야…용기가 크게 요구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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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임을 앞둔 노태악 대법관이 3일 서초구 대법원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양근혁 기자] 노태악 대법관이 3일 6년 간의 임기를 마무리하면서 “사법권의 독립은 그 자체를 추구한다고 해서 달성되는 것은 아니고,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함께 공정한 재판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을 때 제대로 실현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 대법관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우리 사법부의 디딤돌은 사법권의 독립과 국민의 신뢰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사법권의 독립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법관에게 주어지는 특권이나 혜택은 더욱 아니다. 오직 재판이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장함으로써 법치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해 궁극에는 국민의 법적 평화와 행복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노 대법관은 “1990년 3월 처음 법복을 입으며 느꼈던 그 엄숙함과 생경함을 기억한다. 한순간도 가볍지 않았던, 이제는 익숙해진 그 법복의 무게를 내려놓으려 한다”며 “돌이켜 사법부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책무를 온전히 다했는지 스스로 물어본다”고 했다.
그는 “만약 조금이라도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그것은 동료 대법관님들을 포함한 법원 가족 여러분들 모두의 덕분”이라며 “누군가에게 여전히 납득하기 어려운 결론으로 남아 있다면 그분들께도 진정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노 대법관은 “대법관으로 취임하면서 ‘제가 다루는 것은 단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이다’는 사실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며 “사건 기록에는 당사자들의 치열한 삶의 흔적이 담겨 있었고, 기록의 행간에서 법리와 사실이라는 엄중한 기준을 놓지 않으며 최선의 정의를 찾고자 노력했다”고 언급했다.
이어 “이미 정해진 답을 어딘가에서 찾아내는 기계적인 발견의 과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첨예한 이해관계와 가치관의 충돌 속에서 우리 사회가 마땅히 지켜야 할 정의를 만들어가는 것이었고, 때로는 인식의 한계 내에서 차선의 정의라도 구하고자 분투해야 했던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며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회에 대한 통찰 없이는 만족할 만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도 없었다”고 했다.
또 “구체적인 사건을 풀어나가는 가운데서, 때로는 좋은 결론과 맞는 판결 사이에서 고민하기도 했다”며 “좋은 결론을 찾아가면서도 그것이 맞는 판결인지 드물게 그 차이와 간극을 느낄 때면 당혹스러움과 고민으로 밤잠을 설칠 때도 없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노 대법관은 “법관은 끊임없이 시대의 변화를 바로 보면서 시대와 호흡을 같이 해야 한다. 또한 그 고민의 결과는 우리가 내리는 판결에 투영돼야 한다”며 “그렇지만 변화하는 시대에도 포기할 수 없고 지켜내야 하는 핵심적인 가치가 있음이 분명하다”고도 말했다.
그는 “‘법원의 판결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고 한다”며 “그렇지만 법률의 해석에는 사법의 본질이라는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법의 지배’라는 원칙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렇다”고 했다.
이어 “사건은 더욱 다양하고 복잡해지고 있으며 사회적 갈등은 법정 안으로까지 깊게 들어와 있다”며 “특히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그렇게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사안을, 사법부로 가져오는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 대법관은 그러면서 “누군가 ‘정치의 사법화는 지금처럼 양극화된 사회에서 결국은 사법 불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다”며 “사법의 결론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어느 한쪽의 비난과 공격을 피해 나가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그 가운데서도 법관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내야 한다”며 “법관에게 용기라는 덕목이 점점 더 크게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노 대법관은 “사명감과 자긍심을 바탕으로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 본연의 역할과 책무에 집중하고 신뢰와 지혜를 모은다면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사법부로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제도가 불신 받고 권위가 상처 받는 시대에서 어느 언론인께서 이야기한 것처럼 저도 상식과 원칙의 힘을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노 대법관은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해 2020년 3월 4일부터 대법관을 지냈다. 임기는 이날까지다.
노 대법관이 후임 대법관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퇴임하면서 대법관 공백이 현실화됐다.
앞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1월 21일 노 대법관의 후임 후보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 윤성식 서울고법 부장판사, 박순영 서울고법 고법판사, 김민기 서울고법 고법판사 등 4명을 추천했다. 하지만 후보 추천 이후로 40일이 넘도록 조희대 대법원장의 후임 제청이 이뤄지지 않았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최종 후보자를 제청하면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