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더리움, AI 에이전트로 진화

‘데브커넥트 2025’ 탐방기 <하>
이더리움 공동창업자 연설 눈길
후사카 업그레이드 성공적 완료
‘AI 에이전트 경제’ 본격적 도래


비탈릭 부테린 이더리움 공동창업자가 2025년 11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데브커넥트’(Devconnect) 2025에서 발표하고 있는 모습. [사진= 김종광 DSRV 이사]



데브커넥트(DevConnect)의 오프닝을 장식한 이더리움 창립자 비탈릭 부테린의 기조연설 제목은 ‘30분 만에 설명하는 이더리움’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2016년 상하이 행사 때부터 2025년까지 줄곧 같은 제목으로 발표를 해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같은 제목이지만 그 내용은 매년 이더리움이 도달한 높이만큼 달라졌다.

그의 첫 번째 슬라이드는 이더리움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냈다. ‘중앙화된 신뢰’보다 ‘누구나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나쁜 짓 하지 마라’보다 ‘나쁜 짓을 할 수 없어야 한다’. ‘내가 너를 위해 만든다’보다 ‘우리가 우리를 위해 만든다’. 이더리움은 이처럼 단일 지점에 신뢰가 집중되는 것을 경계한다. 모두가 검증하고 참여해 나쁜 일을 하고 싶어도 애초에 할 수 없는 환경을 추구한다는 설명이었다. 월스트리트로 대변되는 거대 자본의 유입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 등으로 이더리움의 몸집이 커진 상황에도, 이더리움이 잃지 말아야 할 ‘사이퍼펑크(Cypherpunk

)’ 정신을 강조했다. ▷탈중앙화 ▷검열 저항성 ▷개방성 같은 핵심 가치들이 훼손되면 기술적 성공은 무의미하다는 메시지였다.

그는 이더리움 생태계의 경제 모델을 구글에 비유했다. 구글이 자율주행이나 생명공학 같은 파격적인 실험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은 ‘검색 엔진’이라는 확실하고 탄탄한 서비스가 있기 때문이다. 비탈릭은 이더리움 역시 수많은 혁신적 시도를 지속하기 위해 이더리움이 안정적 수익을 주는 ‘저위험 디파이’ 역할을 하며 든든한 버팀목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반이 단단해야 그 위에서 레이어 2(L2)들이 마음껏 뛰어놀며 혁신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AI 에이전트 경제의 서막, 후사카 업그레이드=비탈릭이 강조했던 이더리움의 기술적 로드맵, ‘더 서지’의 완성을 알리는 ‘후사카’ 업그레이드가 지난달 성공적으로 완료됐다. 이로써 이더리움은 명실상부한 ‘월드 컴퓨터’로서 성능을 갖추게 됐다.

업그레이드의 핵심은 ‘PeerDAS’ 기술이다. 기존에는 블록체인 검증을 위해 노드가 모든 데이터를 다운로드해야 했다. PeerDAS는 데이터를 잘게 쪼개 샘플링하는 방식만으로 전체 데이터의 무결성을 보장한다. 비탈릭은 이를 “대역폭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마법”이라 표현했다.

이 기술 덕에 L2의 트랜잭션 수수료는 획기적으로 낮아졌다. 이는 단순히 사람이 쓰기에 편해졌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수수료가 ‘0’에 수렴하게 되면서, 인간의 개입 없이 AI들이 서로 데이터를 사고팔며 수많은 소액 결제를 처리하는 ‘AI 에이전트 경제’가 물리적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AI도 지갑을 갖는다…에이전트 경제의 도래=이번 행사에서 가장 뜨거웠던 화두는 단연 ‘인공지능(AI) 에이전트’였다. 이제 블록체인 사용자의 정의는 ‘인간’에서 ‘AI 에이전트’로 확장됐다. 인간을 위해 존재했던 지갑과 서비스들이 이제는 AI 에이전트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거대한 변화를 이끌기 위해 이더리움 재단 내부에도 최근 ‘dAI’ 팀이 공식 출범했다. 이들이 주도해 만든 ‘ERC-8004’ 표준은 AI 에이전트가 중개자 없이 서로를 식별하고 평판을 검증하며 협업할 수 있는 ‘신뢰 없는’ 메커니즘을 제공한다. 지금까지 AI는 정보를 검색하고 요약해 주는 수동적 비서에 머물렀지만, 이제는 스스로 디지털 지갑을 소유하고 필요한 사용료를 지불하거나 데이터를 구매하는 경제 주체로 거듭나고 있다. 이를 ‘에이전트 경제’라 부른다.

규제의 불확실성을 걷어내야 할 때=미국이 ‘지니어스’ 법안을 통해 국가 차원의 블록체인 전략을 수립하고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자, 글로벌 빅 플레이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질주하고 있다.

미국이 법안으로 기준을 잡아주니 기업들이 리스크 없이 마음껏 달리는 형국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떠한가? 삼성전자나 네이버, 혹은 국내 시중 은행들이 이 거대한 흐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가? 아니다. 기술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규제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기는 어려울지라도, 적어도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가 되기 위해서는 규제의 불확실성을 걷어내야 한다.

김종광 DSRV 이사·한양사이버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