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저비용 가성비 모델’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딥시크 등 중국의 인공지능(AI) 기업들이 대중(對中) 수출이 금지된 엔비디아의 최첨단 칩을 쓰고, 오픈AI나 앤트로픽의 AI 모델을 증류해 자사 모델을 훈련시켰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타사 모델을 증류에 동원해 AI 모델을 훈련시키는 것은 사실상 ‘기술 절도’로 치부된다.
로이터 통신은 23일(현지시간) 미국 트럼프 행정부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조만간 출시될 딥시크의 최신 AI 모델이 엔비디아의 최신 칩인 블랙웰로 훈련됐다고 보도했다. 해당 당국자는 블랙웰 칩이 설치된 위치는 중국 내몽골 자치구에 있는 데이터센터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또 딥시크가 블랙웰 칩을 활용해 오픈AI와 앤트로픽, 구글, xAI 등의 미국 AI 모델을 ‘증류’했을 것이라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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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비디아의 고성능 인공지능(AI) 칩인 블랙웰[엔비디아 제공] |
블랙웰은 고성능 AI칩으로, 원칙대로라면 이를 사용할 수 있는 국가는 극히 제한적이다. 미국 상무부는 고성능 AI 칩 수출을 3단계(Tier 1·2·3) 체계로 통제하고 있는데, 캐나다와 유럽연합(EU), 영국, 일본, 한국, 호주 등 핵심 동맹국은 수출 허가가 비교적 원활하다. 2단계 그룹(Tier 2)은 중동, 동유럽, 동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등이 포함되는데, 이곳에서는 고성능 AI칩이 국가별·사용자별로 GPU 총량 상한이 걸려 있다. 수출을 할 때에도 건별 허가가 필요하다.
중국은 러시아, 이란, 북한, 시리아, 베네수엘라 등 20개 안보리스크 국가와 더불어 3단계 그룹(Tier 3)으로 묶여있다. 티어3은 사실상 수출 금지국이다. 블랙웰 뿐 아니라 H100이나 H200 등도 반입이 안되는 국가들인데, H200 칩은 예외적으로 중국 수출 승인을 받았지만 여러 규제로 인해 실제 제품 출하는 지연되고 있다.
중국으로의 수출이 금지된 블랙웰 칩이 어떻게 내몽골 데이터센터까지 가게 됐을까.
방법은 다양하다. 우선 제3국을 경유해 중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 말레이시아나 베트남, 대만 등 수출이 허용된 국가의 기업이나 데이터센터 등이 엔비디아의 블랙웰 시스템을 정상 수입한 뒤, 일부를 중국 업체에 되파는 방식이다.
명의만 대여해 블랙웰을 들여올 수도 있다. 중국 측 브로커가 해외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우거나 현지 기업의 명의를 빌려 서버를 구입한 뒤, 이후 중국으로 납품하는 식이다. 블랙웰 GPU가 장착된 서버나 랙 형태로 제품을 들여온 뒤, 제3국에서 분해해서 금수조치가 되지 않은 일반 서버로 위장한 뒤 중국으로 재수출하는 방법도 있다.
제3국 우회 등의 방법으로 중국에서 블랙웰 칩을 반입하고 있다는 의혹은 공공연한 얘기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3월 중국 선전의 한 리셀러가 상하이의 고객으로부터 블랙웰 서버 주문을 받고, 말레이시아와 베트남 등의 데이터센터 운영업체나 엔비디아 공식 고객사로부터 제품을 받아 중국 고객에게 이를 인도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리셀러들은 제3국에서 블랙웰 서버를 구하기 위해 해외 등록 법인을 활용하고, 자사 사용 목적으로 서버를 구입한 뒤 일부를 중국에 재판매하고 있었다. 재판매도 시스템이 자리잡아, 리셀러들이 애스크로 계좌에 선입금을 받고 ‘6주내 배송’을 약속하는 상황까지 됐다.
미 정보기술(IT) 전문매체 디인포메이션도 지난해 12월 딥시크 등이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우회 수입로를 통해 엔비디아 칩을 중국에 몰래 들여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동남아시아의 데이터센터에 엔비디아 칩을 설치했다가, 엔비디아의 검사를 받은 직후 이를 분해해 허위 신고를 거쳐 중국으로 밀반출한다는 것이다.
당시 엔비디아 측은 “그와 같은 밀반출은 터무니없어 보인다”며 “우리는 접수하는 모든 제보를 추적한다”고 일축했다. 엔비디아는 “우회·전용이 의심되는 건을 모두 조사하고 있다”며 중국으로의 밀반출은 불가능하다 주장하지만 최종 사용자(엔드유저)가 누구인지를 추적하기는 어렵다. 미국이나 엔비디아가 사용처를 조사하는 등 관리할 수 있는 단계는 미국에서 최초 수입국까지만 국한된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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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딥시크 등 중국의 기술 기업들이 인공지능(AI) 모델을 구축하면서 오픈AI 등 미국 기업의 모델로부터 기술을 추출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게티이미지] |
중국 AI 기업들은 모델을 훈련시키는 과정도 증류를 통해, 사실상 기술을 탈취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증류는 상위 AI 모델의 답변을 데이터로 활용해 새 모델을 훈련하는 기법이다.
실제로 딥시크는 자사 AI 모델 훈련 도구로 증류를 썼다고 밝히기도 했다. 거대 추론 모델인 딥시크-R1을 먼저 대규모 연산·강화학습(RL) 등으로 만든 뒤, 이 모델을 ‘교사(teacher)’로 사용해 이 모델의 추론 과정을 다른 모델들이 학습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RI이 복잡한 문제에 대해 단계별 추론을 포함한 고품질 답변을 생성하면, 이렇게 만든 약 80만개 규모의 추론 샘플을 증류용 데이터로 썼다. 딥시크는 이후 더 작은 오픈소스 모델들을 학생으로 삼아, R1의 출력을 지도학습(SET)으로 그대로 따라하도록 학습시켰다고 주장했다.
자사의 모델을 증류하는 것은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는 모델 훈련 기법이다. 오픈소스도 공개된 것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 문제는 타사 모델을 대규모로 무단 증류해 자사 모델의 성능을 끌어올리는데 썼다는 의혹이다. 업계에서 이는 사실상 기술 절도로 치부된다.
업계에서는 성능의 특성이나 답변 스타일, 일부 벤치마크상의 유사성 등을 근거로 딥시크의 R1 및 그 기반인 V3가 오픈AI의 GPT-4나 4o를 대량 호출해 사실상 무단 증류한 것이란 의혹을 제기해왔다. 일각에서는 GPT-4 뿐 아니라 앤트로픽의 클로드 계열까지 섞어서 증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앤트로픽은 지난 23일(현지시간) 딥시크와 문샷AI, 미니맥스 등 중국 기업 3사가 자사의 클로드를 불법적으로 추출해간 사실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들 기업들이 가짜 계정 2만4000개를 통해 클로드와 대화 1600만 건 이상을 생성했고, 이 대화를 통해 중국 AI기업들이 앤트로픽의 AI모델 결과물을 빼냈다는 것이다.
중국 테크 기업들의 고성능 칩 밀반입과 기술 추출 의혹이 커지면서, 미국 내에서 고성능 칩에 대한 금수조치 등의 규제 논의가 더욱 불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