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도 상품 구상, 물밑 준비
변동성·건전성규제, 걸림돌로 작용
세금회피·시세조정 우려 극복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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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주택담보대출처럼 비트코인을 팔지 않고 담보로 맡겨 현금을 받을수 있는 이른바 ‘코인담보대출’ 상품이 잇달아 출시되자 국내 은행들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금융당국이 ‘금가분리(전통 금융과 가상자산 분리)’ 규제 완화를 시사하면서 관련 논의가 정책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지난해 국내 코인 투자자가 1000만명을 돌파한 것을 고려할 때 코인 담보 대출이 허용되면 수십조원 규모의 시장이 열릴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만, 국내 규제 환경과 코인 시장 구조를 감안할 때 당분간 현실화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비트코인 담보로 현금 대출”=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해외 사례를 토대로 가상자산을 편입한 상품 개발을 물밑에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 단계는 실증 사업(PoC)에 착수하기보다는 내부 검토와 구조 설계에 초점을 맞춘 상태다.
주로 JP모건과 프랑스 금융그룹 SG(소시에테제네랄), 싱가포르 금융권의 코담대 사례를 참고하는 한편, 브라질의 누뱅크와 같은 크립토 뱅크 모델도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고 있다. 서비스가 출시되면 비트코인을 팔지 않아도 원하는 만큼 현금을 확보하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새해 금융지주 회장들의 신년사에는 ‘디지털자산’이 핵심 키워드로 등장하면서 관련 전담 조직도 신설·확대 개편하는 추세다. 업계에선 박춘원 전북은행장이 “국내 최초 가상자산 담보대출과 같은 혁신적인 상품을 통해 새로운 금융 수요를 선점하겠다”고 밝히면서 한발 앞서 상품 개발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북은행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높은 코인을 중심으로 담보인정비율(LTV)과 마진콜 설정 등 핵심 담보 대출 설계를 상당 부분 구체화한 것으로 파악된다. 또 전북은행은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고팍스의 인증계좌 제휴 은행이기도 하다. 코담대에 필요한 유동성 관리와 청산, 자산 보관 등 실행 인프라 측면에서도 상대적으로 유리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림자 규제에 갇힌 ‘코담대’=현행법상 코인을 대출 담보로 금지한 조항은 없다. 다만, 2017년 말부터 2018년 초까지 가상자산 ‘대란’ 당시 마련된 범정부 대책에 금융회사에 가상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되면서 이후 관행적으로 금지된 것처럼 굳어졌을 뿐이다.
그럼에도 최근 코담대를 둘러싼 기대감이 다시 커지고 있는 배경에는 금융당국의 금가분리 정책이 완화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신호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가상자산 대여 서비스에 이어 코담대가 안정성이 높은 은행권을 중심으로 대출 서비스가 도입되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국내에선 코담대와 유사한 서비스로 ‘코인 대여 서비스’가 운영되고 있다. 투자자들은 거래소에 맡긴 가상자산이나 원화를 담보로 코인을 빌릴 수 있다. 코인원과 빗썸의 경우 최소 담보 가능 금액은 5만~10만원 수준이며, 최대 대여 한도는 각각 3000만원과 10억원이다. 금융당국은 작년 9월 ‘가상자산 대여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거래소의 관련 영업을 관리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코담대를 혁신금융서비스 심사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기존 담보대출의 대상 자산을 확장하는 성격으로 보고 있다”면서 “코인 대여 서비스처럼 금융당국이 가이드라인을 정리해주면 실행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은행권이 코담대에 관심을 보이는 배경에는 잠재적인 대출 수요가 크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코인 투자자들 사이에선 가격 상승 기대가 커 매도 대신 담보를 활용해 생활자금이나 소비 자금을 확보하려는 수요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국내 5대 코인 거래소의 이용자 수는 1086만6371명(중복 포함)에 달한다. 10억원이 넘는 코인을 보유한 투자자도 1만명을 넘어섰다. 이들이 보유한 규모만 평균 22억원 수준이다.
▶K-코담대 출시 위한 조건들=그렇다면 국내에서 코담대가 출시되려면 어떤 쟁점들이 먼저 정리돼야 할까. 주식담보대출과 유사한 구조를 참고할 수는 있지만, 가상자산 특유의 높은 변동성을 감안해 급격한 가격 하락 시 연쇄 매도나 시장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촘촘한 설계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주식시장의 경우 개별 종목이 급변할 때 하한가 제도나 변동성 완화 장치 등 완충 장치가 존재하지만, 가상자산 시장에는 이런 안전판이 없다는 점이 대출 취급 과정에서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처럼 유동성이 풍부한 우량 가상자산으로 담보 범위를 제한할 가능성이 크다. 코인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이후 가격이 급락할 경우 담보 가치가 빠르게 훼손돼 청산(강제 매각)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원화만 담보로 인정하는 코인원·업비트와 달리 빗썸과 코빗은 이날 기준 각각 30종, 11종의 디지털자산을 담보로 활용하고 있다. 이들 거래소는 비트코인·이더리움·리플 등 소수의 주요 자산에서 시작해 담보 인정 범위를 점진적으로 확대해 왔다. 코담대 역시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담보 자산 범위를 설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담보 설정 구조와 담보권의 설정·관리 방식부터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 은행권은 과거 수년간의 가격 변동성 데이터를 토대로 감내 가능한 LTV 범위를 산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 코인 시장 특성상 체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슬리피지(주문 가격과 실제 체결 가격 간 괴리)와 급락 국면에서 매도가 추가 매도를 부르는 이른바 ‘연쇄 하락’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 역시 함께 검토돼야 할 요소로 꼽힌다.
▶“현실화까지 장벽 높아”=하지만 국내에서 출시까지는 장기 과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재정난으로 파산한 실버게이트은행 등 크립토 친화 은행들의 실패 사례가 누적되면서 관련 리스크를 더욱 보수적으로 들여다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안정성이 높은 은행이 관리 주체로 나서더라도 현행 은행 건전성 규제 체계에선 코담대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코인을 담보로 인정하기 위한 명확한 기준과 함께 위험가중자산(RWA) 산정 등 가상자산의 위험도를 반영할 수 있는 건전성 평가 체계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제적으로는 가상자산 자본 규제를 둘러싼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국내에선 아직 첫걸음도 떼지 못한 상태다.
코담대가 불공정 거래를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담보 가치 유지를 목적으로 시세 조정이나 유동성 공급자를 가장한 가격 부양 행위가 나타날 경우, 불법 거래 리스크가 금융상품과 결합돼 증폭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코담대가 도입될 경우 정부가 내년부터 시행을 예고한 가상자산 과세 체계에도 허점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코인 매도 시 부과되는 기타소득세율 22%(지방소득세 포함)를 부담하기보다 필요한 만큼만 현금을 끌어다 쓰는 방식으로 과세를 우회하려는 유인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유혜림·경예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