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조원 퇴직연금 시장, ‘기금형’ 도입으로 지각변동 예고

저수익·고수수료 구조 깨고 전문가 운용 확대
국회, 가입 제한 폐지 법안 잇따라 발의


더불어민주당 안도걸 의원이 7월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도입’ 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퇴직연금 시장 규모가 400조 원을 넘어선 가운데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이 본격화되면서 시장에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기존의 ‘저수익·고수수료’ 구조를 개선할 대안으로 주목받는 기금형 모델의 가입 제한을 없애려는 법안이 국회에서 잇따라 발의되면서, 제도 확대 시 퇴직연금 전반의 경쟁 구도가 재편될 전망이다.

20일 고용노동부와 금융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퇴직연금의 90% 이상은 근로자가 직접 상품을 선택하는 ‘계약형’이다. 하지만 다수 근로자가 금융 지식 부족으로 사실상 방치해, 수익률은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친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그럼에도 금융기관들은 적립금에 따라 수수료를 챙기며 가입자 불만을 키웠다.

이에 비해 기금형은 적립금을 모아 전문가가 분산 투자와 위험 관리를 담당하는 구조다. 이는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다층적 노후소득보장체계’ 구축 과제와도 맞닿아 있다. 정부는 퇴직연금 의무 가입 대상을 단계적으로 넓히고,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을 플랫폼·특수고용직까지 확대한 뒤 기금형 활성화 방안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유일한 기금형 모델인 근로복지공단의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푸른씨앗)’은 기금형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2022년 출범한 푸른씨앗은 국민연금이 -8.28%의 손실을 낸 시기에도 2.45%의 수익을 거뒀고, 2023년 6.97%, 2024년 6.52%, 올해 상반기에는 7.46%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는 같은 기간 퇴직연금 평균 수익률을 크게 웃도는 성과다.

최경진 경상국립대 교수는 “계약형은 사실상 개인 방치형인 반면, 기금형은 전문가 운용으로 수익률 개선에 유리하다”며 푸른씨앗을 대표 사례로 꼽았다. 정창률 단국대 교수 역시 “지배구조 개편을 통한 수익률 증대 차원에서 기금형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현재 푸른씨앗 가입은 30인 이하 중소기업 근로자에 한정돼 있다.

이에 국회에서는 가입 대상을 전 사업장으로 넓히는 법안이 줄줄이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안도걸·박민규 의원은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을 제출,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모든 근로자가 기금형 퇴직연금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대기업 직장인은 물론 자영업자도 계약형과 기금형을 선택할 수 있다. 이는 안정적 수익을 원하는 가입자의 선택권을 넓히는 동시에, 은행·증권사 등 기존 퇴직연금 사업자의 수수료 인하와 상품 경쟁을 촉발하는 ‘메기 효과’를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