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돌’ 말의해 FW남성패션 아젠다..원초적 본능[함영훈의 멋·맛·쉼]

에트로(ETRO)가 공개한 2026 가을-겨울 남성 컬렉션


에트로(ETRO)가 공개한 2026 가을-겨울 남성 컬렉션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글로벌 패션사 에트로는 말의 해인 2026 가을-겨울 남성 패션 트렌드를 한 마디로 원초적 정체성과 남성성에 대한 탐구로 요약했다.

단순화의 위험성을 무릅쓰고 요약한다면 ‘짐승돌’ 아젠다이다. 신년 벽두 부터 다음 겨울을 기약한 에트로의 설명은 이렇다.

인류는 수많은 시대와 세기를 거치며 진화해 왔지만, 그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정체성, 즉 원초적인 정신은 여전히 동물적이다. 얼굴과 인상 또한 마찬가지다. 태도와 성향, 성격과 개성에 따라 얼굴의 생김새는 무한한 동물적 연상을 불러일으킨다. 에트로에게 이러한 인간 조건에 대한 시선은 1997년의 인상적인 포토그래픽 캠페인을 통해 정립된 매우 개인적인 아이코노그래피의 일부이며, 이후 브랜드를 정의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아왔다.

에트로(ETRO)가 공개한 2026 가을-겨울 남성 컬렉션


에트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르코 드 빈센조(Marco De Vincenzo)는 이번 남성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이 개념을 전면에 내세우며, 고전성과 유희성, 본능과 이성 사이를 유연하게 오가는 남성성에 대해 탐구한다. 이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에트로의 본질을 드러내는 동시에, 늘 같은 기호들이 새로운 조합으로 재구성되는 에트로 특유의 세계관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한다.

‘호기심의 방(cabinet of wonders)’ 안에 정렬된 FW26 컬렉션의 아니멘(Animen)들은, 무그 신시사이저 활용의 선구자인 웬디 카를로스(Wendy Carlos)의 몽환적인 사운드를 배경으로 에트로다움, 즉 에트로 특유의 미학을 집약적으로 구현한다.

벨벳 위에 프린트된 페이즐리 모티프가 풍성하게 펼쳐지고, 로브와 파자마는 실내와 실외를 자연스럽게 넘나들어도 괜찮다. 깔끔한 수트의 가장자리는 페더 디테일로 장식되고, 컬러 팔레트는 다크 브라운, 포레스트 그린, 유기적인 뉴트럴 톤, 산화된 레드 등 깊고 지적인 색감으로 구성된다.

에트로(ETRO)가 공개한 2026 가을-겨울 남성 컬렉션


동물의 얼굴은 탄탄하고 보호적인 촉감의 니트웨어 위 픽셀화된 자카드로 표현되거나, 유려한 실크 셔츠 위 페이즐리 패턴 사이에 은근히 숨겨진다. 페이즐리는 팬츠와 스카프, 로브 코트 전반에 걸쳐 확장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허리에 묶은 스웨터, 부드럽고 여유로운 백, 깊게 눌러쓴 캡은 컬렉션 전반에 자연스러운 캐주얼한 태도를 완성한다.

이번 컬렉션은 의복을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외피로 제시한다. 아니멘에게 이 깃털 같은 외형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개인의 선택에 의해 만들어지고 무한히 변형 가능한 결과물이다. 모든 요소는 끊임없이 흐르며, 시선과 촉각을 지속적인 여정으로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